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기술 엔지니어란 직업의 유효기간

[칼럼] 방송기술 엔지니어란 직업의 유효기간

2672

[방송기술저널] 이달 초 우리 회사의 기술 부문 직원 몇 명이 명예퇴직을 했다. 회사 전체 명예 퇴직자 중 약 1/3인 것을 생각하면 적지 않은 비율이다. 물론 이들 모두 자발적인 퇴직이었지만 ‘방송기술 엔지니어’란 직업의 미래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됐다.

찰리 채플린은 영화 ‘모던 타임즈’에서 반복된 노동의 후유증을 보여줬다. 채플린은 영화에서 특정 노동행위를 이성에게까지 적용(?)하려다 봉변을 당하기도 한다. 그나마 이것은 산업 자동화가 도입되기 전의 이야기다. Automation이 일상화된 현대의 공장에서는 찰리 채플린과 같이 단순하면서 반복적인 노동을 하는 사람은 이미 없다. ‘곰 눈알 붙이는 일’만큼은 아직 수작업에 의존하는 것 같지만.

당연한 이야기지만 갈수록 점점 더 자동화 레벨이 높아지고 있다. 영국의 Oxford 대학에서는 자동화 가능성과 관련해 직업별로 요구되는 창의성, 사회 지능 및 기술을 평가한 바 있다. 이에 따르면 초등교사, 안무가, 사회복지사 등은 미래에도 존속하겠지만 텔레마케터나 세무 대리인 등은 머지않아 컴퓨터로 대체될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또 다른 연구에 의하면 향후에 미국에서 뜰 직업으로는 산업심리조직학자, 의학용 초음파 진단가, 유전자 상담사, 정보보호 분석가 등이 있다. 여기서 뜰 직업이라는 의미는 상대적으로 자동화의 가능성이 낮다는 의미일 것이다. 이러한 미래연구 사례는 실제로 찾아보면 방대하게 존재한다. Machine Learning이나 Deep Learning 같은 인공지능 연구 결과로 기존의 노동을 대체할 분야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심지어 변호사란 직업의 일정 기능도 컴퓨터로 대체될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자동화 가능성과는 별개로 프리랜서와 직장을 직접 연결해주는 플랫폼이 늘어나고 있다. 대표적으로 ‘우버’ 택시나 ‘에어비앤비’ 같은 경우가 이에 해당할 것이다. 즉, 직업이 없어지지는 않지만 고용되는 방식이 변하는 것이다. 어쩌면 이렇게 생긴 일자리의 양상을 ‘노동시장의 유연성’이라고 쓰고 ‘비정규직 증가’라고 읽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필자는 직업의 유효기간이라는 측면에서 전자를 ‘사회적 유효수명’이라 하고, 후자를 ‘경영적 유효수명’이라고 명명하고 싶다. 뭐 특별한 Naming이 아니니까 누구누구의 법칙이라고 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방송기술 엔지니어란 직업에는 제작기술, 송출기술, R&D기술 등등이 있으므로 도매금으로 ‘방송기술 엔지니어’란 직업의 미래가 어떻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게다가 최근에는 IT 관련 엔지니어들이 대거 방송기술 엔지니어로 편입되고 있어서 그 양상을 ‘A는 B다’라고 칼로 무 베듯 말하기가 어려워졌다. 그러나 위에서 본 바와 같이 자동화 가능성과는 별개로 직장에 도입되는 방식은 바뀔 가능성이 크다. 아니 벌써 많이 진행된 것 같다. 이미 몇 해 전에 조사해 본 바로는 신설 채널 위주로 간접 고용 형태가 많이 이뤄졌다. 특히 일부 방송사는 정규 엔지니어는 대여섯 명이지만 파견직 엔지니어는 수십 명인 형태로 조사됐다. 이미 방송 초기부터 ‘경영적 유효수명’ 개념을 많이 도입한 결과다.

그럼 방송기술 엔지니어의 ‘사회적 수명’은 얼마나 될 것인가? 앞서 언급한 창의성, 사회지능 및 기술을 대입하면 제작기술 부문은 상대적으로 수명이 길 것 같다. 일반적으로 미래에는 기자의 영역보다는 PD의 역할이 강조될 것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제작기술 엔지니어의 창조적인 역할은 대체되기 어려울 것이다. 송출 관련 기술 엔지니어의 경우에는 IT 관련 엔지니어들을 중심으로 역할이 증대될 것이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정보보호 관련 IT 엔지니어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운행 중심으로 보면 이미 대부분의 방송사에서 자동 송출이 주류가 돼 있듯이 유효수명이 길다고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다만 자동 송출 과정에서 미묘한 오류를 판정하는 Heuristic(직관적 인식) 기능은 향후에도 대체되기 어려울 것이다. 결국 방송의 자동 송출 부문에서는 모니터링과 판별을 하는 기능만큼은 그 중요성으로 인해 엔지니어의 몫으로 남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어떤 경우에도 엔지니어 스스로 진짜 깊은(Deep) 지식이나 사고를 보유해야 유효기간을 늘릴 것으로 생각된다. 문제는 인공지능 발전 속도가 너무 빠르다는 데 있다. Algorithm은 Upgrade가 쉽지만 인간은 그렇게 Upgrade가 쉽지 않다. 어쩌면 앞으로는 방송기술보다는 컴퓨터가 따라오기 어려운 육감(六感)을 키우는 수련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바야흐로 소림사 엔지니어 되기. “아비요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