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파 UHD 방송 ‘부실’ ‘졸속’ 추진 안 돼 ...

지상파 UHD 방송 ‘부실’ ‘졸속’ 추진 안 돼
KBS, 지상파 UHD 방송 일정 연기 요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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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기술저널 백선하 기자] #얼마 전 전남 영광군 칠산대교 공사 현장에서 교각이 한쪽으로 기울며 붕괴했다. 이 사고로 현장에서 작업 중이던 근로자 6명이 골절과 타박상을 입었다. 그나마 다행히 사망자가 발생하지 않았지만 부실시공이 원인인 것으로 밝혀지면서 성수대교의 악몽이 떠오르는 ‘인재(人災)’라는 지적이 쏟아지고 있다. 정치권에서도 “성수대교 붕괴 21년, 삼풍백화점 붕괴 22년이 지나도록 기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부실시공에 의한 건설 사고가 매번 반복되고 있다”며 정부의 무능함과 무관심을 비판하고 있다.

촉박한 일정을 맞추기 위한 부실‧졸속 공사는 건설 현장뿐 아니라 사회 곳곳에 산재돼 있다. 내년 2월 본방송을 앞두고 있는 지상파 초고화질(UHD) 방송도 그중 하나다. 정부는 세계 최초 지상파 UHD 본방송으로 창조경제를 실현하고, UHD 산업의 주도권을 잡겠다는 계획이지만 현장에서는 6개월도 채 남지 않은 촉박한 일정에 맞춰 졸속으로 추진하다가 세계 최초의 실패 사례로 남을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적지 않게 나오고 있다.

최근 KBS, MBC, SBS, EBS 등 지상파방송 4사는 KBS 1TV, KBS 2TV, MBC, SBS, EBS 등 5개 채널에 대한 UHD 방송국 허가를 방송통신위원회에 신청했다. UHD 방송국 허가는 지난 7월 미래창조과학부가 지상파 UHD 방송에 적용될 표준 방식을 북미식인 ATSC 3.0으로 결정한 데 따른 후속조치로 UHD 방송국 허가가 나오면 내년 2월 수도권에서 지상파 UHD 본방송이 시작된다. 정부는 내년 수도권을 시작으로 광역시권과 평창동계올림픽 개최지 일원인 평창과 강릉, 그 외 시‧군 지역으로 지상파 UHD 방송을 순차 도입한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업계와 학계 등 전문가들 사이에선 내년 2월 수도권 본방송 시작 자체가 어렵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KBS는 8월 26일 방통위에 UHD 방송국 허가를 신청하면서 지상파 UHD 본방송 일정을 재검토해달라는 내용의 의견서를 함께 제출했다.

KBS는 “우리나라 전체 가구의 60% 이상을 차지하는 공동주택에 대한 UHD 공시청 시설이 전부할 뿐 아니라 이에 대한 정부의 계획도 발표되지 않은 상황인데다 수신 환경 개선을 위한 기본 조치인 UHD 수상기 안테나 장착 역시 가전사의 반대로 진전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내년 2월 지상파 UHD 방송을 실제로 시청할 수 있는 시청자가 거의 없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지적은 이미 여러 차례 제기된 부분으로 시청자들을 대변하고 있는 시민사회단체 관계자들 역시 “지상파 UHD 방송은 무료 보편적 플랫폼 기능을 강화하기 위해 결정된 것인데 시청자들이 볼 수 없는 환경이라는 게 말이 되느냐”며 “수신 환경을 개선하던지 아니면 내장 안테나를 설치해 누구나 UHD 방송을 볼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UHD 방송 제작‧송신 환경이 아직까지 불완전하다는 점도 본방송 일정을 연기해야 한다는 주장을 뒷받침한다. 김광호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교수는 본지 기고를 통해 “일반적으로 방송 방식이 결정되면 표준 제정 단계를 거쳐 송수신정합실험으로 검증한 뒤 무선설비규칙을 제정하고 무선국 검사 항목과 기준을 정하는데 현재는 모든 플랜이 내년 2월 본방송에 맞춰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규제가 부실해질 가능성도 있다. 또한 방송사에서도 시스템 설계, 입찰 및 계약, 송신기 제조, 송신소 시설, 준공 검사 등이 완료돼야 하는데 고출력 송신용 RF 필터 제작에만 8주가 소요되는 것을 감안하면 현 일정대로는 제대로 된 UHD 방송을 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이어 “자칫하면 ‘세계 최초 지상파 UHD 도입’이라는 거대 담론에 의해 그리고 ‘700MHz 지상파 할당’이라는 사회적 부담에 매몰돼 향후 더 큰 위험 부담을 감수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KBS 역시 “세계 최초로 시작하는 UHD 방송이기 때문에 인프라의 대부분이 시제품급이고, 국제 표준이 미비된 SFN 핵심 장비들로 인해 불안정하게 방송을 제작‧송출‧송신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안정적인 UHD 개국, 혼란 없는 UHD 방송을 위해선 DTV 도입 시 방송 방식 논쟁은 물론 약 14개월 간의 시험 방송을 거친 DTV 시험 방송 사례도 전향적 검토가 필요하다”고 요청했다.

전국언론노동조합과 KBS방송기술인협회 등 직능단체에서도 성명서를 통해 지상파 UHD 본방송 연기와 UHD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고 나섰다. 언론노조는 “ATSC 3.0 표준이 적용된 UHD TV는 일러야 내년 초에나 시판될 것”이라며 “기존 유럽식 UHD TV를 구입한 시청자들은 UHD 방송을 위해 따로 수신기를 구입해야 상황으로 국민의 혈세를 낭비하고 시청자들에게 불편을 강요하면서까지 UHD 방송을 추진해 창조경제의 치적으로 내세우려는 정부의 발상을 용납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이어 “미래부와 방통위에 졸속적이고 일방적으로 추진 중인 UHD 방송 전환 계획의 재검토를 촉구한다”고 덧붙였다.

KBS 직능단체들은 재정적 어려움을 토로했다. 이들은 “올해 상반기에만 600여억 원의 영업적자를 기록하고 있는 KBS가 무모하게 따라가기식 UHD 투자를 하다가는 또 다른 부실을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며 “수신료 동결, 광고 수익 급락, 제작비 급증 등으로 심각한 고통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2조1,817억 원으로 추산되는 UHD 투자를 성급하게 하다가는 경영 악화가 한층 더 심화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광고 수익이 급락하고 있는 지상파 방송사의 상황을 감안한다면 UHD 전환으로 큰 혜택을 받게 될 가전사와 정부의 추가적 지원이 있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KBS 직능단체는 “국가 시책으로 추진됐던 HD 전환에 있어 지상파방송이 희생을 감수하면서 국가의 방송 발전에 기여했던 것을 상기한다면 이번 UHD 전환 추진에 있어 정부가 손을 내밀고 적극 지원하는 것이 순리”라며 “KBS의 미래를 정부의 무모한 ‘선 시행 후 수습’에 맡길 수 없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