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인가 2차 가해자인가…미투 운동 보도 방식에 비판 잇따라 ...

언론인가 2차 가해자인가…미투 운동 보도 방식에 비판 잇따라
"여론 재판의 판단자가 아니라 피해자의 목소리를 전달하는 매개자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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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기술저널 전숙희 기자] 검찰 내 성폭력 폭로를 시발점으로, 사회 각계각층에서 입을 다물고 있어야만 했던 여성들의 목소리가 커지며 이른바 ‘미투 운동’이 활발히 진행 중이다. 일각에서는 혁명으로 불리는 이 거센 흐름이 계속되며 언론에서도 앞다퉈 이를 다루고 있지만, 그에 따른 2차 가해와 언론의 보도 방향에 대한 비판이 커지고 있다. 한국방송학회는 이러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언론의 미투 보도, 그 바람직한 방향’ 세미나를 3월 23일 오후 3시 서울 목동 한국방송회관에서 개최했다.

세미나에서 가장 먼저 지적된 것은 미투 운동의 주체가 누구인가였다. 첫 번째 토론자인 박진규 서울여대 교수는 “미투 운동의 주체를 명확히 해야 언론의 역할과 개선 여지에 대해 분명한 방향을 고민할 수 있을 것”이라며 “성폭력 생존 여성들이 언론의 생리와 파급력을 잘 이해하고 고통을 감수하며 언론을 능동적으로 사용해 그 힘을 극대화하고 거스를 수 없는 흐름으로 만든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박 교수는 “성폭력 생존 여성들이 자신의 보호하기 위한 최후의 수단으로서 언론을 인식하고 사용하고 있다”며 이는 “JTBC <뉴스룸>의 인터뷰에서 ‘제가 오늘 이후에 없어질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도 했다. 저의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는 게 방송이라고 생각했다. 이 방송을 통해서 국민들이 저를 지켜줬으면 좋겠다’라고 생존 여성들이 분명히 말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미투 운동이 이렇게 큰 흐름이 된 데에는 사건 내용을 피해자의 육성으로 직접 듣는, 그동안 없었던 사건을 접하는 방식이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김언경 민주언론시민연합 사무처장은 이에 대해 “이번 미투 운동은 저희도 적응하기 힘든 사태”라고 말했다. 성범죄의 경우 2차 가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피해자의 신상을 제공하지 않는 것이 언론 보도의 기본 지침으로, 이를 어기는 언론에 대한 지적은 많았으나 언론 노출을 피해자가 직접 요청한 적은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새로운 방식이 등장했을까. 정슬아 여성민우회 사무국장은 “피해자들이 언론을 선택했다고 볼 수 있을까요? 그것이 선택이었을까요?”라고 반문했다. 김언경 사무처장 역시 “지금은 피해자가 신상을 공개하지 않으면 피해 사실 역시 가짜인 것처럼 돼 버렸다”라고 말했다. 성범죄 피해자가 얼굴과 이름을 공개하지 않으면 믿어주지 않고 쉽게 무고로 몰아세우는, 그러한 논리가 가능하도록 하는 사회적 인식과 분위기가 이들을 2차 가해를 감수하면서까지 카메라 앞에 설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는 언론 보도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이희은 조선대 교수는 “언론 보도에서 피해자의 고통을 과도하게 자세히 서술하며 가끔 포르노가 되는 느낌을 받는다. 몇 차례 했는지, 얼마나 강하게 그랬는지가 미투 운동의 진정성을 가르는 기준인 것처럼 다룬다”고 지적했다. 사건의 자잘한 사항을 다루고 사실관계를 확인하며 두 개인의 싸움으로 환원함으로써 성범죄가 일어난 근본적·구조적 문제는 잊고 있다는 것이다.

김언경 사무처장도 이를 꼬집었다. “지금 언론의 양태는 너무 재미있는 이야기가 터졌다는 식이다. 우리나라 성폭력이 큰 문제다가 아니라 여기도 터졌어 저기도 터졌어하며 흥미 위주로 다루고, 개인 간 싸움으로 몰고 가며 중계하듯 다루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비판했다. 이러한 보도 방식이 사건의 해결보다는 여론 재판을 조장하고 소위 꽃뱀과 가해자를 비판하는 사람으로 국민을 이분법적으로 나눈다는 것이다.

이어 김 사무처장은 “언론을 위한 성범죄 보도 가이드라인은 이미 충분히 많다. 심의 규정도 나름 잘 돼 있다. 문제는 이것이 언론 사회에 인식과 공유가 잘 돼 있지 않고 무엇이 2차 가해인지에 대한 인식도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원인을 지적했다. 인권 감수성은 갑자기 생기는 것이 아니라 계속 배워나가는 것으로 많은 가이드라인과 논의, 인권을 언론인들이 제대로 공부하고 배워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정민경 미디어오늘 기자는 “기자로서 사실관계 확인을 중요하게 배우는데 이를 확인하기 위해 피해자에게 접근하는 것 자체가 2차 가해일 수 있어 고민이 많다. 피해자에게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도 배운 적이 없는 것 같다”고 현장에서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그렇다면 앞으로 언론은 어떻게 미투 운동을 보도해야 할까. 박진규 교수는 “젠더 문제에 보다 전문적 조직이 있었다면 피해자를 전면에 내세우지 않으면서도 보도의 신뢰성을 높이는 방식, 언론이 피해자에게 심문하는 대신 피해자가 자신의 말로 긴 호흡으로 서사화하는 방식, 또 언론이 가해자에게 질문하고 사과하는 방식 등을 고민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박 교수는 “손석희 앵커의 자리에 여성 저널리스트가 있었다면 어땠을까 상상해봤다”고 말했다. “단순히 남성 앵커를 여성 앵커로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손석희 앵커만큼의 신뢰성을 확보한 여성 저널리스트가 존재했다면, 여성 저널리스트에게 그런 기회가 제공되는 사회였다면 어땠을까에 대한 상상”이라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재국 성균관대 교수는 “뉴스의 진실 추구와 인간 존엄 수호의 문제는 언론의 기본적 한계”라며 “우리 언론이 이 두 가지 가치를 어떻게 보다 현명하게 보도할 것인가를 배워가는 과정에 있으며 이것이 사회 진보의 일부라고 생각한다”며 보다 바람직한 언론 보도를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