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의 시․군 통합은 중앙정부의 일방적이고 강제적인 통합이나 다름없어

현재의 시․군 통합은 중앙정부의 일방적이고 강제적인 통합이나 다름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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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영 경실련 정책실 부장)
 
전국이 시․군 통합 등 행정구역 개편 논란으로 들썩이고 있다. 현재 행정안전부는 통합건의서를 제출한 18개 지역 46개 지방자치단체의 지역주민들을 대상으로 한 주민의견조사(여론조사)를 진행 중에 있다. 이 조사를 두고 벌써부터 조사방식, 질문 내용의 진위 여부를 두고 논란을 벌이고 있으며 결과가 발표되고 나면 찬반 갈등은 더욱 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이같은 갈등들이 나타나고 있고 또 예견되고 있음에도 현재 행안부의 행태를 보면 이를 해결할 의지는 전혀 없이 오로지 통합을 강행하기 위해 애쓰고 있는 모습이다.

 

지방자치의 시대에 지역 문제를 해결하는 주체는 지역주민이어야 함은 너무나도 당연하다. 시․군․구 기초자치단체는 지역 내의 작은 일상적인 문제를 지역주민 스스로 해결하는 생활자치단위로서 풀뿌리 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있는 지역공동체여야 한다. 지역 공동체에 대한 통합에 대한 논의는 철저하게 지역주민들의 의사에 따라 자율적으로 추진되어야 한다. 하지만 현재 통합이 추진되고 있는 상황은 어떠한가? 통합의 주도권을 중앙정부가 완전히 쥐고 있는 형국이다. 시․군 통합은 이명박 대통령이 8.15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지방행정체제 개편의 필요성을 언급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추진되었다. 이에 행안부는 몇일이 채 지나지 않아 ‘시․군 자율 통합 지원계획’을 발표하고 통합 지역에 대한 대대적인 재정적 지원을 약속했다. 동시에 통합을 원하는 지역들은 건의서를 제출하고 주민 여론조사를 거치고 지방의회 의결(필요한 경우 주민투표 실시)을 통해 통합을 결정한다는 일련의 과정들을 연내에 모두 끝내겠다고 밝혔다. 통합 건의 이후 한달여도 되지 않은 짧은 시간에 통합 여부에 대한 주민의견조사가 진행 중이다. 지역주민들이 과연 통합이 가져오는 장단점, 효과와 문제점 등을 충분히 논의하고 이해할 수 있었을까? 오히려 중앙정부는 통합 지역에 막대한 재정 지원 등 각종 인센티브로 주민들을 현혹하는가 하면, 검증되지 않은 왜곡된 숫자로 통합 효과를 일방적으로 홍보하면서 주민들의 자율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을 흐리게 하고 있다. 이것도 모자라 여론조사가 진행되는 와중에도 행안부장관은 통합 지역에는 지역의 오래된 숙원 사업을 해결해주겠노라고 선언하기까지 했다. 또한 반대 여론이 예상보다 높아서인지 통합지역의 선정 기준이 되는 여론조사의 찬성율도 원칙없이 오락가락하고 있다. 이쯤되면 ‘자율’ 통합이라는 이름이 무색해질 수 밖에 없다.

 

시․군 통합은 주민생활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중대한 사안이다. 시한에 쫓겨 밀어붙일 사안이 절대 아니다. 많은 전문가들은 우리의 시군구 기초자치단체가 생활자치와 풀뿌리 민주주의를 실현하기에는 큰 규모라고 지적한다. 실제 선진국들이 1만~2만명 규모의 기초단체를 가지고 있는데 비해 우리의 기초단체는 평균 20만명에 이르는 규모를 가지고 있다. 즉, 통합이 능사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렇게 통합에 대해서는 보다 신중할 필요가 있으며 지역주민들의 이를 충분히 토론하고 논의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시군 통합에 대한 결정은 반드시 주민투표를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 현재 중앙정부는 주민투표 절차를 생략하고 주민여론조사를 토대로 지방의회의 의결만으로도 통합을 결정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주민투표 절차를 생략하고 시․군 통합을 결정하려는 것은 지방행정구역 개편에 있어서 지역주민의 자율적인 결정권이 가장 우선시 되어야 한다는 기본 원칙을 무시한 것이다. 진지하고 충분한 논의와 검토 과정을 거치지 않고 얼마든지 조작가능한 주민여론조사 결과를 토대로 중앙정치권의 통제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임기 말의 지방의회 의결만으로 통합을 결정하려는 것은 주민의 진정한 자율결정권을 철저하게 유린하려는 발상이나 다름없다.

 

지방행정체제 개편에 있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지역주민들의 의사이다. 지방선거를 불과 아홉 달도 채 남기지 않은 상황에서 중앙정부와 정치인들에 의해 일방적으로 추진되고 있는 통합에 대한 숨은 의도가 무엇인지를 주민들은 되짚어보아야 한다. 현재의 시․군 통합은 시․도 폐지를 위한 전초전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이는 기초단체는 생활 자치를 실현하는 단위로 만들고 광역단체의 규모를 키워 지방정부의 경쟁력을 키우는 세계적인 흐름과는 완전히 역행하는 것이어서 매우 문제가 심각하다. 중앙정부는 지금의 일방적인 통합 강행을 중단해야 한다. 시․군․구 통합을 비롯한 지방행정체제 개편은 충분한 시간을 갖고 사회 각계각층의 토론을 통해 그 효과를 검증하고, 지역주민들 사이에 충분한 논의와 토론을 거쳐 최종적으로는 주민들이 자유롭고 민주적인 주민투표 절차에 의해 결정해야 한다. 정치적 이해관계를 떠나 지역공동체를 살리고 주민의 편익과 지역경쟁력을 증진시킬 수 있는 방향은 무엇인지에 대한 신중하고 진지한 논의가 우선적으로 진행되어야 한다.

 

시․군 통합 등 행정구역 개편은 한번 하고 나면 다시 되돌리기 어렵다. 되돌리기에는 막대한 경비와 노력이 들며 감정적인 갈등과 분쟁의 상처가 남는다. 모두 주민들이 부담해야 한다. 정치인이나 행안부로서는 스쳐가는 일이지만 주민들은 일생을 두고 불편과 후유증을 앓아야 한다. 책임도 지지 않는 정치인과 중앙정부에게 주민들의 운명을 맡길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