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감 미디어와 방송 콘텐츠의 진화

[칼럼] 실감 미디어와 방송 콘텐츠의 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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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기술저널=서영우 KBS 수석연구원/공학박사] 선거 개표 방송은 방송 기술의 꽃이라도 불린다. 방송사들은 전 국민의 관심이 집중돼 있는 선거 결과를 보다 더 흥미롭게 연출하기 위해 오랜 기간에 걸쳐 기획하고 준비한다. 그중에서도 매직 스튜디오, 드림 스튜디오 등 다양한 명칭으로 브랜드화한 선거 개표방송 시스템은 가상·증강현실(VR·AR)로 대표하는 실감 미디어 그래픽 기술의 집약체로, 방송사가 가장 공을 들이는 부분이다. 후보자 정보 및 각종 데이터 표출에서부터, 투표 결과에 시시각각 반응하는 출마자의 기뻐하는 행동 및 실망하는 행동들이 실감 나게 연출돼(비록 사전에 제작됐지만) 선거 결과를 지켜보는 사람들이 채널을 고정할 수 있도록 화려한 화면을 제공한다. 그만큼 실감 미디어 기술은 방송 제작 현장에서 그 중요성을 인정받고 있다.

실감 미디어로 통칭하기는 하나 그 내면에는 다양한 기술적 요소가 있다. 앞서 언급한 선거 방송이나 일기예보 등 생활 정보 프로그램에서 주로 사용하는 것이 크로마키(chromakey)를 활용한 가상 스튜디오로서, 일종의 AR 기술이다. 실제 진행자의 배경에 그래픽으로 만들어진 가상의 공간을 대입하고 이를 카메라와 연동해서 마치 실재하는 스튜디오처럼 연출하는 것이다. 여기에 센서 및 동작 인식 기술이 더해져서 보다 더 자연스럽게 진행자와 상호작용을 하는 그래픽 콘텐츠가 만들어진다.

스마트 단말기의 성능이 높아지고 인터넷 기반의 동영상 플랫폼이 확산되면서, VR 기술을 활용한 콘텐츠 제작도 늘어나고 있다. 방송 콘텐츠에서 주로 활용하는 기술은 360도 전 방향을 보여주는 360도 VR로, HMD(Head Mounted Display)나 스마트 단말기를 통해 시청자에게 360도 전 방향을 감상할 수 있는 콘텐츠를 제공한다. 이 분야를 가장 선도하는 것은 ‘게임’으로, 그래픽으로 연출된 1인칭 시점의 가상 콘텐츠를 제공하며 시청자의 의지에 의해 자유롭게 공간을 이동할 수 있는 장점을 충실히 활용하고 있다. 그러나 방송 콘텐츠 등 실사에 기반한 콘텐츠의 경우는 특수하게 고안한 여러 대의 카메라 렌즈로 모든 방향의 화면을 겹치게 촬영한 다음, 영상 스티치(stitch) 기술을 통해 하나의 영상으로 합성한다. 이는 파노라마 영상의 일종으로, 시청자는 360도 전 방향을 감상할 수는 있지만 카메라의 움직임에 따라 수동적으로 이동하는 제한적 1인칭 시점이라고 볼 수 있다.

방송 콘텐츠 분야의 360도 VR은 뉴스·저널리즘, 다큐멘터리, 예능, 토크쇼, 스포츠 등 다양한 장르에 적용하고 있다. 콘텐츠에 따라서 시청자와의 상호작용, 시청자 주인공 시점, 관찰자 시점, 새로운 경험 및 체험 등 다양한 요소가 반영되는데, 영국 BBC 방송사에서 조사한 결과에 의하면 가장 광범위하게 실감 기술을 적용할 수 있는 방송 분야는 ‘저널리즘’이었다. 국내 방송 및 언론사들도 ‘VR 저널리즘’이라는 장르를 통해서 시청자에게 현장의 모습을 생생하게 전하기 위한 시도를 하고 있으며, 특히 KBS에서는 홈페이지 및 뉴스 앱에 ‘VR 저널리즘’ 코너를 별도로 만들어서 방송에서 보여주지 못한 다양한 뉴스 현장의 소식을 360도 영상으로 전하고 있다. 그 밖의 장르의 경우, 유튜브(Youtube) 및 페이스북(Facebook)에 멀티미디어 채널을 별도로 만들어 360도 VR 클립을 제작 및 배포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최근 방송사들은 방송 콘텐츠를 활용해 오프라인에서 실감 미디어를 즐길 수 있는 기술을 개발 또는 도입해 시청자들과 만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MBC의 VR 전시관에 이어 KBS에서도 스타 VR이라는 실감 미디어 체험관을 마련해 <전설의 고향>, <1박 2일>, <뮤직뱅크> 등 인기 방송 프로그램을 VR과 AR로 옮겨서 방송국을 방문하는 시청자에게 새로운 재미를 선사하고 있다.

360도 VR 콘텐츠 서비스가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제작자 입장에서 대표적 문제는 PD나 작가의 의도 전달 즉 스토리텔링의 전달이 어렵고 시청자의 시선이 분산된다는 점이다. 이는 특정 메시지를 전달해야 하는 연출자의 입장에서 매우 혼란스러운 부분이다. 시청자 입장에서도 여러 가지 문제점이 언급되는데, 360도 전 방향을 보기는 하지만 의지에 의해서 이동이 어렵다는 점과 해상도, 부자연스러움 등 VR 단말기의 기술적 문제로 인한 실제와의 괴리 등이 대표적이다. 멀미나 두통을 호소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360도 VR 콘텐츠가 본격적으로 등장한 지 수년이 지났고 여러 방송사가 적극적으로 콘텐츠 제작을 추진해왔지만, 콘텐츠가 기대만큼 확산되지 않았다는 의견도 많다. 그 원인으로 지적되는 것은 앞서 언급했던 바와 같이 단말기의 보급 문제, 해상도 및 네트워크 속도 문제 등으로 실재감을 느끼게 해주기 부족했고 일부 콘텐츠의 경우 멀미가 발생하는 문제 등 아직 기술적으로 완성도가 부족하기 때문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영상 처리 및 단말 기술이 점점 발달하고 있고 1인칭 시점에 대한 다양한 시도를 통해 360도 영상 시장은 계속 확대되고 있다. 올해 미국에서 열린 NAB Show에서도 실감 미디어 특별존(Immersive Media Zone)이 구성되고 8K 해상도까지 지원하는 다양한 형태의 일체형 360도 VR 카메라가 출시되는 등 기술이 진보하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2018년 주파수 경매에서부터 시작해 본격적 도입이 예상되는 5G 기술은 기가비트 데이터 대역폭을 통해 스마트 단말기에서 고화질 실시간 서비스를 대중화해 앞으로 초실감 미디어가 대세를 이룰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앞으로 모바일 방송 콘텐츠는 어떻게 진화할까? 아니, 그보다도 초실감 미디어를 더 실감 나게(?) 표현하기 위해 모바일 단말기가 어떻게 진화할지도 흥미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