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띠해 방송 이슈들

[신년특집] 양띠해 방송 이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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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기술저널=백선하) 다사다난했던 2014년 청마의 해가 지나고 을미년(乙未年) 새해가 밝았다. 엄밀히 따지면 음력 1월 1일인 2월 19일부터 시작되는 이번 을미년은 청양(靑羊)의 해라고 한다. 육십갑자로 환산했을 때 천간(天干) 중 을이 청색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십이지 동물 가운데 여덟 번째 동물인 양은 예로부터 온순한 성격 덕분에 희생과 평화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이 때문에 그동안 대한민국 곳곳에 있어왔던 크고 작은 갈등과 대립들이 올 한 해 다 치유되고 통합되기를 소망한다는 기대가 다른 어느 때보다 높은 가운데 지난 양의 해에는 어떤 방송 이슈들이 있었는지 정리해봤다.

2003년 계미년(癸未年)

 • 대구지하철 방화 참사(2003.02.18.) = 2003년 2월 18일 대구도시철도 1호선 중앙로역에서 김대한의 방화로 일어난 화재다. 전동차 모두 불탔으며 192명 사망, 148명 부상으로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이후 최대 규모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이 사건으로 국가재난안전통신망의 필요성이 대두됐으나 기술 방식을 둘러싼 논란으로 11년 동안 표류했었다. 하지만 지난해 세월호 참사 이후 공공안전 롱텀에볼루션(PS-LTE)으로 기술 방식이 확정되면서 재난망 사업은 본격 추진되고 있다.

 • 이라크 전쟁 시작(2003.03.20.) = 당시 KBS, MBC, SBS를 비롯한 지상파 방송사와 주류 언론들의 이라크전쟁 보도가 CNN 등 미국 언론을 주로 인용하면서 미국적인 시각에 입각한 보도에 머물렀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지난 걸프전 보도 때와 다를 바 없다는 것이다. 특히 지상파 방송3사의 보도는 폭격 등을 그대로 보여줌으로써 마치 게임을 관전하듯 보도했다는 지적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이후 대안언론의 중요성이 부각되기 시작했다.

• 한류 시작되다(2003.04.) = 2003년 4월 일본 NHK 위성채널, 정규채널 등에서 <겨울연가>가 방영되면서 일본에서 ‘욘사마’ 열풍이 일었다. <겨울연가>의 바통을 넘겨받은 <대장금> 역시 아시아 전역에 방영되면서 한국 드라마의 새 역사를 쓰기 시작했다.

• MBC, 국내 방송사상 라디오 디지털방송 통합 운용 시스템(MIROS) 개발(2003.05.22.)

• KBS, 뉴스 아카이브 시스템 구축(2003.05.30.) = 뉴스 아카이브 시스템은 디지털화된 영상 자료를 스토리지에 저장하고 이를 분류, 검색, 가공, 재사용이 가능하도록 한 시스템이다. 총 사업비 27억 원 규모의 이 시스템은 뉴스 제작, 아카이브 및 통합 부문으로 크게 분류된다. 뉴스 제작 부문은 MPEG-2(IMX)를 기반으로 온라인 영상 수신, EDL 편집, 비선형 편집 및 자동 송출 등 제작의 디지털화를 통한 뉴스영상 제작에 초점을 맞춰 구축됐고, 아카이브 부문은 대용량 저장 장치에 방송 영상을 저장, 관리, 재사용을 가능케 해 기존의 테이프(VCR) 보관에 따른 화질의 열화, 검색 및 재사용의 불편을 극복했다.

• 디지털방송 광역시 전환 저지를 위한 삭발투쟁 및 철야농성 돌입(2003.08.) = 정부는 디지털 전환 일정에 따라 6개 광역시 소재 방송국들이 2013년 12월까지 DTV 방송을 시작하고, 2004년 1월부터는 주당 10시간 이상의 HDTV 프로그램을 의무편성토록 했다. 그러나 1997년 말 정부가 국민의 의견을 수렴치 않고 미국식 전송 방식을 일방 채택해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는 상황이었다. 방송사들과 언론학자 등 전문가들은 유럽식 전송방식을 주장했으나 미국식을 원하는 정보통신부와 수상기 제조업체에 밀려 DTV 전송방식이 미국식으로 결정됐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전국언론노동조합과 한국방송기술인연합회 등 언론시민단체들은 DTV 방식 변경을 촉구하며 삭발투쟁과 철야농성을 이어갔다.

 1991년 신미년(辛未年)

• 걸프전 발발 11시간 생방송(1991.01.17.) = 1991년 1월 17일 부터 2월 28일까지 이라크 대공습으로 시작된 걸프전 중계를 생방송으로 진행했다. 전쟁이 시작되자 KBS, MBC 등 국내 방송사들도 특집뉴스를 편성했고, 시시각각 변해가는 이라크 상황을 보도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하지만 객관적으로 보도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CNN 뉴스를 동시통역하는 등 미국 중심적인 보도 형태를 답습해 많은 비판을 받았다. 또한 외신의 추측성 기사를 사실 여부 판단 없이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기도해 오보가 남발하는 등 많은 문제를 드러냈다.

• SBS 라디오 개국(1991.03.20.) = 1991년 3월 2 0일 오후 5시 AM 792KHz(호출부호 HLSQ)로 방송됐다. SBS 라디오는 <여기는 서울방송>이라는 개국방송을 시작으로 라디오 방송의 출발을 알렸다.

• <TV 문예극장> TV 드라마 사상 최초 전편 동시녹음제작(1991.06.16.) = 1980년 컬러 T V 시대로 진입하면서 ENG 카메라가 도입되기 시작했다. MBC <전원일기> 송추 야외 촬영에서 30분 분량의 드라마 동시녹음을 시작하면서 동시녹음시대가 열렸다.

• 최초로 비행기 내 생방송 (1991.08.01.) = KBS <생방송, 전국은 지금>에서 국내 방송 사상 최초로 비행기 내 생방송을 시도했다.

• 제1회 국제 방송·음향·조명기기 전시회 개최(1991.08.27.) = 본 전시회는 인텍코리아가 SIBTA&MP라는 명칭으로 8회에 걸쳐 진행해 왔으나, 9회부터는 한국방송기술인연합회와 한국일보, 서울경제신문이 공동 주최함으로써 명칭을 KOBA로 변경하고 전시회를 보다 활성화시키기 시작했다.

• KBS, 일본 NHK와 방송협력협정 체결(1991.09.30.) = KBS와 NHK는 1991년 9월 30일 일본 동경 NHK 방송사에서 양사 간 방송협력협정을 체결했다. 방송협력협정 체결에 따라 KBS와 NHK는 뉴스 자료와 취재편의 제공에 있어 우선권을 부여하고, 공동관심사 주제에 관한 공동 제작을 활성화하는 한편 라디오와 TV 프로그램 및 각종 방송 관련 정보를 보다 원활하게 교환할 수 있게 됐다. KBS와 NHK는 앞서 1984년 5월 방송협력각서를 상호교환, 뉴스 자료를 교환하고 취재 편의를 제공하는 등 협력 관계를 유지해 온 바 있다.

• 국내 최초 인공위성 무궁화호 통신 방송 제작사로 GE와 금성정보통신 확정(1991.12.01.)

• SBS TV 개국(1991.12.09.) = 라디오 방송에 이어 12월 9일 오전 10시에는 채널 6번을 받아 TV 본방송에 돌입했다. SBS 출범으로 방송 구도가 공민영 체제로 바뀌었다. SBS 등장 이후 KBS는 KBS 1TV는 보도와 교양 중심으로 편성하고, KBS 2TV는 연예 오락프로그램을 중점적으로 편성한다는 방침을 정했다.

1979년 기미년(己未年)

• TV 시청료 월 600원 인상(1979.02.01.) = 서울 텔레비전 방송국 개국 이후 1963년 1월 1일부터 월 100원씩 징수하기 시작한 T V 수신료는 1964년 월 150원, 1965년 월 200원, 1969년 월 300원으로 인상됐으며, 1973년 한국방송공사 창립 이후 국영방송에서 공영방송으로 개편되면서 1979년에는 월 600원으로 인상됐다. 이후 컬러 TV 시대로 접어들면서 1981년부터 현재까지 월 2,500원의 수신료를 징수하고 있다.

• KBS 93.1MHz FM 스테레오 음악방송 시작(1979.04.01.) = KBS에서는 1978년 5월 19일 FM 스테레오 음악방송에 관한 계획을 결정하고 각 갑지 방송국에 스테레오 제작 시설을 설치, 스테레오 방송을 도 단위 로컬로 실시키로 하면서 1979년 4월 1일 스테레오 음악 방송을 시작했다.

• 첫 ABU 대상 수상작 <인간승리-소리란 무엇인가요> 방송(1979.11.17.)

1967년 정미년(丁未年)

• 전력 부족으로 오후 8시 이후 TV 방송 중단(1967.06.29.) = 북한의 경우 1990년대까지 전력 부족으로 TV 방송 시간을 대폭 단축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우리나라도 1967년에는 전력 부족으로 오후 8시부터 TV 방송을 중단했다. 여름철 전력난으로 인해 한 달여간 TV 방송 중단이 이어졌다고 한다.

• 기자의 뉴스 앵커 시대 개막(1967.08.29.) = 구봉광산 갱도 매몰 사건 보도. 1967년 8월 22일, 우리나라 최대 금광으로 금 생산량의 60%를 차지했던 구봉광산의 천장이 무너지며 광부 김창선 씨는 지하 125m 아래 수직갱도에 매몰됐다.

김 씨는 갇힌 공간에서 전화기를 발견하고 복구해 붕괴 3일 만에 가까스로 지상과 통화했다. 이후 천장에서 떨어지는 물로 목을 축이면서 버티던 중 갱도에 묻혔던 양수 파이프를 발견하고 이를 빼내 구멍을 넓혀 간신히 빠져 나왔다.

당시 이 구조 현장에 온 국민의 시선이 쏠렸고, 대한민국을 넘어 전 세계적인 이슈가 됐다. 구조 과정은 생생한 뉴스 화면을 통해 실시간으로 국내와 전 세계에 방송됐으며 이 사건으로 기자의 뉴스 앵커 시대가 열렸다.

• KBS와 TBC 드라마 시청률 경쟁 시작 = 1964년 12월 7일 TBC 방송국이 개국하면서 시작된 편성 경쟁은 1967년 각사가 7편의 드라마를 편성하면서 절정에 이르렀다. 양사는 밤 9시 뉴스 전후에 7편의 드라마를 편성해 시청률 경쟁에 돌입하기 시작했다.

1955년 을미년(乙未年)

• 대출력 방송 시대 개막(1955.08.) = 연희송신소에 최대 출력 100KW 설치공사를 완료해 대출력 방송 시대를 개막할 수 있게 됐다. 연희방송소는 1932년 8월 6일 공사를 시작해 1933년 4월 26일부터 방송을 송출하기 시작했다. 해방 후 연희송신소로 바뀌었고, 1971년 3월 31일 소래송신소에서 500KW로 제1방송을 내보낼 때까지 40년 가까이 방송송출 업무를 한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