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파방송 독과점이란 신화를 보며

[조준상 칼럼] 지상파방송 독과점이란 신화를 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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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파방송 독과점’이란 신화(myth)를 보며

매우 끈질기고 집요하다. ‘지상파방송 독과점’이란 신화를 끊임없이 재생산시키는 학자와 연구자들의 노력은 이런 평가를 받을 만하다. 논박을 통해 터무니없음이 드러나도 새롭게 색깔을 갈아입고 잡초처럼 생명력을 보존한다. 왜? 한층 더 자본 친화적이고, 한층 더 극우보수에 관대하며, 한층 더 한나라당 친화적인 방향으로 지상파방송을 만들려는 동기에 의해 추동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신화의 궤적을 추적해 보면 이렇다. 애초 이 신화의 맹아가 형성되기 시작한 때는 지상파방송의 광고규모가 신문 광고규모를 웃돌기 시작한 2001부터라고 할 수 있다. 그때부터 다른 방송매체나 인쇄매체와 견준 ‘지상파방송 독과점’이란 무정형의 개념이 언론계에서 유포되기 시작했다. 케이블방송과 위성방송으로의 지상파방송 재송신이나, 케이블방송에 진출한 지상파방송 계열의 방송채널사용사업자(PP)의 인기 등이 이 개념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자주 통용됐다.
하지만 전체 방송시장을 대상으로 매출액 기준으로 할 때 지상파방송 독과점은 성립하지 않았다. 전체 방송시장을 대상으로 했기 때문에 ‘지상파방송 3사 독과점’이란 말도 그리 나오지 않았다. 3사로 한정하면 전체 방송시장에서 차지하는 점유율이 더 떨어졌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지상파방송 독과점’은 실체가 없이 언론계에서 유령처럼 떠돌았다. 그 유령에 현 정권은 본격적인 육신을 부여하기 위한 작업을 시작했다. 지상파방송 3사의 여론독과점’을 증명하려는 시도가 그것이다.
첫 시도는 윤석민 서율대 교수 연구팀으로부터 나왔다. 윤 교수는 나름의 합리성을 갖추고 있었다. 전체 여론시장을 대상으로 단순히 매출액만을 기준으로 여론점유율을 측정하려고 하지 않았다. 이런 작업을 통해 매체 이용시간과 광고비를 포함한 매체수입 등을 조합해 12개 기준을 적용할 때 지상파방송 3사의 여론지배력은 평균 50%인 반면, ‘조중동’ 3개 신문의 여론지배력은 14.2~22.1%밖에 안 된다는 결과를 냈다. 이를 통해 전체 여론시장에서 지상파방송 3사 여론독과점이 문제이지, 조중동의 방송보도 진출은 문제가 아니라고 역설했다.
하지만 윤 교수의 연구결과를 100% 받아들인다 해도, 공정거래법이 정하고 있는 시장지배적 사업자 기준은 ‘1사 50%, 3사 75%’에는 턱없이 밑돌기는 마찬가지다. 지상파방송 3사의 여론독과점이 성립되지 않는다는 얘기다. 윤 교수의 연구 기준을 합리적으로 적용할 때 지상파방송 3사의 여론지배력은 40%대 수준에 있다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전체 여론시장에서 지상파방송 3사의 여론독과점을 증명하려는 노력이 난관에 봉착하자, 최근 새로운 시도가 나왔다. 재벌 총수들의 사교클럽인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산하 연구소인 자유기업원에서 ‘지상파방송 시장 안에서 지상파방송 3사의 독과점’을 제기하고 나선 것이다.
자유기업원은 지상파방송 시장 안에서 지상파방송 3사의 매출액 기준 점유율이 81.1%에 이른다며 독과점이라고 규정했다. 지상파방송 진입장벽 존재와 정도, 경쟁사업자의 상대적 규모 등을 감안할 때도 "지상파방송 시장은 방송3사 독과점 체제"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전국 종합일간지 시장(매출액)에서 ‘조중동’ 3개 거대 신문이 차지하는 비중(55.8%)보다 지상파방송 3사의 점유율이 훨씬 더 높다며 "방송시장에 대한 진입장벽을 없애고, 신문시장의 규제를 대폭 완화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전체 여론시장에서 지상파방송 3사의 독과점을 증명할 길이 없자, 지상파방송 시장 안에서 독과점을 거론하고 나선 것이다. 그러면서 지상파방송은 장치산업이라는 특성이나 국민의 재산인 주파수를 이용한다는 측면에서 애초부터 진입장벽이 높은 ‘특혜’ 산업이라는 점은 고려조차 되지 않는다. 지상파방송 독과점이란 신화가 처음 유포될 때 다른 매체와의 비교 속에서 나왔던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자유기업원의 애틋한 노력에 대한 평가는 간단하다. 지상파방송 시장 안에서 방송3사의 독과점은 하루이툴 된 얘기가 아니다. 20년이 넘는 문제다. 이런 낡은 유뮬을 박물관에서 새롭게 꺼내들 때는 뭔가 새로운 함의를 가져야 한다. 지상파방송 3사의 매출액 독과점이 전체 여론시장의 여론독과점으로 이어지고 있다거나, 지상파방송 시장 안에서 방송3사의 불공정거래 행위가 극성을 이루고 있다거나 하는 등의 새로운 사실이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문제는 지상파방송 3사의 여론이 ‘조중동’만큼의 여론 동질성을 갖고 있어서 심각한 사회적 문제를 일으키는지가 핵심이다. 하지만 지상파방송 내 3사 독과점이 여론시장에 어떤 폐해를 일으키는지에 대해 아무런 설명도 없다. 그러면서 놀라운 비약을 감행한다. 방송보도여론 시장을 신문에 열라고 하는 것이다. 여론시장에선 매출액 점유율이 아닌 여론지배력을 측정해야 한다. 그런 작업도 하지 않은 채 겁도 없이 비상하면 추락해 크게 다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