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기술저널 백선하 기자] 방송통신위원회가 심의에서 제재를 받은 방송 프로그램에 부과하는 벌점을 지금보다 최대 2배 늘리기로 해 논란이 일고 있다. 시민사회단체와 방송계에 이어 정치권에서도 이번 개정안이 통과되면 방송사의 내부 검열이 강화될 것이라는 우려 섞인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방통위는 10월 23일 전체회의를 열고 이 같은 내용을 골자로 하는 ‘방송 평가에 관한 규칙’ 개정안을 보고 안건으로 상정했다.
개정안에 따르면 운영‧내용‧편성으로 구성되는 3개의 방송 평가 영역 중 운영의 비중을 축소하고, 내용 및 편성의 비중을 확대했다. 방통위는 “각 매체별 총점은 유지한 상태에서 시청자에게 직접적인 영향이 적은 운영의 배점을 줄이고 대신 내용과 편성의 배점을 높여 방송의 품격을 제고하는 한편 편성의 다양성과 균형성을 강화하려 했다”고 설명했다.
먼저 내용 영역의 ‘방송 심의 관련 제규정 준수 여부 평가’의 감점 수준을 강화했다. 지상파 방송사와 종합편성채널이 방송 심의 규정을 어겼을 때 부과하는 감점은 전체적으로 1.5배 강화했고, 공정성‧객관성‧재난‧선거 방송의 심의규정을 위반할 경우에는 배로 늘렸다.
현재 방송통신심의위원회로부터 주의, 경고, 관계자 징계, 시정 명령, 과징금 처분을 받으면 해당 방송사에는 각각 –1, -2, -4, -10~15의 감점이 부과된다.
방통위는 “지난해 8월 제3기 정책 과제와 올해 초 업무 계획에서도 방송의 공정성 관련 규정을 위반하는 경우 방송 평가에서 감점 수준을 강화하겠다는 정책 방향을 밝힌 바 있다”며 “막말, 자극적인 방송, 편파 방송에 대한 국회와 시민사회단체의 문제제기를 고려한 것”이라고 말했다.
또 지상파 방송사와 종합편성채널사용사업자(PP) 평가에서 공익광고 편성 비율을 확대키 위해 ‘비상업적 공익광고 편성 평가’를 신설했고, 주 시청 시간대 특정 방송 분야의 편중 예방을 위해 ‘주 시청 시간대 편성 평가’를 마련했다. 종합유선방송사업자(SO)와 위성방송의 경우에는 매체별 특성을 반영해 채널 구성의 다양성 정보 등을 평가하는 ‘채널 구성 다양성 평가’를 신설하고, ‘PP 만족도 평가’를 추가했다.
‘오보 방지 노력’ 평가 항목도 신설했다. 언론중재위원회의 정정 보도 결정이 나면 6점, 법원의 정정 보도‧허위 보도에 따른 명예훼손 판결이 나면 8점을 감점하는 대신 방송사 자체적으로 관련 전문가를 고용하거나 외부 자문을 받는 등 타당성 높은 여론조사 결과를 보도하면 3점 가점을 주기로 했다.
외주 관련 표준계약서 등 상생협력 노력을 평가하기 위해선 ‘프로그램 등의 제작‧유통상 공정 거래 질서 확립 노력’, ‘방송기술 및 방송 콘텐츠 투자 평가’ 등 평가 척도를 보완했다.
이번 개정안은 행정예고를 통한 의견 수렴, 규제 심사 등 일련의 절차를 거쳐 12월 전체회의에서 의결‧확정될 예정이며, 개정안이 확정되면 내년부터 시행돼 2016년 방송 실적부터 적용된다.
방통위는 “이번 개정안이 방송 사업자들의 프로그램 품격 향상, 오보 방지 노력을 촉구하고 방송 평가의 내실화에도 기여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지만 개정안에 대한 시민사회단체, 학계, 정치권의 반응은 냉랭하기 짝이 없다.
전국언론노동조합은 “여야 6대 3 구조로 권력 비판 보도에 대한 표적 심의, 정치 심의, 공안 심의 논란이 끊이질 않는 검열 기구로 전락한 기관이 방심위”라며 “자신들의 심의 결과가 법원에서 번번이 뒤집히고 있음에도 권력 비판 보도에는 재갈을 물리고 정부 여당 편들기 보도는 옹호하는 등 이미 분별력을 상실한 상태인데 이런 방심위에 방송사의 재허가‧재승인의 중차대한 평가 요소를 맡기겠다는 것은 한 마디로 ‘고양이 앞에 생선 맡기기’”라고 비판했다. 3년마다 이뤄지는 방송사 재허가(승인) 심사에서 40%의 배점을 차지할 만큼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 방송 평가인데, 공정성 논란에 휩싸인 방심위가 영향력을 더 크게 행사할 수 있게 하는 것 자체가 말이 되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이 때문에 야당 추천 인사인 김재홍 부위원장과 고삼석 상임위원은 본 개정안의 보고 안건 상정 자체를 반대하며 회의에 불참했다.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소속 유승희 새정치민주연합 의원도 10월 25일 성명을 통해 “개정안은 언론 활동의 억압과 위축으로 직결될 수밖에 없다”며 “논란이 많은 사안을 막무가내로 밀어붙여선 안 되며 즉각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유 의원은 “3년마다 받는 재승인 심사에서 벌점에 따라 방송사의 존폐가 결정될 수 있는데 (개정안이 통과된다면) 방송이 정권의 눈치를 보면서 자기 검열을 강화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시민사회단체와 학계, 정치권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방통위는 개정안 추진을 강행한다는 입장이어서 앞으로 상당한 진통이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