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지상파 UHD 방송 정책을 재검토하라

[사설] 정부는 지상파 UHD 방송 정책을 재검토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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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기술저널=이상규 한국방송기술인연합회장] “지상파 방송사들은 초고화질(UHD) 프로그램 제작에 집중하고, 송출은 유료방송을 통해 시청자에게 전달하도록 ‘개선’하는 것이 어떤가?”

지난 국정감사 자리에서 한 국회의원이 지상파 방송사에 보내온 질의서 내용이다. UHD 방송을 위해 추가로 필요한 송신시설 구축 비용이 전체 UHD 프로그램 제작과 송출 비용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4%도 채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그 국회의원이 몰랐다 하더라도, 무료 보편적 서비스로서 지상파방송이 갖고 있는 의미를 망각하고 유료방송 플랫폼의 입장만을 대변하는 편향된 시각이 놀라울 따름이다.

고품질의 콘텐츠를 생산하기 위해 수천억 원의 막대한 투자를 하면서도 그에 따른 추가 수익을 기대할 수 없는 (지상파 방송사의) 비정상적인 상황을 그 국회의원도 모르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UHD 프로그램의 가치를 제대로 평가받고 그 수익이 다시 더 나은 프로그램 제작에 투자되는 선순환 구조의 콘텐츠 생태계를 만드는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현재의 지상파 UHD 방송 정책은 전면 재검토돼야 한다.

우리나라의 지상파 UHD 방송 표준은 미국의 ATSC 3.0 표준을 가져와 국내 실정에 맞게 제정한 것으로 고화질 방송 이외에도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비근한 예로 올해 5월 미국의 디트로이트에서는 ATSC 3.0 방송을 송출하는 WXYZ 방송사와 자동차 회사, 렌터카 회사(Budget), LG전자 등이 참여한 Automotive Industry Symposium이 열렸다. 지상파 방송사와 자동차 회사가 함께 심포지엄에 참가했다는 것이 의아할 수 있으나, 미국에서 매년 발생하는 자동차 리콜 중 많은 경우 소프트웨어적으로 해결할 수 있고 이를 위해 방송 신호를 이용하는 것을 시연했다고 한다. 이외에도 가까운 미래에 상용화될 무인자동차 시대에는 5G 네트워크뿐만 아니라 방송 신호가 갖고 있는 장점(Broadcasting)을 활용하는 서비스와 기능이 계속 등장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지상파 UHD 방송 정책은 방송 신호를 활용한 다양한 서비스를 고려하고 있는가? 2015년에 작성된 정부의 ‘지상파 UHD 방송 도입을 위한 정책 방안’은 2027년 HD 방송 종료를 목표로 지역별 UHD 방송 일정과 투자 계획, 주파수 배치를 주요 내용으로 담고 있다. 지상파 방송사들은 이 정책 방안에 실린 투자 계획과 UHD 프로그램 편성 비율을 맞추지 못하고 있다며 정부와 국회의원으로부터 질책을 받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활성화 추진 과제’ 목록에 있는 ‘지상파방송 수신 환경 개선’과 ‘민관펀드를 활용한 UHD 방송 프로그램 제작 및 기술개발 지원’이 정부 차원에서 추진되고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지금 지상파 방송사들이 겪고 있는 경영수지 악화는 변화하는 미디어 환경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한 결과라 할 수 있다. 여기에는 스스로 변화하지 못한 방송사의 책임도 크지만, 지난 시절 잘 나가던 지상파 방송사의 발을 묶어두기 위해 만든 비대칭 규제가 지속되고 있는 지금의 방송 정책도 한몫을 하고 있다.

방송 정책의 목표가 민원 발생을 최소화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될 것이다. 더구나 4차 산업혁명 시대의 방송은 AI, 5G, Big Data를 아우르는 융합 서비스의 모습이 될 것이다. 아무리 좋은 약도 때를 놓치면 효과가 없는 법이다. 정부는 더 늦기 전에 지상파 방송사에 대한 비대칭 규제를 철폐하고 지상파 UHD 방송 정책을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