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기술의 발전은 일자리를 위협할까?

방송기술의 발전은 일자리를 위협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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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기술 발전이 노동에 미치는 영향과 노조의 대응’ 세미나 개최

[방송기술저널 백선하 기자] 7월 25일 오전 10시 서울 목동 한국방송회관 10층에서 한국방송기술인연합회와 전국언론노동조합, 국제사무직노동조합연합 한국협의회(UNI-KLC) 주최로 ‘방송기술 발전이 노동에 미치는 영향과 노조의 대응’ 세미나가 열렸다.

박종석 한국방송기술인연합회장, 조성해 한국방송기술인연합회 정책위원, 신일수 언론노조 사무처장, 성재호 언론노조 KBS본부 위원장, 전규찬 언론개혁시민연대 대표, Chang-de Liu 대만국립정치대학교 신문학과 교수, Lih-yun Lin 국립대만대학교 신국대학원 교수 등이 참석한 이번 세미나에서는 ‘방송기술의 발전이 미디어 산업 전반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이 같은 변화에 노동조합은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지’에 대한 논의가 오고 갔다.

대만에서 온 참석자들은 인터넷이나 모바일 등의 기술 발전이 우리나라의 기존 신문이나 TV 산업에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 궁금해 했다. 이에 대해 조성래 연합회 정책위원은 “신문은 오래 전부터 구독층 감소를 겪어 왔고, 탈출구로 종합편성채널이라는 TV 산업으로의 진출을 택했는데 불행이도 방송 산업마저 영향력이 감소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인터넷이나 모바일 등 뉴미디어 플랫폼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방송의 영향력이 줄어들고 있고, 이는 곧 광고 감소로 이어져 기존의 전통 미디어들이 심각한 경영 위기를 맞고 있다”고 설명했다. 조 정책위원은 “시대의 흐름에 맞춰 신문이나 방송 등 전통 미디어들도 뉴미디어 플랫폼을 만들어 대응하려고 시도하지만 네이버나 카카오 등 포털의 영향력에는 미치지 못하고 있다. 다만 디지털 플랫폼은 포기할 수 없는 과제이기에 뉴미디어의 영향력을 따라잡기 위한 방안을 찾고 있다”고 덧붙였다.

기술 발전에 대한 논의는 자연스럽게 ‘일자리’라는 주제로 연결됐다. 최근 많이 언급되고 있는 ‘인공지능(AI)이 사람들의 일자리를 빼앗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두려움처럼 기술의 발전이 기존 인력들의 일자리에 어떤 영향을 주고 있고, 또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예측해보자는 것이다.

박종석 연합회장은 “새로운 기술이 도입되면서 기존에 5명이 하던 일을 이제는 2명이 한다”며 똑같은 업무지만 필요한 인력이 줄어들고 있음을 인정했다. 하지만 이 같은 기술의 발전이 오히려 방송기술 업무 확장의 기회가 될 수도 있음을 언급했다. 박 회장은 “가상현실(VR)이나 증강현실(AR) 등 새로운 기술을 제작 과정에 도입해 어떻게 하면 제작의 첨단화를 이끌어 갈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조성래 연합회 정책위원은 “(필요한 인력이 줄어든다고 해서) 기존 인력이 일자리를 잃거나 해고된다는 것은 아니고 신규 인력을 적게 뽑는다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며 “일반적으로 회사에서는 새로운 시스템을 도입하면서 효율성을 강조하는데 그 효율성은 결국 ‘인력을 얼마나 줄였느냐’다”라고 설명했다.

신일수 언론노조 사무처장은 “과거에는 방송 제작이나 송출, 편집 등의 업무가 영역이 나눠져 있었으나 디지털 기술이 도입되면서 1인 제작 및 편집 시스템이 보편화되고 있다”며 “신규 고용이 줄어드는 것은 물론이고 기존 직원들도 재교육 없이 반 강제적으로 잡 시프팅 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신 사무처장은 “기술이 발전하는 만큼 업무의 재구성이 필요하다”며 “다만 그 과정에서 노동의 가치를 재산정하고 그에 합당한 보상과 재교육 등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술 발전으로 노동자가 부속품화 되는 현상은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대만 측 참석자들은 기술 발전이 장시간 노동과 비정규직 고용 증가를 불러오는 것은 아닌지 우려를 표했다. Chang-de Liu 대만국립정치대학교 신문학과 교수는 “기술 발전으로 실시간 보도에 익숙하다보니 기자들이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고 있다”며 “근무 시간에 대한 개념을 어떻게 정해야 하고, 시간외 수당을 어떻게 지급해야 하는지 논란이 있다”고 말했다.

대만과 마찬가지로 우리나라에서도 시간외 수당은 노사 갈등의 주원인이기도 하다. 뉴시스의 경우 최근 야근 시스템을 개편했는데 이를 두고 내부에서는 시간외 수당 지급을 줄이기 위해 야근을 금지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한국기자협회가 종합일간지 9개사와 경제지 3개사, 방송 2개사, 통신 3개사 등을 조사한 바에 따르면 연장과 야간 근로의 경우 통상 임금의 150%를 지급하는 곳은 소수에 불과했다. 대부분의 언론사들이 포괄임금제 형태로 시간외 수당을 급여에 포함시켜 일괄 지급하고 있고 추가적으로 식사나 교통비 등 명목으로 소정의 액수를 지급하는 수준이다. 이에 대해 기자들과 노조에서는 수당 현실화를 요구하고 있으나 사측에서는 인건비 부담을 이유로 꺼리고 있는 상황이다.

시간외 수당과 같은 부분은 기자 직군뿐 아니라 그 외 직군에서도 여러 차례 문제된 바 있다. 신일수 언론노조 사무처장은 “그나마 정규직에겐 시간외 수당을 지급하고 있지만 비정규직의 경우 그런 규정조차 없다”며 “비정규직 방송 노동자의 조직화는 어려운 과제지만 그래도 (언론노조 차원에서) 꾸준히 추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날 세미나에서는 국내 언론 운동에 대한 관심도 뜨거웠다. 대만 측 참석자들은 촛불집회를 언급하면서 최근 국내 언론 운동의 이슈가 무엇인지 질문했다. 성재호 언론노조 KBS본부 위원장은 “최근 10년 동안 전 세계 언론의 관심이나 과제는 급격한 미디어와 관련된 기술의 변화, 디지털 콘텐츠, 플랫폼의 변화 그에 따른 언론의 대응이었는데 한국에서의 가장 큰 화두는 불행히도 매우 구시대적인 화두, 가장 기본적인 원칙인 방송의 독립, 보도의 독립이었다”고 운을 뗐다. 성 위원장은 “이명박-박근혜 정권에서는 노골적으로 언론에 대한 개입 정책을 펴왔기 때문에 노조와 언론시민사회단체는 정치권력의 언론 장악을 막는데 많은 시간과 자원을 써야만 했다”고 토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