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중계 유감

[칼럼] 축구 중계 유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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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기술저널=오건식 전 SBS 국장] 지난 10월 15일 평양에서 남북 간의 카타르 월드컵 아시아 지역 2차 예선 경기가 있었다. 북한식으로 하면 북남 간의 경기. 두 팀이 남과 북일 뿐만 아니라 두 팀 다 예선 전적 2승을 거두고 있었기에 조 1위를 다투는 나름대로 중계 가치가 있는 경기였다. 유사 이래 유명한 경기 중 하나가 경평전 축구이었으니 중계방송이 빠져서는 안 될 것이었다. 버뜨 이 경기는 결과적으로 3무 경기가 되어버렸다. 무관중, 무중계, 무득점.

무중계도 희한하지만 더욱 해괴한 일은 무관중이었을 것이다. 홈 어드밴티지를 포기한다는 것은 국가대항전뿐 아니라 모든 스포츠 경기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얼마 전 영국 EPL에서 사우스햄턴이 레스터에게 9대0으로 대패하는 일이 있었다. 이 경기에서 사우스햄턴이 욕을 바가지로 먹은 이유는 스코어도 스코어지만 홈 경기에서 만방으로 깨졌다는 이유일 것이다. 혹시나 원정 경기에서 나온 스코어라면, ‘물을 갈아 먹어서’라거나 ‘경기장 분위기가 살벌해서’라고 둘러댈 수가 있었을 것이다. 근데 홈 경기에서 작살이 나니 입이 백 개라도 할 말이 없었을 것이다. 그만큼 홈 경기의 장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올해 MLB 월드시리즈 우승팀인 워싱턴이 빛나는 이유는 4승을 모두 적지에서 거두었다는 점일 것이다. X개도 홈에서는 50점을 따고 들어간다는데 모두 적지에서 거둔 승리이고, 게다가 최종전은 역전승이었으니 어웨이 경기에서 빛난 그들의 멘탈에 박수를 보낼 수밖에 없다. 그러거나 말거나 북한은 무관중을 선택했다. 지난 9월 독일의 한 여행사에서는 평양 남북한 월드컵 경기 참관 2박 3일 상품을 미화 950불에 판매한다는 기사를 보았다. 북경 출발 상품은 경기장 입장료 제외하고 520달러라는 기사도 있었다. 이 상품들을 예약한 사람들이 있었다면 아마도 난감한 상황이 되었을 것이다. 북한이 경제적 이점까지 있는 홈 어드밴티지를 스스로 포기한 정확한 이유는 알기 어렵다. 추측만 할 뿐이다. 한국인을 포함한 외국인에게 입장권을 50달러씩 만장만 팔아도 50만 달러이고, 외국인 응원단이 간식이나 기념품으로 일 인당 10달러만 써도 합쳐서 60만 달러인데. 60만 달러면 현 시세로 쌀 2,500톤 정도를 살 수 있는 금액이다. 이는 대한민국 기준으로는 약 4만 명이 1년간 소비하는 양이다. 이 역사적 경평전에서 또 하나 해괴한 일은 경기 진행 상황을 알 수가 없었다는 것이었다. 교통, 방송 및 통신의 발달이 이루어진 현대사회에서 이렇게 비중 있는 경기의 중계방송이 없었다는 것은 상상할 수가 없다. 북한의 위성방송은 DVB-S로 남쪽에서도 수신은 가능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북측에서 방송이 없으니 이마저도 불가능했다. 봉홧불이나 비둘기로 통신하던 시대로 돌아간 느낌이다.

혹시 당신이 축덕이라면 경기를 생방으로는 못 보았어도 녹화 중계라도 보고자 하는 당연한 요구가 있었을 것이다. 최소한 국대 경기니까. 그러나 이마저도 주관 방송사는 그네들이 건네준 DVD의 화질 때문에 포기한다고 했다. 그네들이 건네온 DVD로 방송하는 것은 UHDTV 시대에 VHS급이나 그 이하의 화질로 방송하는 것 같아서 방송 불가 판정을 내렸다고 한다. 역시 국민의 시력 보호를 위한 공영방송다운 과감한 결단이었다.

그렇다. 화질은 방송에서 아주 큰 부분을 차지한다. 화질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는 방송기술만큼은 우리나라가 전 세계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다고 본다. 전 세계적으로 초고화질의 UHD 본방송을 하는 나라가 몇이나 되겠는가? 물론 민족적 조급성과 ‘세계 최초병’이 낳은 결과라고 하지만 팩트는 팩트다. UHD는 고사하고 SD급 디지털방송도 못 하는 나라가 전 세계에 천지삐까리다. 적어도 방송기술에서만큼은 우리나라는 강팀이다. 가전사에서는 이제 8K TV를 홍보하고 있으며 4K TV는 ‘이미 흘러간 강물’ 취급을 하고 있다.

화질은 자유나 공기와 유사한 성격을 지닌다. 상향은 가능하지만 하향은 거의 불가능하다. 홍콩시위는 범죄인 송환법으로 시작되었지만 그 본질은 자유에 대한 갈망에 있다고 본다. 영국의 관리하에서 누렸던 자유를 기억하는 이들이 중국에 반기를 든 것이리라. 보통 원인이 소멸하면 사태가 진정이 되는데, 홍콩 정부가 범죄인 송환법을 철회하였는데도 진정이 안 되는 이유일 것이다. 우리도 지난 3공이나 5공 시절로 돌아가서 살라면 살 수 있을까? 3공이나 5공은 당구 경기의 종목이 아니다. 애인에게 한번 명품을 선물한 적이 있으면 더 이상 저렴한 물건을 선물로 주기는 어렵다.

저렴한 화질, 그럼에도 불구하고 녹화 중계는 되어야 했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이건 선수고 저건 공이라는 정도의 구분만 된다면 방송을 해야 했다고 본다. 어차피 북한에서 제작한 중계화면이 UHDTV급 화질이었으면 하고 기대하는 국민은 아무도 없다. 최대한 화질을 Enhance하고나서 저화질이라도 방송을 했어야 한다. 이건 화질의 문제가 아니라 팩트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진짜로 경기를 했는지부터 경기력은 어떠했는지, 경기 분위기는 어떠했는지 등등은 화질과 무관하게 축덕이 아니라도 다 알 수 있다. 그렇게 해서 무관중 및 무중계로 대처한 북한에 대해 대한민국은 스펙트럼이 넓다는 당연함을 보여주었어야 한다. 괜히 ‘방송하지 않은 이유가 과연 화질 때문만이었을까?’란 의문을 품게 할 필요는 없었다. 널리(Broad) 알리는(Casting) 것이 Broadcasting 방송의 본질이다. 시력 보호는 국민 개개인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