◆ 2010년
1. KBS, 울릉도·독도 DMB 방송 서비스 개시(2010.03.17.)
KBS와 울릉군은 울릉도와 독도에 DMB 송수신 장비 설치 공동사업을 마치고 DMB 방송을 2010년 3월 17일 개시했다. 이에 따라 울릉도 반경 70㎞와 독도 반경 50㎞에서 KBS 1TV, KBS 2TV, KBS FM 라디오 채널을 시청할 수 있게 됐다.
섬 지역에 DMB를 설치한 것은 이때가 처음으로, 동해를 항해하거나 조업하는 선박과 관광객 등에게 다양한 방송 서비스 제공이 가능해졌다. 특히, 독도에서는 KBS 아날로그 1TV만 볼 수 있었기 때문에, 디지털 채널 3개를 시청할 수 있게 돼 전파주권 확립과 실효적 지배를 강화하는 효과도 가졌다.
2. ‘MBC 창작동요제’ 마지막 방송(2010.05.05.)
‘MBC 창작동요제’는 1983년을 시작으로, ‘새싹들이다’, ‘네잎클로버’, ‘아빠 힘내세요’, ‘아기염소’ 등 유명한 동요를 발굴한 대한민국 최고의 동요제이다. 그러나 점차 입상에 치중해 가창력이나 기교를 크게 강조하는 어려운 곡이 많아지고, 어린이의 방송계 진출 수단이 되는 등 여러 비판을 받았다. 또한, 대중적 인지도가 낮아지고 1997년 외환 위기의 여파로 지원도 줄어드는 등 여러 문제로 2010년 5월 5일 제28회를 마지막으로 사라지게 됐다.
◆ 1998년
1. SBS 아트텍·뉴스텍 분사(1998.11.20)
SBS는 제작기술, 미술부문을 SBS 아트텍으로, 영상취재, 뉴스제작, 중계기술 부문을 SBS 뉴스텍으로 넘기는 영업양도계약을 체결했다. 이 과정에서 노사가 극심한 갈등을 빚었고, SBS 노동조합이 창립됐다. 이후 2014년 5월 1일 SBS 아트텍·뉴스텍이 합병해 SBS A&T가 출범했다.
2. CBS, 표준FM(98.1MHz) 개국(1998.12.15.)
3. HDTV 위성 전송 시험 성공(1998.12.17-18.)
전자통신연구원(ETRI)은 자체 개발한 HDTV 위성방송 송수신 시스템과 무궁화위성을 이용한 HDTV 방송 프로그램 전송 시험을 1998년 12월 17일부터 18일까지 이틀간 하루 2시간씩 진행해 성공했다.
이 전송 시험에 사용한 송수신 시스템은 ETRI가 당시 정보통신부와 한국통신(현 KT)의 자금지원으로 같은 해 8월에 개발한 것으로, HDTV 방송 영상을 HD급 신호로 바꿔주는 HDTV 인코더, 일반화질(SD)급 신호로 변환하는 SDTV 인코더, 방송에 필요한 정보를 추가하는 부가 데이터 인코더를 내장하고 있어 하나의 방송 중계기로 HDTV와 SDTV 프로그램을 동시에 방송할 수 있었다.
◆ 1986년
1. MBC 새 CI 사용(1986.01.01.)
권명광 홍익대학교 교수의 주도로 제작한 MBC의 새 CI가 1986년 1월 1일을 기점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2004년 12월 31일까지 사용 기간이 18년으로, 역대 MBC CI 중 가장 길게 사용한 CI이다.
원과 사각의 타원으로 이루어진 심벌의 전체적 형태는 전파의 제한점을 해소하고 전 세계적으로 뻗어 나가는 통신위성의 안테나와 지구가 속한 은하계의 신비를 상징하며, 기울기 45°의 폐곡선 타원형은 가장 강렬한 발전과 성장 의지의 표상으로 세계의 창으로서 MBC의 미래지향적이고 진취적 언론상을 표상한다. 또, 조형성에서 자이로스코프로 보이는 중앙의 타원형은 어떤 변화와 조건에서도 항상 바른 방향을 유지하는 방송 본연의 공정성을 상징한다.
2. ‘KBS 시청료 거부 범국민운동본부’ 출범(1986.02.11.)
언론통폐합과 언론탄압으로 관제 방송으로 타락한 KBS에 두고 시청률 납부를 거부하는 움직임이 일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개인들이 산발적으로 시청료 납부를 거부한 것이었으나 1984년 4월 28일 전북 완주의 가톨릭농민회와 천주교회가 이를 조직화했으며, 1986년 2월 11일 1만여 기독교회와 14개 교구의 천주교회와 청년·여성 등 사회운동단체들이 ‘KBS 시청료 거부 범국민운동본부’를 결성해 범국민운동으로 확산됐다. 특히, 당시 주부들이 시청료를 내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여성단체가 이 운동에 앞장섰다.
국민의 지지로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번져가자 정부는 한국방송공사법을 개정해 체납 시청료의 가산율을 10%에서 5%로 인하하는 유화책을 내놓는 한편, 대도시를 대상으로 시청료를 전기세·수도세 등과 함께 내도록 하는 ‘통합고지서’ 제도를 시행해 시청료 납부 거부를 막았다.
그러나 여전히 시청료 거부 운동에 대한 국민의 호응을 막을 수 없었으며, 그 결과 1984년 1,148억 원이었던 시청료 징수액은 1988년 785억 원으로 떨어졌다.
3. MBC, 여의도 사옥 이전 송출 시작(1986.04.29.)
1982년 MBC 여의도 사옥을 준공하고 여의도 시대를 열었지만, 1969년부터 사용한 정동 사옥에서는 당시 인기 프로그램이었던 ‘명랑운동회’ 등을 제작하며 여전히 사용하고 있었지만, 1986년 4월 29일 여의도 사옥으로 이전 송출을 시작하면서 정동 사옥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됐다.
4. CBS, ‘방송기능 정상화를 위한 백만인 서명운동’ 전개(1986.05.01.)
CBS는 1980년대 언론탄압으로 뉴스와 광고를 금지당하고 종교와 음악 위주의 방송만 가능했다. 이에 1984년 CBS 정기 이사회의 대정부 건의로 ‘기독교방송 기능 정상화 운동’을 시작했고, 이는 1986년 5월 1일 교회 신자들을 대상으로 ‘우리는 CBS 뉴스를 듣고 싶습니다’라는 1백만인 서명운동으로 이어졌다. 이 서명운동은 KBS 시청 거부 운동과 맞물려 공정 언론에 대한 기대와 함께 시민 사회의 전폭적 지지를 받았다. 이를 바탕으로 CBS는 1987년 10월 19일 자로 뉴스 방송을 재개했다.
5. MBC 마스코트 ‘엠비스’ 탄생(1986.09.03)
MBC의 마스코트 ‘엠비스’가 1986년 9월 3일 탄생을 알렸다. 엠비즈는 MBC의 M과 벌을 뜻하는 영어 Bees의 합성어로, M 자를 형상화한 헬멧을 쓰고 있는 벌의 모습이다. 벌은 자외선을 보는 특이한 눈을 가졌고 지휘체계가 분명한 조직 공동생활을 하는 곤충이며, 부지런하고 근면성을 상징한다. 또, 육각형의 벌집을 지을 수 있는 뛰어난 조형예술가이며 발음도 MBC와 비슷해 마스코트가 됐다.
6. 「유선방송관리법」 국회 통과(1986.12.31.)
1961년 8일에 제정된 「유선방송수신관리법」을 대체해 1986년 12월 31일 「유선방송관리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유선방송관리법」은 자체 방송의 허용 범위나 공영방송에 미치는 영향 및 주무부서 등 실무문제 등에 관한 충분한 의견통일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국회에서 통과돼 종합유선방송을 불허하고, 자체 제작이 불가능하고 중계기능만 해야 하는 등의 문제점이 있었다.
이에 합리적인 관리를 통해 유선방송의 건전한 발전과 이용의 효율화를 기함으로써 공공복리 증진에 이바지하기 위해 「유선방송관리법」을 제정해 유선방송이 허용됐다.
◆ 1974년
1. KBS, 사옥 건설 착공(1974.04.)
KBS는 연희송신소 부지와 교환한 여의도 18번지 2만 평 부지에 사옥 건설을 착공했다. 1974년 4월 이후 3년의 공사 기간을 거쳐 1976년 12월 1일 현재의 KBS 본관 건물을 준공했다.
◆ 1962년
1. KBS-TV 정식 방송 시작(1962.01.15.)
공보부 산하 서울중앙방송국이 KBS-TV(HLKA-TV)로 1961년 12월 31일 개국한 뒤, 1962년 1월 15일 정식 방송을 시작했다. 같은 해 3월 21일에는 명동국립극장(현 명동예술극장) 개관식을 중계하며 최초의 TV 중계방송을 내보냈다. 중계방송차가 없었기 때문에 버스에 필요한 장비를 임시 설치해 개관식을 중계했다.
2. 한국문화방송, 부산문화방송 강제 헌납(1962.06.20)
부산의 실업인 김상용은 방송기술인인 정환옥의 권유로 부산 지역에 민간 상업 방송 설립을 추진해 1959년 4월 15일 호출 부호 HLKU, 출력 1㎾의 한국 최초 민간 상업 방송인 문화방송을 부산에서 개국했다. 1960년 경영난으로 부산일보 사주였던 김지태에게 경영권이 넘어갔으며, 김지태는 1961년 서울에서 한국문화방송도 개국한다. 그러나 김지태는 5·16 군사 정변 이후 부정 축재자로 몰리고, 1962년 한국문화방송, 부산문화방송 등 전 재산을 부일장학회(1982년 정수장학회로 명칭 변경)에 강제 헌납한다.
3. 「국영텔레비젼 방송사업운영에 관한 임시 조치법」과 「특별회계법」 제정(1962.12.03)
1962년에 접어들어 KBS는 민간방송의 개화와 함께 본격적인 텔레비전시대를 촉진하는 일련의 조처와 이에 대비한 라디오방송의 병행적 발전에도 노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여러 면에서 방송 운영의 기틀이 불안했으며, 특히 재정 규모가 매우 취약해 재정난에 시달렸다. 이에 정부는 1962년 12월 3일 「국영텔레비젼 방송사업운영에 관한 임시 조치법」과 「국영텔레비젼방송사업특별회계법」을 제정하고 1963년 1월부터 시청료를 징수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