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HDTV와 3D는 쌍둥이다

[기고] UHDTV와 3D는 쌍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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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진성 방통융합미디어 팀장

지금도 기억이 생생하다. 전 세계적인 파장을 일으켰던 영화 아바타의 등장. 제임스 카메론 감독이 창조한 환상적인 세계의 감각을 만끽하는 그 기분이란! 많은 사람들은 영화 아바타의 성공을 통해 새로운 미디어 패러다임을 찾았고, 더 나아가 발전적인 시청 모델의 신세계를 발견할 수 있었다. 단순한 방송기술이라고 여겼던 3D가 100년을 넘게 이어온 시청 환경의 패러다임을 그대로 바꿔버린 것이다. 하지만 당장이라도 모든 시청 모델을 송두리째 바꿀 것처럼 보이던 3D 열풍도 결국 한계가 있었다. 이채롭게 펼쳐지는 영화의 생생한 질감은 곧 새로운 시청을 향한 사람들의 욕구만 부풀렸을 뿐이다. 하지만 기술, 즉 엔지니어들은 그 감동을 잊지 않았다. 이들은 3D 열풍을 온전히 미디어 시청 행태로 변화시키기 위해 부던히도 노력했다. 그 노력의 결과물로 3D 포터블 장비가 등장했다. 하지만 극장과 일반 가정의 차이는 여전히 극복하지 못했다.

최근 UHD 발전 이야기가 솔솔 들린다. 재작년부터 시동을 걸기 시작한 이 새로운 기술은 초고선명 TV 시대를 열 새로운 미디어 대격변으로 벌써부터 많은 관심을 모으고 있다. 하지만 필자는 UHD가 3D의 전철을 밟지 않을지 걱정이다. 새로운 미디어 발전기술로 각광을 받던 3D가 맥없이 쓰러진 것처럼, UHD도 장기적이고 탄탄한 계획이 없으면 곤란하기 때문이다.

당장 작년 KOBA 2012부터 보자. 당시 행사장에는 지상파 주요 방송사 및 파나소닉 등 을 중심으로 ‘사진이 움직이는 듯한’ UHD 4k 기술을 직접 확인하고 싶은 인파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특히 캐논의 경우 C300과 EOD1DC 등 Cinema EOS 시리즈를 선보여 큰 호응을 받았고 파나소닉은 세계 최대 152인치 4k 3D Plasma Display를 통해 참관객을 압도했다는 평을 받았다. 하지만 3D는 포터블로서만 약간의 관심을 받았을 뿐이다. KOBA 2012에는 작년까지 열풍처럼 미디어 전반을 뒤흔들었던 3D방송이 소형화, 경량화 된 모습을 보인 반면 UHD 4k의 비전을 확인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가진다고 볼 수 있다. 이에 소니의 경우 F65 카메라를 위시한 전반적인 4k 솔루션을 전시해 큰 반향을 일으켰으며 파나소닉을 비롯한 캐논 등 다양한 업체에서도 4k의 발전을 위한 고민의 흔적이 여기저기 배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눈부시게 발전하고 있는 UHD 기술이 3D의 전철을 밟지 않는다는 보장은 그 어디에도 없다. 물론 3D가 사양사업이라는 뜻은 아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3D는 자신의 기술적 진보를 복제하며 스스로를 업그레이드 시키는 방향을 열심히 모색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디스플레이의 유행을 보면, 3D의 미래가 화려한 장밋빛으로 가득할 것이라는 기대를 하는 사람은 없다. 바로 이런 부분이다. 이런 부분에서 UHD 기술의 미래가 조금 어두워진다고 볼 수 있다.

이 모든 것을 감안하면, UHD 기술의 불길한 미래를 엿볼 수 있다. 그래서 제안한다. UHD 기술은 3D 기술처럼 그 폭발적인 스타트에서 벗어나 조금씩 안정적이고 장기화된 로드맵에 녹아들 때가 왔다. UHD 기술의 장점은 커다란 디스플레이에서 오는 화려한 색감에 있다. 그리고 현실로 느껴질 만큼의 기시적인 증강에 있다. 바로 이 부분을 살려 포괄적인 미디어 모델에 UHD 기술을 활용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화되고 개성화된 기점을 전제로 발전의 상생 모델을 찾아야 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이런 정책적 진보를 더욱 담보하는 방송기술의 공리적, 법적 지원도 아낌없이 포커스가 정해져야 한다. 난사하는 방식으로는 어렵다는 뜻이다. UHD가 가지는 새로운 특성을 잘 살릴 수 있는 방향으로 그 기술적 진보를 담보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런 의미에서 UHD와 3D는 쌍둥이다. 그러나 걸어갈 길은 달라야 한다. 지금까지 두 기술이 걸어온 방향이 같다고 해도 그 결과까지 같을 필요는 없다. 3D도 마찬가지다. UHD도 마찬가지다. 지금 당장 새로운 기점을 삼아 특색있는 미디어 환경을 구축하는데 총력을 다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방송기술의 숙명이고 운명이라고 본다. 거듭 강조하지만 타깃을 정하지 않고 일괄적인 기술적 진보만 요구한다면, 결과는 끝없는 좌절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