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경쟁을 바라보며 드는 공상(空想)

[사설] 콘텐츠 경쟁을 바라보며 드는 공상(空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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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기술저널=이종하 한국방송기술인연합회 회장] 최근 OTT 가입자가 감소 추세라는 기사가 가끔 나오기는 하지만, 전통적인 방송 매체보다 OTT를 통해 콘텐츠를 소비하는 시청자의 수가 많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여러 사람의 입에 오르내리는 콘텐츠를 감상하기 위해 정해진 시간에 같은 공간에 모이는 모습은 일부 영화관이나 공연, 연극을 찾는 관객이나 스포츠 경기장의 경우를 제외한다면 이제는 찾아보기 쉽지 않은 광경이 됐다.

하나의 콘텐츠가 제작돼 방송사, 지역, 국가 등의 공간적 경계와 시간적 경계를 넘어 글로벌하게 소비되는 지금의 구조에서, 콘텐츠 제작자들은 글로벌 OTT에 좀 더 의존할 수밖에 없는 프로그램 공급자이자 서로 간에 경쟁해야 하는 경쟁자인 것이다.

과거에는 지리적인 또는 문화적인 차이를 인정하며 콘텐츠를 제작하고 감상했다면, 이제는 세계인이 공감할 수 있는 내용, 흥미를 유발할 수 있는 내용의 콘텐츠를 제작하기 위해 기획 단계부터 투자와 노력을 기울인다. 글로벌 OTT 플랫폼은 이제 단순히 검증된 인기 프로그램을 세계적으로 배포하는 역할을 넘어 프로그램의 제작비를 지원하는 방식으로 제작에까지 그 영역을 확대함으로써 프로그램 공급자의 역할까지 수행하며 콘텐츠 시장에서 막강한 힘을 발휘하고 있다. 2020년을 기준으로 지상파의 16부작 드라마 평균 제작비가 약 112억 원 수준이었음을 고려했을 때, 2021년 공전의 히트를 쳤던 ‘오징어 게임(9부작)’의 제작비는 200~250억 원 정도로 추정되며 이는 미국 오리지널 드라마 제작비와 비교했을 때는 글로벌 OTT 플랫폼의 입장에서는 부담되는 비용은 아니지만, 당시 국내 드라마 제작비와 비교한다면 상당히 높은 수준의 제작비였다. 넷플릭스는 이 드라마를 통해 엄청난 수익을 거두었고, 한국 콘텐츠는 글로벌 OTT 플랫폼의 효율적인 투자처(콘텐츠 공급처)로 급부상했다.

글로벌 OTT의 지원을 통해 초반 제작비를 충당하고, 발생할지도 모를 손실을 최소화하려는 제작사의 정책과 상대적으로 적은 투자를 통해 고품질의 콘텐츠를 한국에서 얻어내려는 글로벌 OTT의 입장이 서로 맞아떨어져 글로벌 OTT 플랫폼 주도의 국내 콘텐츠 제작이 경쟁적으로 활발해졌고, 이 과정에서 제작비 또한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갈수록 높아져 가는 시청자의 눈높이를 충족시키기 위한 비주얼적인 측면에서의 후반작업 비용, 거대한 세트와 무대를 위한 비용, 작업 스태프의 현실적인 인건비 등의 상승은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높아져만 가는 제작비에 낀 거품은 조금 걷어내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 흥행이 항상 보장된다면 모르겠지만, 계속 증가하는 제작비는 지금 당장에는 좋을 수 있겠지만 향후 다른 작품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제작사에도 걸림돌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어찌 됐든 상승한 제작비를 통해 완성도 높은 콘텐츠를 만들 수 있다는 긍정적인 측면은 분명히 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글로벌 OTT의 제작 지원(OTT 오리지널) 또는 납품을 전제로 제작을 진행하지 못하는 제작사와 방송사들은 높아진 제작비를 감당하지 못해서 자체 드라마 제작을 줄이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는 전통적인 시청자들의 시청권에도 문제가 되고 있다. 일정 부분의 추가 지출을 감수해야만 전통적인 방식이 아닌 새로운 방식으로 콘텐츠에 접근할 수 있으며, 지금처럼 다수의 OTT가 자사의 오리지널 콘텐츠를 앞세워 경쟁하는 상황에서 시청자들은 더 많은 지출을 요구받는다. 이런 상황에 대해 자본을 바탕으로 국내의 제작비 상승을 주도하는 글로벌 OTT에 그 책임을 물을 수만은 없을 것이다. 전통적인 미디어 사업자와 방송사도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국내의 방송·콘텐츠 관련 업체는 글로벌 OTT와의 경쟁을 위한 재원 마련 노력과 함께 정부를 상대로 세제 지원과 매체 간 불평등한 규제 완화 등을 요구하고 있으며 정부 부처도 이에 귀를 기울이는 것 같다. 경쟁의 여건이 지금보다 조금은 공정하게 조정돼 서로 간의 경쟁을 통해 양질의 콘텐츠를 제공한다면 소비자 입장에서는 반길 일일 것이다. 이러한 경쟁을 통해 출연진보다 스토리를 통해 공감할 수 있는 다양한 콘텐츠를 접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좀 더 바라는 것이 있다면, 정부의 지원 정책이 일회성 콘텐츠 제작 지원뿐 아니라 향후 콘텐츠 제작에 지속해서 활용할 수 있는 제작 장비와 시설에 대한 투자 지원, 인력 교육에 대한 재투자까지 함께 포함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또한 콘텐츠 플랫폼의 이익을 많아지는 만큼 그 이익을 제작에 참여한 사람들이 함께 공유할 수 있는 제도적인 방안도 이제는 제작사와 OTT 사업자가 머리를 맞대고 함께 고민해 봤으면 한다. 결과적으로 좋은 콘텐츠는 자본만의 힘이 아닌 함께 참여하는 사람들의 열정을 바탕으로 이뤄지는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