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_입시명문 귀족학교 설립, 지켜만 봐야 하나

기고_입시명문 귀족학교 설립, 지켜만 봐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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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시명문 귀족학교 설립, 지켜만 봐야 하나

최민선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 교육연구원

‘귀족’이란 단어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귀한 직위에 있어 특권을 가진 사람들’이라는 의미다. 봉건시대에 귀족은 미천한 신분으로 지주에게 자신의 수확물을 바쳐야 했던 농노를 부리는 부유한 특권계층이었다. 당시 농노의 자제에게는 교육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그저 농사를 짓는 것을 천직으로 대물림했다. 반면 귀족의 자제는 다양한 형태의 소수 귀족학교에서 마음껏 역사와 철학을 논하며 지도자로서의 리더쉽을 키워갔다. ‘귀족학교’란, 그런 ‘귀족이나 특정한 권문의 자제들을 위해 세워진 학교’라는 의미로 쓰인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국제중학교(국제중)는 현재 우리나라에 있는 몇몇 귀족학교 중 하나로 편재된다.

 

우선, 국제중 설립 추진과정을 살펴보자. 국제중 설립 사안은 지난 2006년, 당시 서울시교육감이었던 공정택 교육감에 의해 불거졌다가 초등학생 입시부활, 사교육비 증가 등의 문제를 이유로 철회됐다. 그러나 올해 8월, 선거를 통해 연임하게 된 공 교육감은 당선 인터뷰 중에 불현듯 ‘국제중 설립’을 발표했다. 기본적인 절차를 거치지 않은 채였다. 이후 교육과학기술부는 협의를 요청받은 지 한 달도 안 돼 이를 최종 승인했고, 서울시교육청은 입시 전형과 수업 방식 등을 언론을 통해 발표했다. 아버지께 한번 퇴짜 맞은 며느리를 아무런 상의도 없이 다시 집안에 불러들인 셈이다. 이로 인해 집안이 온통 쑥대밭이 된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럼에도 서울에는 내년 3월 개교를 기다리는 2개의 국제중이 11월부터 시작될 신입생 선발을 위한 원서접수를 기다리고 있다.

 

그렇다면 국민들은 국제중 설립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지난 9월 19일자 한국일보에서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학부모의 약 71%가 국제중 설립을 반대했고, 그 중 초등학생 학부모는 약 78%가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반대 이유는 "초등학교 교육이 파행되고 사교육비가 증가하는 등 바람직하지 않기" 때문. 반면, "글로벌 인재를 양성하고 조기유학을 줄이는 등 바람직하다"는 대답은 24.7%에 불과했다.

국민들이 국제중이 설립되면 초등학교 교육이 파행된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과거 중학교 평준화가 되기 전, ‘명문중’ 입학을 위한 초등학생 입시가 부활할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우리나라와 같은 학벌사회에서 ‘명문중’ 입학은 출세를 위한 고속 엘리베이터다. 따라서 ‘명문중’ 국제중을 입학하기 위한 경쟁은 치열하다. 현재 국내에서 유일하게 전국 단위 학생선발을 하는 청심국제중 일반전형의 경우, 2006학년도 경쟁률이 25대 1, 2007학년도에는 52대1을 기록한 데 이어 2008학년도에도 22.6대1에 이르는 높은 경쟁률을 보였다. 이번에 서울시에서 개교하려 하는 두 개의 국제중의 경쟁률을 예상할 수 있다. 명문대 입학을 위한 고등학교 입시교육이 이제 초등학교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이는 또한 경쟁에서 이기기 위한 사교육 확대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또한 국민들이 국제중 설립을 반대하는 이유 중 하나는 수업료가 비싸기 때문이다. 현재 개교를 준비 중인 서울 대원국제중과 영훈국제중의 한 해 순수 수업료는 입학금을 포함해 550만 원이다. 교복이나 해외연수비, 학교 안팎 과외비 등은 빠진 액수다. 이는 청심국제중의 한해 수업료 436만4000원(입학금 포함)보다도 많은 액수다. 그 뿐이 아니다. 주로 성적이 상위권인 이 학생들은 다음 코스로 특목고나 자사고를 택한다. 따라서 치열한 ‘경쟁’으로 좁은 문을 통과한 이들은 이제 피흘리는 전쟁으로 바늘 구멍을 통과해야 한다. 사교육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국제중 입학 이후 더 많이 들어갈 사교육비는 서민들은 감당하기 어렵다. 실제 교과부 자료를 보면 청심국제중의 2006년 신입생 가운데 제조업, 운송업, 농업, 수산업, 임광산업에 종사하는 서민 부모를 둔 학생은 단 한명도 없었다. 그야말로 ‘귀족학교’라 불릴만 하다.

 

일사천리로 진행되던 서울시교육청의 국제중 설립 계획은 지금 마지막 난관에 부딪쳤다. 바로 서울시 교육정책을 심의·의결하는 서울시 교육위원회에서 시교육청의 동의안을 보류하는 대신, 여론조사를 실시할 것을 권고한 것이다. 교육위원회는 그 결과를 오는 14일과 15일 양일간 열리는 임시회의 전까지 제출하라고 했다. 그러나 시교육청은 사실상 이를 거부한다는 입장이다. 이에 이부영 교육위원은 항의와 반대의 뜻으로 단식농성에 들어갔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참교육학부모회, 참여연대 등 25개 사회단체를 비롯, 국제중 반대 강북주민대책위원회, 광진주민대책위원회 등 관계지역 주민들도 무기한 농성에 들어갔다.

귀족학교는 ‘귀족이나 특정한 권문의 자제들을 위해 세워진 학교’라 했다. 그런 입시명문 귀족학교 설립을 우리는 그저 지켜보고만 있어야 할 것인가. 우리 교육은 지금, 봉건시대로의 회귀의 기로에 놓여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