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이 있어야 진화할 수 있다

[사설] 망이 있어야 진화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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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파방송사들은 최근 수익이 떨어지고 경영악화가 계속되고 있다. KBS에서는 사장 퇴진 운동까지 일어났으며, MBC 역시 큰 구조조정과 명예퇴직을 시행하였다. SBS는 작년에 이어 올해도 보너스를 삭감한 실정이고, EBS역시 다양한 각도로 신규사업 및 새로운 활로 모색을 시도하고 있다. 이러한 지상파방송사의 위기는 현재 국내의 경제 상황이 나빠서 나타난 현실이 아니라 이미 오래전부터 예측되어진 상황일 뿐이다. 왜냐하면 지상파TV의 경영상태가 나빠진 반면에 케이블TV는 국내 경제사정과는 무관하게 작년도 SO와 PP들의 당기 순이익은 증가한 사실을 보면 알 수 있다. 특히 제일기획이 조사한 국내 광고비 추이 자료를 보면 2004년도 광고비 수익이 2003년에 비하여 지상파방송사들은 1천3백51억원 줄어든 만큼 케이블TV 광고수익은 1천24억원 늘어났다.

이러한 현상은 이미 오래전부터 지상파방송사들이 자신들의 콘텐츠 전달망인 지상파 전파의 소중함을 잊은채 케이블TV와 위성방송에 의존하여 편안히 자신들의 프로그램을 시청자에게 전달하기에 급급한 사실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70년대는 지상파방송사들이 전국 난시청지역 해소에 모든 힘을 다하던 시대였다. 그 결과 산골과 시골마을에서도 지상파TV를 볼 수 있는 시대가 열렸다. 그 후 80년대에 컬러방송 시스템에 투자를 퍼부으면서 90년대에 나타난 케이블방송에 재전송을 맡기고 더 이상의 난시청 해소에 힘을 쏟지 않았다. 2000년대에 들어서서는 디지털TV와 DMB 등 뉴미디어에 투자를 하게 됨으로서 더욱 난시청 해소에 힘을 쏟지 못하게 된다. 방송환경은 지형적 난시청보다 아파트나 고층건물들의 난립에 따른 인위적 난시청이 급증하였으나 거기에 대비한 어떠한 노력도 하지 않고 있다. 결국 시청자들은 케이블TV와 위성방송을 통해 재전송되는 지상파 프로그램을 보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게 되면서 광고시장도 조금씩 변모하고 있는 것이다.

방송위원회가 2005년 3월 1일에 발표한 자료를 보면 케이블TV가입자가 2003년에 65.6%에서 2004년에는 73.4%로 늘어났다. 위성방송 가입자 역시 7.0%에서 9.5%로 증가하였다. 그렇다면 순수 지상파 수신자는 2003년 27.4%에서 2004년에는 17.1%로 감소한 것이다. 더욱 놀라운 수치는 광주의 케이블TV가입자가 97.9%이며, 부산 역시 케이블TV가입자가 93.7%이라는 점이다. 광주의 경우 순수 지상파수신자는 2%밖에 안된다는 결론이 나온다. 이러한 현상은 부산을 비롯하여 경기, 대전지역까지 점차 확산되고 있다. 그동안 케이블TV는 자신들의 가입자망 확보에 부단한 노력을 기울여 온 것이다. 반면에 지상파방송사들은 시청자들이 어느 매체를 통해서든 자신들의 프로그램만 봐 주면 된다는 식의 안일한 생각에 자신들의 젖줄을 챙기지 못했다고 볼 수 있다.

지상파방송사가 경영면에서나 시청자의 인지도면에서 계속 과거의 영광을 누리자면 최소한 20% 이상의 지상파 직접수신자를 유지해야 하며, 그 이하로 떨어지면 오늘날과 같은 경영 악화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만약 15% 미만으로 더 떨어질 경우에는 급속도로 시청자들은 케이블TV이나 타매체 셋톱에 점점 더 의존하게 되고 아예 지상파TV 수신기 판매 자체가 무의미 해 질 우려도 있다.

지상파방송이 자신의 망을 더 고효율화 시키고 더 고도화 시키지 않으면 엄청난 속도로 발전하고 있는 통신과의 융합에서 뒤쳐질 수 밖에 없고, 케이블TV나 위성방송의 고도화 변신에도 뒤떨어지게 된다. 방·통 융합에서 뒤쳐진 기술은 융합이 아니라 예속 혹은 소멸 될 수 있다. 아직도 하나의 채널에 하나의 프로그램만 송출하고, MFN방식으로 엄청난 주파수들을 차지하면서도 난시청 해소가 까다롭고 고정수신 밖에 할 수 없다는 것도 전파를 비효율적으로 사용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망이 있어야 스스로 기술적 진화가 필요할 때 진화를 이룰 수 있고, 타 매체의 변화에 의존하지 않고, 시대적 사회적으로 변화가 이루어질 때 주도적입장에서 기술적 변화를 이끌어 갈 수 있을 것이다. 망이 있었기에 지상파방송사들은 2000년에 디지털방송을 가장 앞서 실현시킬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경쟁 매체들도 진화가 이루어지고 있으므로 지상파방송사들은 자신들의 전파를 좀 더 효율적으로 가꾸고, 난시청 해소에 좀 더 효과적인 기술과 방법을 찾아 지상파다운 방법으로 시청자들을 위해 노력해야 할 때라고 본다. 서로의 공존은 좋은 현상이지만 의존은 자신들의 쇠퇴를 불러올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