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파 방송의 디지털 다채널 서비스와 공익성

지상파 방송의 디지털 다채널 서비스와 공익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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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연(한국외국어대학교 언론정보학부 교수)

 

지상파 방송은 디지털 시대에도 새로운 방송기술과 제작형태, 전송경로를 모두 활용하여 공적 프로그램을 제공할 필요가 있다. 또한 유료방송이 확산되는 시대에 무료 보편적 서비스를 다양하게 제공함으로써 디지털 방송시대의 공익성도 충족시킬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디지털 환경에서도 지상파 방송이 고유의 공적과업에 부응하는 콘텐츠 서비스를 한다면 이는 다채널 플랫폼을 도입할만한 근거가 된다.

KBS는 디지털 다채널 플랫폼의 형태로 영국의 프리뷰(Freeview)와 비슷한 무료 지상파 다채널 서비스를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의 지상파 다채널 플랫폼 도입 논의는 현재 국내 방송 사업자 간 갈등의 요체가 되고 있다. 하지만 지상파의 디지털 다채널 도입은 사업자 견지에서 측정되기 보다는 디지털 방송 정책의 목표가 무엇인가에 대한 근본적 차원에서 논의가 될 필요가 있다. 이 문제는 사업자 측면에서 가입자 손실이나 수익 모델 확장이라는 차원에서 논의될 문제가 아니다. 디지털 방송시대에 공공자산인 전파운영의 효율성이나 이용자들의 편익 제공 측면에서 검토되어야 한다. 궁극적으로는 융합 미디어 시대에 우리의 방송이 향후 어떤 역할을 수행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장기적인 비전의 차원에서 논의를 이끌어낼 필요가 있다.

 

지상파 디지털 다채널 서비스 도입이 꼭 필요하다면, 그것은 디지털 방송시대의 수용자 복지를 위해서여야 할 것이다. 디지털 시대에도 방송의 공익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기 때문이다. 새로운 방송통신기술이 발달하는 만큼 방송의 보편적인 접근성에 대한 범위와 방법도 확대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수용자가 다양한 고품질의 콘텐츠를 접근할 수 있도록 서비스를 확대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 따라서 지상파 방송의 다채널 플랫폼 도입은 무엇보다도 디지털 전환을 통한 무료 보편적 서비스 촉진의 기회로 활용되어야 할 것이다. 디지털 전환에 있어 지원방안이 셋톱박스나 안테나 등 수신기기 등의 하드웨어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콘텐츠 측면에서도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지상파 다채널 플랫폼을 수용자 복지를 위한 무료 보편적 서비스 제공이라는 취지와 달리 새로운 수익모델 확장이나 지상파 독과점 강화를 위한 사업전략으로 활용해서는 안된다.

 

독일에서는 2010년 2월 지상파 디지털 전환이 완료됨에 따라 디지털 지상파 방송 서비스를 멀티플렉스(Multiplex, MUX)형태로 제공하고 있다. 독일에서 지상파 방송의 디지털 다채널 플랫폼 도입은 사업자 간 이해배치를 둘러싼 논의 대상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디지털 시대에 공영방송이 새로운 기술을 이용하여 기본 프로그램 공급을 확대하는 것을 당연히 여겼기 때문이다. 독일은 디지털 전환과 함께 지상파를 통해 무료로 제공되는 채널 숫자가 세배 이상 늘었고, 시장 경쟁의 형평성이라는 차원에서 공영채널과 민영채널이 균등하게 나누어 분할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독일의 양대 공영방송의 다채널 서비스는 가장 공영적 역할을 할 수 있는 콘텐츠를 기반으로 구성되었다. 문화예술/어린이, 다큐멘터리/교양/소비자정보, 뉴스/시사정보 등이다. 이를 통해 주시청 시간대에 소외된 계층에게도 다양한 방송 서비스를 확대하고, 공영방송의 콘텐츠를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 디지털 전환으로 시청자 입장에서는 셋톱박스만 구입할 경우, 이전의 아날로그시대에 비해서 세배 이상 많은 프로그램 수신이 가능해졌다.

국내 지상파방송의 디지털 다채널 도입의 논지가 공영성 확장이라는 취지에 있다면, 채널 구성이나 편성 역시 그 목적에 합당해야 할 것이다. 국내 방송시장은 지상파의 과도한 시장 지배력으로 인해 별도의 콘텐츠 제작 시장이 제대로 발달하지 못하고 왜곡됐다는 점을 늘 지적받고 있다. 현재의 유료방송 시장에서도 공영 방송은 드라마, 오락, 스포츠 등의 채널PP로 진출하였다. 결국 유료 방송시장에서도 지상파의 막대한 힘을 행사함으로써 유료 미디어 시장 역시 지상파 독점의 재구조화라는 비판을 받게 되었다. 지상파 방송사가 유료방송 진출 시 활용한 채널PP와 비슷한 형태로 디지털 다채널 플랫폼을 서비스를 하려한다면 지상파가 말하는 ‘무료 보편적인 서비스’의 구호가 무색해질 것이다. 따라서 지상파 방송사는 디지털 다채널 플랫폼을 왜 도입해야 하며, 또 무엇에 이용할 것인가를 먼저 고려해야 한다. 만약 이를 고려한다면 디지털 다채널 플랫폼의 채널은 공익성이 강한 전문채널들로 구성되어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

 

시장경쟁이 중요한 융합 미디어시대이지만, 방송은 전통적으로 문화논리를 필요로 한다. 환경의 변화로 인해 탈규제화 요구 등 산업논리 역시 중요하지만 기존의 공영적 전통 역시 굳건히 견지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신규 매체 도입 때마다 그 매체의 의미나 그 도입이 추구하는 취지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매번 고민해야 하는 일이 종종 나타난다. 이것은 그때마다 주로 사업자의 이해관계를 중심으로 그 가부가 논의되기 때문이다. 미디어 정책에서 중시되어야 하는 것은 사업자 논리보다는 수용자 복지에 있. 신규 매체도입이나 수신료 결정 등 미디어 정책상 중요한 사안이 그 때마다 특정 정치, 경제, 사회집단의 이해관계에 따라 새로운 질서에서 결정되지 않아야 한다. 미디어 정책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공익성에 바탕을 둔 미디어 정책의 철학을 보여주는 일관성이다. 이러한 일관성을 위해서는 장기적 과정을 통한 법제 도입이 필요하며, 이 모든 과정이 헌법적 질서의 견지에서 나타나야 할 것이다. 따라서 국내의 지상파 방송의 디지털 다채널 플랫폼 도입은 국내 디지털 전환의 공익성의 차원에서 지상파 방송의 정체성 및 향후 역할에 대한 검토 선상에서 지속적으로 논의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