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를 위한 아날로그 방송 종료인가?’

‘누구를 위한 아날로그 방송 종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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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자 입장에선 아날로그 송출 중단이 ‘불편함’의 시작이다. 아날로그 방송 시대가 끝나고 디지털 방송 시대가 시작되는 역사적인 시점이 그동안 아날로그 방송 환경을 가지고 있던 시청자들에겐 또 다른 불편함의 시작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럼 이러한 불편함을 감소하고 아날로그 방송을 종료하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인가 하는 문제의식이 나올 수밖에 없다.”

지난 8일 오후 3시 30분 서울 목동 방송회관 3층에서 한국방송기술인연합회와 미래방송연구회 주관으로 열린 ‘디지털 전환 긴급진단 토론회 – 누구를 위한 아날로그 방송 종료인가?’에 토론자로 참석한 김동준 공공미디어연구소 부소장은 “그동안 디지털 전환 준비가 잘 되었다면 가능할 수도 있겠지만 여러 가지 부분에서 디지털 전환의 준비가 아직도 많이 부족하다고 볼 수 있기 때문에 ‘과연 강제적인 아날로그 방송 종료가 타당한가’ 라는 문제제기를 하고 싶다”면서 말문을 열었다.

한국방송기술인연합회가 마련한 이번 토론회는 ‘방송, 미래를 꿈꾸다’라는 주제로 지난 7일부터 8일까지 열린 ‘2012 가을 디지털 방송 컨퍼런스’의 한 섹션으로 아날로그 방송 종료일이 50여일도 채 남지 않은 상황에서 여전히 논란의 중심에 서있는 디지털 전환의 문제점을 점검해보고, 다시 한 번 디지털 전환의 목표를 점검함으로써 시청자 중심의 정책이 될 수 있도록 정책 방향을 재조정하거나 보완하는 등의 조치를 취하기 위해 마련됐다.

이날 자리에 참석한 토론자들은 한 목소리로 “디지털 전환 정책을 둘러싸고 논란의 여지가 많이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디지털 전환의 본래 목적 즉 시청자들에게 고품질의 방송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라며 시청자의 입장에서 왜 디지털 전환을 해야 하는지, 그 혜택이 무엇인지부터 먼저 따져 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수신환경 실태조사’ 우선돼야

먼저 서울과학기술대 김광호 전자정보IT미디어공학과 교수는 현재 방송통신위원회(이하 방통위)의 정책을 지적한 뒤 “디지털 전환은 시청자의 의사와 상관없이 아날로그TV를 폐기하고 디지털TV를 구매하거나 컨버터를 구매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정상적으로 시청자의 입장에서 (자발적으로 할 수 있도록) 정책을 펼쳐야 하는데 요즘 방통위를 보면 산업계에 휘둘려 아날로그 방송 종료를 쉽게 하는 것에만 맞춰 있는 것 같다”면서 본연의 목적으로 되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교수의 지적에 송상훈 방송통신위원회 디지털정책과장은 “디지털 전환을 아날로그 방송 종료에만 국한하고 있지 않느냐고 물으신다면 그렇지 않다고 말할 수 있다”면서 디지털 전환의 목표가 전 국민이 디지털TV를 통해 보다 깨끗한 화질의 방송을 볼 수 있게 하는 것이기 때문에 아날로그 방송 종료 후 채널재배치, 난시청 문제 등도 염두에 두고 있다고 답했다.

하지만 토론자들은 이러한 답변에도 불구하고 방통위의 현 정책에서 수정해야 할 부분들이 많다고 지적했다. 김동준 공공미디어연구소 부소장은 “방통위에서 전 국민의 디지털 전환을 목표라고 말하고 있는데 이것이 과연 전 국민의 디지털 전환인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면서 지상파 방송의 디지털 전환 완료 후 전 국민이 디지털 방송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실태조사가 우선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 국민 디지털 전환’을 위한 준비가 부족하다면 수신환경 실태조사 후 아날로그 방송을 종료하는 등의 기간 조정이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김 부소장은 이어 700MHz 등 주파수 정책의 재조정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디지털 전환 이후 난시청 지역과 주파수 필요에 대한 정밀한 조사 이후 개선작업이 이뤄져야 성공적인 디지털 전환인데 이에 앞서 주파수 회수나 재배치 논의를 하는 것은 타당치 않다는 지적이다.

한국여성민우회 강혜란 미디어운동본부 정책위원도 여기에 동의를 표하며 “올 여름 전국 조사를 시작하면서 수신환경 실태조사를 방통위에 제안했지만 여전히 답이 없는 것으로 보아 좌초될 가능성이 높은 것 같다”고 말한 뒤 “수신환경과 난시청 해소의 책무를 KBS가 가지고 있는데 이건 좋은 문제 해결의 방식이 아니다. 그 책임과 판단을 방통위로 보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그는 또한 유료방송 사업자가 공시청 설비와 관련해서 어떠한 방해도 못 하도록 엄격히 점검하는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에 신진규 DTVKOREA 교육사업팀장은 현재 공시청 제도에 있어 유지관리에 대한 점검 주기, 점검 방법 등에 대한 구체적 법률 조항이 미비하고 동시에 공시청 선로를 유료방송 사업자가 전용해도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고 있는 등 문제점이 있다면서 정부당국에서 하루 빨리 이러한 환경을 개선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디지털 전환, 혜택 있나?

이날 또 다른 쟁점은 디지털 전환의 혜택이었다. 김동준 공공미디어연구소 부소장은 “디지털 전환의 혜택이 무엇이냐? 그 혜택을 시청자들이 제대로 알고 있느냐는 것이 디지털 전환의 또 다른 문제”라고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디지털 전환이 이뤄지면 아날로그TV 시청 습관이 변하고 TV구매 등 재정적 부담이 있는데 이 때 시청자를 움직일 수 있는 것은 더 큰 보상을 가져다 줄 것이라는 기대라는 지적이다. 김 부소장은 여기서 ‘지상파 다채널 방송’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2000년대 이후 지상파 다채널 방송은 끊임없이 이야기되고 있고, 이미 기술적 검증도 끝났는데 왜 시행이 되지 않는지 알 수 없다”면서 “현재 방통위 측은 다음 정권으로 이 문제를 넘기려고 하는데 왜 또 다음 정권으로 넘겨야 하는지 의문이 든다”고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이창형 KBS TV송출부장 역시 “지상파 다채널 방송을 하면 자발적 직접수신가구가 늘어날 것인데 정책당국은 눈을 감고 있다”고 방통위 정책의 문제점을 꼬집었다. 이 부장은 시청자들이 유료방송에 가입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다채널’이라는 통계조사를 근거로 들면서 “디지털 전환의 장점인 다채널 서비스를 시청자들이 누려야 하는 것은 당연함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만 유일하게 (디지털 전환을 실시하면서) 다채널 방송을 행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신진규 DTVKOREA 교육사업팀장도 EBS 수능채널을 예로 들며 “수능의 70%가 나온다는 EBS 수능채널의 경우 4천 원짜리 상품으로는 볼 수 없고, 최소한 1만 원짜리 이상의 상품을 봐야 볼 수 있다. 유료방송 사업자가 채널로 장사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방통위는 EBS가 무료로 다채널 방송을 하겠다고 신청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허가를 안 해주고 있다. 도대체 왜 그런 것인지 모르겠다”고 의문을 표한 뒤 무엇보다 지상파 방송의 생태계가 먼저 복원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재 우리나라의 경우 ‘유료방송 가입자 증가→직접수신가구의 구입 및 설치 수요 감소→전파사에서 안테나 등 판매실적 감소→설치공사업체의 도산→직접수신 인프라 훼손→유료방송 가입자 증가’ 등의 악순환이 되풀이되고 있는데 이러한 생태계에서는 ‘성공적인 디지털 전환’ 자체가 어렵다는 것이다. 이에 신 팀장은 “먼저 다채널 방송 등 디지털 전환의 혜택을 시청자에게 제공한 뒤 직접수신가구가 증가하면 마트에서도 안테나를 판매할 것이고 이 모든 부분이 시너지 효과를 일으켜 방송 생태계가 복원될 것”이라며 방통위가 ‘지상파 다채널 방송 허가’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라고 제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