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산업혁명 시대, 등대 공장과 미디어 기술

[칼럼] 4차 산업혁명 시대, 등대 공장과 미디어 기술

1997

[방송기술저널=박성환 박사, EBS 수석연구위원] 4차 산업혁명 시대의 핵심기술이 산업 현장에 적용되고 있다. 산업혁명 시기에는 새로운 주도권을 잡는 사람과, 일자리를 잃고 떠나야 하는 사람이 공존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더 큰 지각변동이 예상되고, 방송계도 좌초 위기이다. 이미 소셜 미디어의 등장으로 방송 산업의 추락은 시작되었다. 이어서 인구감소, 고령화로 수요가 감소하는 ‘수축 사회’가 다가오고 있다. 방송 산업이라는 호황의 문이 서서히 닫히는 것이다. 이른바 ‘한 방’이라는 히트작에 의존하던 콘텐츠 산업도 축소되는 마당에 ‘광고’를 주 수익원으로 하는 방송 미디어는 ‘제로섬’ 경쟁으로 더 큰 위기임에 틀림없다.

지난 60여 년간 산업의 성장기, 팽창 사회에 편승해서 달려온 방송 산업은 다가오는 수축 사회를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 지상파 방송의 위기 탈출과 방송의 공적 책무를 지키는 일에 미디어 기술의 역할은 무엇일까?

우리에게 익숙한 ‘미디어 기술’은 ‘수축 사회’에서 방송 산업의 위기 탈출 방법 중 하나가 될 수 있다. 4차 산업혁명 기술을 적용하는 ‘등대 공장’의 사례에서 찾아보자. ‘등대 공장(Lighthouse Factory)’은 말 그대로 어두운 밤하늘을 밝히는 등대가 뱃길을 안내하는 것처럼 등대 역할을 하는 공장을 말한다. 4차 산업혁명이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한 세계경제포럼(WEF)에서는 2018년부터 전 세계 공장들을 심사해 매년 두 차례씩 등대 공장을 선정한다. 4차 산업혁명의 핵심기술인 인공지능(AI), 빅 데이터(Big Data), 사물인터넷(IoT), 로봇 기술 등을 활용하는 제조업 혁신공장을 의미한다. 즉, 로봇과 인간이 협력하는 차세대 공장을 말하며 한국에서는 포스코, LG전자가 선두에 있다.

공장이라고 하면 우리는 자동화·대량 생산이 먼저 떠오른다. 흥미로운 사실은 대량 생산 역사 저변에는 양초가 있다는 것이다. 양초의 대량 생산도 1차 산업혁명과 역사를 같이했을까? 그렇지는 않다. 1784년 영국에서 증기기관의 발명으로 생산이 기계화되면서 사람의 힘으로 하던 노동력을 대체한 시기를 1차 산업혁명이라고 한다. 기계화는 되었지만 밤늦게까지 일할 수는 없었다. 전등이 없었기 때문이다. 어둠을 밝혀주던 귀한 수제 양초는 1834년에야 대량 생산이 가능했다. 요셉 모건(Joseph Morgan)이 양초를 대량 생산할 수 있는 기계를 발명한 것은 증기기관 발명과 50년의 시차가 있다. 실린더 안에 양초를 굳혀서 피스톤으로 밀어내는 간단한 기계로, 한 시간에 1,500개의 양초를 생산했다고 한다. 전구를 발명한 미국의 토머스 에디슨의 출생이 1847년이었으니, 당시로는 획기적인 일이었다.

양초의 대량 생산으로 밤에도 일하는 문화가 생겨났다. 물론 본격 대량 생산이 가능한 시기는 1870년대로 전기에너지의 등장부터였다. 그래서 2차 산업혁명 시대를 대량 생산 시기라고 부른다. 정확히는 1882년 에디슨이 뉴욕에 세웠다는 상업 발전소 건설 이후로 봐야 할 것이다. 에디슨이 발명한 필라멘트 백열등의 상용화 시기이기 때문이다. 전구를 구해도 불을 밝힐 수 없던 시기가 10여 년 있었다. 이는 40여년전 한국을 국빈 방문했던 아프리카의 모 대통령은 귀국길에 묵었던 호텔 욕실의 ‘수도꼭지’를 달라고 했다는 이야기가 생각나게 하는 대목이다. 본국에 가서도 수도꼭지만 틀면 수돗물이 나올 것이라고 기대했을까? 다행인지 불행인지는 모르나 어쨌든 밤늦게 일하는 문화는 양초의 대량 생산에서부터 시작되었으며, 전기와 전등의 보급으로 일상화되었다.

미디어 산업에도 양초와 전등 같은 역할의 시기가 있다. 소셜미디어의 등장이 양초의 대량 생산처럼 미디어 이용 시간이라는 판도를 크게 넓힌 것이라면, 4차 산업혁명 기술에 기반한 인간 중심의 메타버스 세상은 전기에너지와 전등의 상용화시기에 비유할 수 있다. 그래서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이하는 가교는 ‘등대 공장’이다. 제조업이 현실과 가상공간을 넘나들며 일하는 메타버스 세상을 먼저 열어간다. 제조업과 글로벌 빅테크 기업이 산업 전반의 변혁을 이끌고 있고, 등대 공장이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대표하는 마중물이 되는 격이다. 온·오프라인 협업형 일자리를 창출하면서, 우리의 일상생활에도 변화의 물결을 몰고 올 것이다.

‘등대 공장’은 1차 산업혁명과 2차 산업혁명 시기에 보여준 오프라인 혁명과 3차 산업혁명 시대의 온라인 혁명이 만나는 곳이다. 물리적인 세상과 가상공간을 오가는 일자리 혁명을 데려올 것이다. 이것이 4차 산업혁명의 핵심이며 기계 중심의 시대를 앞당긴다. 인공지능과 빅 데이터를 바탕으로 기계가 스스로 재고를 파악하고, 생산량을 조절하는 시대도 열 것이다. 메타버스 세상으로 가려면 여기에 어떤 기술을 접목해야 할까? 메타버스 세상을 꽃 피우는 화룡점정 역할을 할 기술이 필요하다. 바로 가상현실(VR), 증강현실(AR), 혼합현실(MR), 확장현실(XR) 기술이다. 미디어 핵심기술이 산업의 자동화, 업무교육, 공정관리와 제품 디자인 등의 분야에 적용되어야 한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메타버스 세상’이 열리게 된다.

아이러니하게도 미디어 기술이 제조업에서 먼저 발전해야 방송사에도 미래가 있다. 가까이는 저렴하게 장비 수급이 가능하고, 창의적인 콘텐츠 제작을 촉발하는 촉매 역할이 기대된다. 제조업이 앞당기는 4차 산업혁명 시대는 ‘수축 사회’에서도 미디어 산업의 팽창 동력이 되어줄 것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의 메타버스 세상을 열어가는 일에는 인공지능(AI), 빅 데이터(Big Data), 사물인터넷(IoT), 로봇 기술과 더불어 확장현실(XR) 기술이 핵심 열쇠가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