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노동조합의 권리와 권력에 힘을 더해야한다

[칼럼] MBC 노동조합의 권리와 권력에 힘을 더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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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리와 권력은 느낌이 다르다. 권리가 수동적인 자세로 ‘받아들여지는 존재의 이유’라면 권력은 그보다는 더 능동적인 ‘움직임’에 방점이 찍혀있다. 그래서일까. 우리는 곧잘 권리와 권력을 양분해 권리에는 신성의 감정을 강제하고 권력에는 인간사의 추잡한 욕망과 욕심을 대입하기에 주저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것이 옳은 방식일까.

국제아동구호단체가 아프리카의 난민촌에서 최소한의 교육도 보장받지 못하는 아이들을 위해 공책과 연필을 보냈다고 가정하자. 이런 상황에서 난민촌의 아이들에게는 구호단체가 보낸 공책과 연필을 활용해 공부를 할 권리가 주어지게 된다. 하지만 실상은 어떨까. 혼란스럽고 야만적이며 그 어떤 상식도 제대로 먹혀들어가기 어려운 ‘난민촌’이라는 카오스적 상황에서 사회적 약자인 아이들에게 공책과 연필은 제대로 전달되지 못할 것이다. 생존을 위해 어디에든 눈을 빛내는 본능적인 어른들에 의해 아이들의 미래가 걸린 교육문제가 대수일까. 아마 전달된 연필과 노트는 팔려서 돈이 되거나 빵이 될 확률이 높다. 이즈음 되면 확실해진다. 아이들에게 권리가 주어지더라도, 결정적으로 자신의 권리를 활용할 권력의 부재는 모든 이익의 창구를 봉쇄해버린다는 것이다. 물론, 이는 양날의 칼과 같다.

자, 서두가 길었다. 이제는 굳이 본고에서 권리와 권력의 이면에 숨은 함의를 파헤친 이유를 이제 밝혀야겠다. 이유는 하나다. 요즘 들려오는 보복인사 논란 때문이다.

   
▲ MBC 노동조합 파업

170여 일을 끌어온 공정방송 복원의 투쟁이 잠시 쉼표를 찍고, MBC 노동조합은 업무에 전격적으로 복귀했다. 비록 뒷맛이 개운치 않은 것은 어쩔 수 없지만 많은 이들은 MBC 노조의 투쟁에 박수를 보냈다. 그들은 할 만큼 했다.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으로 목표를 이루고자 했고 이제 어느 정도 소기의 목적을 이루었다고 본다. 하다하다 ‘종북’의 색까지 칠해지는 악조건이 아니었던가. 그러나 더 큰 문제는 다음이었다.

지난 7월 17일의 일이다. 늦은 밤. MBC 사옥에 공사현장에서 울려 퍼질만한 장비 소리가 사방을 울리기 시작했다. 이에 전격적으로 업무에 복귀한 노조원들은 화들짝 놀랐다. 갑자기 이게 무슨? 하지만 그 소음의 정체는 의외로 쉽게 밝혀졌다. ‘기습 인사이동 발표에 따른 급조 사무실 공사’ 즉 급작스런 야밤의 인사이동 발표로 일부 사무실에서 급하게 부서를 만드느라 망치질이 요란했던 것이다. 사실 일반 아파트였으면 층간소음으로 상상도 하지 못했을 것이지만, 어메이징한 MBC 사측은 대단한 ‘의지’로 이를 현실화시켰다. 그 결과 다음 날 아침 직원들이 새로 발령받은 사무실로 찾아가기 위해 사방을 휘젓고 다니는 촌극이 발생했다. 특히 일산 사옥의 경우 그 이름도 생소한 ‘미래전략실’을 찾기 위해 발령받은 직원들은 때아닌 보물찾기, 아니 사무실 찾기를 해야 했다. 그래도 결국 직원들은 자신의 사무실을 찾긴 찾았다. 사옥 8층에 피트니스 센터로 준비되었던 곳이 사무실로 둔갑한 것이다. 그 부서의 구성 면면도 아주 화려하다. 방송 기술인부터 시작해 시사교양 PD, 편성 PD, 스포츠 PD, 기자, 아나운서..도대체 뭐하는 부서인지는 모르지만 상당히 버라이어티한 곳임은 분명하다. 이런 사례는 또 있다. 용인 드라미아 개발단에는 총 9명이 충원되었는데 이들이 2일동안 한 일이라고는 몇 페이지에 해당하는 얇은 드라마 관련 기획안을 읽은 것이 전부였다고 한다. 처음 주어진 임무도 용인 드라미아 견학이었다니. 훌륭한 인원들 모아놓고 뭐하는 짓인지. 장난치자는 건가.

이에 사측은 논란이 확산되자 이렇게 변명했다. ‘파업 직후 복귀한 노조원들과 불참 직원들의 갈등이 심해질 것을 우려해 당분간 인사 조치했다’라고. 한 마디로 싸우다 헤어진 두 연인이 다시 만나게 되자 ‘우리 조금 시간을 더 가지자’라고 말한 것 같다. 사측은 파업에 참가하지 않은 직원들을 정말 아끼나보다. 보호해주려는 그 애특한 마음이 여기까지 느껴진다.

그러나 이번 인사이동에는 ‘보복인사’의 성격이 강하다는 것이 문제다. 오죽했으면 노조가 ‘인사 테러’라고 했을까. 인사 발령을 보면 새로 조직 개편된 미래전략실과 중부권 취재센터를 포함해 사회공헌실, 신사옥건설단, 용인 드라미아, 뉴미디어글로벌사업국, 수원, 인천, 성남, 일산 등 서울경인지사 총국 등 기존 업무와 상관없는 곳으로 파업 참가 인원들을 전보 조치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즉 동원할 수 있는 모든 근무지를 총동원해 파업 참가 인원들을 분산시켜 궁극적으로는 고립시키려는 의도가 다분한 것이다. 이는 단체협약 자체를 무시하는 처사이기도 하다. 치졸하고, 너무나 옹졸한 태도다.

 

   
▲ MBC 노동조합 파업

여기서 우리는 ‘권리와 권력’을 함께 논의해야 한다. 우선 사측이다. 본 사태에 있어 사측은 권리 없이 권력만을 행사하고 있다. 그들은 경영자이기에 공정방송을 위한 대립을 무시하고 노조원들에게 영향을 끼칠 ‘인사이동’이라는 권력을 행사한 것이다. 이는 옳지 않은 처사다. 위에서 밝혔듯이 권리와 권력의 행사는 양날의 칼과 같아서, 사측의 이러한 처사는 이를 넘어선 오용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

그렇다면 노조의 입장은 어떨까?

필자는 노조에도 권리를 찾기 위한 권력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 권력이 실체적인 ‘힘’이 아니어도 상관없다. 다만 현재에 있어 노조와 단체협약 등으로 대표되는 그들의 권리가 너무나 쉽게 짓밟히기에 최소한의 견제장치가 더 필요하다는 뜻으로 이해하면 되겠다. 사회적 논의가 필요한 부분이겠다. MBC에 관리감독 권한을 가지는 방문진의 구성원 비율이 바뀌어야 한다는 주장도 이의 연장 선상이다. 사실 이런 이야기는 본고에서 처음 하는 것도 아닐 것이다. 다만 전략적으로 일을 추진함에 있어 방문진 이사 비율의 급진적인 구성변경을 반대하는 이들에게, 방송의 공공성을 사이에 두고 대립했던 노사의 대결이 전혀 다른 ‘다분히 회사적인 방식’으로 귀결되는 것을 냉정하게 직시하라는 뜻이다. 노조는 권리를 찾을 수 있는 최소한의 권력도 제대로 행사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끝까지 노력하고 싸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

사실 여기서 주장하는 것은 노조의 권력화가 아니다. 최소한의 균형이다. 노사 모두 권리와 권력을 보장받고 서로를 견제하는 이상적인 방안을 이야기하자는 것이다. ‘사’가 위고 ‘노’가 아래라는 발상은 급격한 산업화 과정을 거쳐온 대한민국만의 시대감각 없는 이데올로기다. 인간이 평등한 것처럼, 노-사는 평등하다. 다만 ‘일’이 다른 것뿐이다. 이를 전향적으로 이해한다면 이번 사측의 보복인사가 얼마나 치사하고 동시에 치명적인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 MBC 사옥

독일의 경우 우리로 치면 초등학교 때부터 노사 협상 역할수업을 한다고 한다. 각각의 학생이 ‘노’와 ‘사’의 관계를 설정하고 실제로 협상을 진행하는 수업을 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이런 과정을 거쳐 노-사의 발전적인 방향을 모색하고 어린 시절부터 ‘올바른 협상’의 감각을 키워나가기 시작한다. 다시 MBC로 돌아와 보자. 이번 사측의 인사이동은 독일 어린이들 보기에 부끄러울 정도로 치사하고 보복성이 다분한 옹졸한 처사다. 동시에 다 큰 어른들이 벌이는 말도 안 되는 ‘사태’이기도 하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바로 서로의 권리와 권력을 지키며 대등하게 협상하고 합리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 지금은 사측이 이를 오용하고 있고 노조는 제대로 행사하지 못하고 있다. 바로잡아야 한다. 그 누구도 권력화가 되지 않는 방안을 찾아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 다시는 이런 ‘우스운 블랙 코미디’가 나오지 않길 바라며 말이다.

물론 이러한 방안이 지금의 대한민국에서 너무 이상적이라 현실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우리는 동서고금의 역사에서 ‘이상’보다 조금 덜한 ‘현실’이 탄생하고, 그 ‘현실’은 다시 숨을 한 번 고른 다음 ‘이상’을 만들어온 것을 자주 봐왔다. 다시는 파업 투쟁기간 동안 삐쳤다고 ‘인사이동’이라는 불합리한 권력을 휘두르는 ‘사’가 나오지 않길 바라며. MBC 노동조합의 권리와 권력을 통한 균형 잡기가 성공하길 기대해본다. 노조의 권리를 넘어 권력에 준하는 자위적 반발권의 신장을 주장하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