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기술저널 전숙희 기자] SBS 사측이 경영진 임명동의제 문제로 노동조합에 단체협약 해지를 통고했다. 노조는 “임명동의제가 마음에 안 든다고 그간 지난한 노사 합의의 결과물을 인질로 삼아 버린 것”이라며 규탄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SBS 사측은 4월 2일 “지난 1월부터 노사는 11차례 단협 개정 교섭을 해왔으나 핵심 사안에 대해 아무런 진전을 이루지 못했다”며 “제도 개선을 위해 단협 해지를 통고한다”며 전국언론노동조합 SBS본부(이하 SBS 노조)에 단체협약 해지를 통고했다.
이에 따라 현재 단협은 법률상 앞으로 6개월간 효력이 지속되며 이 기간에도 단협 개정을 위한 노사 간 교섭은 계속될 수 있다. 그러나 6개월 안에 합의에 이르지 못하면 ‘무단협’ 상태가 된다. 무단협 상태라도 임금과 복지에는 영향이 없고 노사는 새로운 단협 수립을 위한 교섭 절차를 진행하게 된다.
문제가 된 것은 ‘임명동의제’이다. SBS는 2017년 10월 13일 방송사 최초로 대표이사 사장을 비롯한 편성·시사교양·보도 부문 최고 책임자에 대한 임명동의제 도입에 노사 간 합의를 이룬 바 있다.
이후 사측은 지난 1월 임명동의제 조항을 단체협약에서 삭제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사측은 10·13 합의 핵심 내용 중에 그동안 노조가 회사 경영진을 상대로 해온 비난을 멈추고 그 내용에 대해 법적 대응이나 유출을 하지 않는다는 약속이 포함돼 있으나 윤창현 노조위원장이 이를 어기고 사측을 비난하며 대주주와 사장 등을 검찰에 고발해 왔다고 강조했다. 10.13 합의가 파기됐기 때문에 임명동의제 역시 무효라는 것이다.
SBS 사측은 “전 세계에서 경영진 임명동의제를 시행하는 방송사나 기업은 없다. 공영방송에도 전례가 없고 더군다나 경쟁력이 최우선인 민영기업이 대표이사와 경영진 임명 과정에 이사회와 주주들의 의견을 무시하는 제도를 도입하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전했다.
또한, 임명동의제가 공정방송에 필수 불가결한 제도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사측은 “노조 주장대로 공정방송에 필요하다면 정부가 나서서 공영방송들부터 도입을 추진했을 것인데 그렇지 않고, 오히려 시중의 정치선거판처럼 됐다. 노조위원장 동의제로 변질해버린 것”이라고 비판했다.
SBS 노조는 10.13 합의가 파기됐기 때문에 임명동의제도 무효라는 사측의 주장에 대해 ‘임명동의제 단협 조항은 근본적으로 10·13 합의와 별개’라는 입장을 고수해 왔다. 또, 5일 ‘반찬 싫다고 상을 뒤엎는가’라는 제목의 성명을 발표하고 “수많은 구성원은 사안의 핵심이 ‘절차’가 아니라 ‘대의(大義)’ 임을 강조했다. 설령, 사측 말대로 절차적 결함이 있다손 치더라도 제도 폐지의 명분이 될 수 없다”고 반박했다.
이어 “사측의 3차례 알림문은 구성원들의 성명에 쉽사리 반박될 정도로 궁색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임명동의제를 ‘불합리한 제도’라 규정하며, 제도 자체를 공격하고 있다”고 말했다.
임명동의제가 공정방송에 필수 불가결한 제도가 아니라는 사측의 주장에 대해서도 “SBS 사측도 2017년 임명동의제 도입 당시 획기적인 소유경영 분리의 제도화라며 자화자찬은 물론 방송통신위원회에 재허가 조건으로 반영해 달라고 제출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지난해 방통위 재허가 심사에서도 지배주주의 투자가 재허가 조건으로 명문화돼 노조가 정당했음이 확인됐다고 전했다.
SBS 노조는 2011년 MBC 사측이 단협을 파기했던 일을 언급하면서 이로 인해 “조직과 구성원들이 어떤 대가를 치러야 했는지, 나아가 대한민국 방송 환경 전체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살펴보면 그 해악은 상상을 초월한다”며 “반찬 싫다고 상을 뒤엎듯, 단체협약 해지를 이렇게 손쉽게 이용하는 작금의 상황이 상식적으로 납득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노조는 “사측은 단체협약이 해지돼도 우리의 노동조건은 달라지지 않는다고 ‘구두 약속’을 하고 있지만 (중략) 계속 인질이 안전하다고 외쳐도, 인질은 인질일 뿐”이라며, “결국, 치킨 게임이 시작됐다. 협의 공간을 외나무다리로 몰아간 책임은 분명 사측에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