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료방송과 ‘수직 계열화’

유료방송과 ‘수직 계열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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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7일 박근혜 대통령이 창조경제 분야 청와대 업무보고 자리에서 유료방송 독과점을 경계하며 대기업의 수직 계열화가 문제다고 언급하자 관련 업계가 요동을 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의 2월 임시국회 법안 처리율이 제로를 기록하며 상황은 더욱 복잡해지고 있다.

   
 

우선 박 대통령의 해당 발언을 두고 업계에서는 “CJ를 겨냥한 것이 아니냐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케이블 MSOMPP를 보유한 CJMSO 영역에서 덩치를 불리는 한편 자사의 PPSO에 추가시키는 일에 열중했기 때문이다. 현재로서는 ‘MSP 현상에 가장 근접해 있는 격이다. 물론 CJ는 한미 FTA를 앞두고 강력한 토종 플랫폼콘텐츠 사업자가 등장해야 한다는 대의명분을 내세우고 있지만 지나친 독과점적 지위를 누리고 있다는 비판에서는 자유로울수 없다. 대통령의 발언에 가장 근접한 수직 계열화의 표본인 셈이다.

그러나 CJ떨고있는것은 아니다. 소위 5대 케이블 MSO의 현황을 살펴보면 최근 이들이 자사의 PP를 자사의 SO에 끼워넣는 일에 열중인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방송 플랫폼 사업자이자 DCS의 수혜를 받으며, 직접사용채널을 운용하는 KT 스카이라이프도 수직 계열화 현상에서 자유로울수 없다. 전국 단위로 방송 사업을 하면서 플랫폼과 콘텐츠를 모두 갖고 있는 유료방송 사업자는 명목상이지만, KT 스카이라이프가 유일하다. 여기에 KT 스카이라이프는 한국HD방송이라는 자회사를 두고 24시간 고화질(HD) 방송 6개 채널을 운영하고 있으며 연평균 300시간 이상 HD 콘텐츠도 자체 제작해 방송하고 있다.

이렇듯 CJ5대 케이블 업체, 그리고 위성방송까지 망라하는 대부분의 유료방송 사업자들은 대통령의 수직 계열화 발언과 직간접적인 관련을 맺고 있다. 당연히 부담이다. 최근 유료방송 사업자 규제 완화가 빠르게 추진되며 자신들의 영향력을 넓히려던 계획에 심각한 차질이 생겼기 때문이다.

물론 지난해 발표된 방송산업발전 종합계획을 발판으로 다양한 숙원사업이 실시되며 SO 권역별 규제 완화 등이 국회를 통과한 상황이지만 대통령의 말 한 마디에 관련 정책이 일정정도 영향을 받을 확률은 상존한다. 가뜩이나 국회 미방위가 2월 임시국회에서 추가적인 유료방송 관련 법안을 통과시키지 못한 부분도 악재다.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자 일단 케이블 MSO는 정부와 보조를 맞추며 유료방송 독과점을 경계해야 한다는 점에 찬성하면서, 그 책임을 IPTV로 돌리고 있다. 지난달 17일 박 대통령의 발언이 나올 당시 한국케이블TV협회가 국회에 공문을 보내 IPTV의 지나친 방송 독과점을 막아 달라고 주문한 것이 단적인 사례다. 물론 IPTV도 다양한 루트로 케이블 MSO의 견제를 막아내고 있다.

일단 상황은 유료방송 사업자들이 긴 호흡으로 윗선의 반응을 살피며 상대방에 대한 공세를 음으로 양으로 펼치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한편 일각에서는 대통령의 발언이 재송신 협상까지 아우르는 방대한 전략의 일부라고 지적한다. 실제로 현재 유료방송 규제완화가 빠르게 추진되는 상황을 좌시할 수 없었던 지상파가 정치적인 역량으로 박 대통령의 발언을 끌어냈다는 이야기도 있다. 직접수신율이 낮은 상황에서 유료방송 플랫폼 사업자의 영향력이 비대해지면 지상파의 입장에서 볼 때 향후 시작될 재송신 협상이 어려워질 개연성이 충분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지상파 계열의 PP가 유료방송 플랫폼 사업자에 안착하는 문제와 더불어 군소 PP 지원이라는 공익적인 이유를 들어 사실상 케이블 MSP를 견제하려는 집단적인 움직임이 업계에서 포착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렇듯 모든 상황을 종합해볼 때, 이미 규제완화가 풀린 SO는 차치한다고 해도 PP의 영역에서 보다 더디게 추진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PP 매출 제한 규제 완화는 사실상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지만 이번 박 대통령의 발언과 국회 미방위의 공전으로 시일이 더 걸릴 것이라는 예측이다.

하지만 대승적으로 별로 변한 것은 없다. 박 대통령의 발언에 업계가 동요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의외로 차분한 이유도 여기서 찾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