핫 미디어, 쿨 미디어 그리고 나가수 프로그램

[기고]핫 미디어, 쿨 미디어 그리고 나가수 프로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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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창호 부창대 교수

매체 비평 혹은 프로그램 비평과 관련해서 매우 유용한 개념 중의 하나로 매체학자 맥클루언이 제시한 핫 미디어(hot media)와 쿨 미디어(cool media)라는 것이 있다. 맥클루언이라는 학자 자체가 찬사와 비난을 동시에 받는 사람이기 때문에 이 개념 또한 논란이 많고 일반적으로 통용되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이 개념은 그가 제시한 많은 개념 중에서도 대표적인 개념이라고 할 수 있고 매체 혹은 프로그램을 바라보는 매우 독창적인 관점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에 한번 살펴볼 필요는 충분하다.

그에 따르면, 인쇄매체는 핫 미디어이고 TV매체는 쿨 미디어이다. 그리고 후진국이 차갑다면, 선진국은 뜨거우며, 시골사람은 차가운 반면 도시 사람은 뜨겁다고 말한다. 또 돌도끼는 차가운 반면, 쇠도끼는 뜨겁다고 말한다. 세미나가 뜨거우면, 연설은 차갑다고 말한다. 돌은 시간에 묶인 것으로 차갑고, 종이는 공간을 횡적으로 통합하는 것으로 뜨겁다고 한다. 그리고 하나의 매체가 경우에 따라서 차갑기도, 뜨겁기도 하다고 말한다. 예컨대 영화와 라디오로 대표되는 뜨거운 매체 시대의 재즈는 뜨거운 재즈였지만, 라디오와 영화가 준 최초의 충격이 흡수된 이후에는 차가운 재즈가 되었다고 주장한다.

쿨 미디어와 핫 미디어를 구분하는 기준이 명쾌한 것은 아니다. 그런데 그가 제시하는 여러 기준 중에서도 매체가 제공하는 감각정보의 강도 혹은 밀도라는 기준은 매우 참신하다. 그에 따르면 뜨거운 매체는 단일한 감각정보를 고밀도로 집중시킨 것이고, 차가운 매체는 전체적인 감각정보를 저밀도로 분산시킨 것이다. 예컨대 다섯 가지 감각 정보 중 어느 특정 감각 정보만을 선택적으로 처리하는 매체는 뜨거운 매체고, 다섯 가지 감각 정보를 골고루 처리하는 매체는 차가운 매체라는 것이다. 또한 같은 매체라고 하더라도 정보의 밀도가 집중된 방식으로 처리하면 그것은 뜨거운 매체가 되고, 정보의 밀도가 분산된 방식으로 처리하면 차가운 매체가 된다. 이러한 기준에서 보면 시각정보만이 동원되는 인쇄매체는 뜨거운 매체가 되며, 시각정보는 물론 청각정보가 동원되는 TV는 차가운 매체가 된다. 당연히 인간이 직접적인 경험을 통해 다섯 가지 감각정보를 동시에 처리하는 신체매체는 가장 차가운 매체가 된다.

그리고 이러한 매체는 인간의 심리에 일정한 영향을 미치게 되는데, 핫 미디어는 최면 상태를 불러일으키고, 차가운 매체는 환각 상태를 불러일으키는 경향이 있다. 최면 상태란 주의가 한 곳에 집중되어 주변의 일들을 모두 잊어버리고 한 가지 일에만 몰두하게 되었을 때 나타나는 심리현상이다. 예를 들어 공부를 열심히 하면 모든 정신이 공부에 집중되어 누가 옆에서 부르는 것도 모르게 되는데, 이것도 일종의 최면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이 상황에서 다른 감각들은 마비되기 때문이다. 반면 환각 상태란 외부 자극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소리나 형상을 지각하거나 혹은 외부 자극에 대해 현저하게 왜곡된 지각을 하는 경우를 말한다. 예컨대 모든 정보를 직접적인 신체적 접촉을 통해서 얻는 원시부족민들은 신화와 역사, 사실과 의견, 현재와 과거 등등을 구분하지 못하는데, 이렇게 몽롱한 의식 상태는 일종의 환각상태라 할 수 있다.

이런 기준에서 볼 때, 『나는 가수다』프로그램은 매우 뜨거운 프로그램이다. 우선 프로그램의 형식 자체가 경연의 행태를 취하고 있어 경쟁의 긴장감을 고도화하고 있다. 경쟁은 대결 구도가 분명할수록, 그리고 그 성패의 결과가 극단적일수록 사람들을 긴장시키고 흥분하게 한다. 치열한 경쟁과 그 결과로서 승자와 패자로 나뉘는 것만큼 드라마틱한 것이 어디 있을까? 또한 이 프로그램은 스튜디오 자체가 음악적 효과를 최대화할 수 있도록 첨단장비와 시설로 꾸며져 있다. 가수는 다양한 재능 중에서도 음악적 재능에 최대한 초점을 맞추어 노래를 한다. 그야 말로 목소리 하나로 승부하겠다는 것이다. 또한 관객은 가장 집중된 분위기에서 가수가 소개될 때마다 최대한의 기대를 갖고 가수의 노래에 집중한다. 가수는 이러한 기대와 무대를 배경으로 극도의 긴장감을 가지고 노래를 하는 것이다. 카메라는 역시 긴장감을 고조하는 배경음악과 가수 그리고 방청객의 표정을 클로즈업으로 잡아 시청자의 감정이입을 극대화시킨다. 방송동안 시청자들은 프로그램 기획자의 포로가 되는 것이다.

가수란 무엇일까? 그것은 문자 그대로 노래하는 사람을 말한다. 그것은 꼭 노래하는 것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우리는 누구든지 노래할 수 있고, 따라서 누구든지 가수가 될 수 있다. 그러나 나가수 프로그램을 보고 있으면 역시 가수는 천부의 재능을 갖고 있는 사람만이 될 수 있는 것이란 생각이 든다. 보통 시청자들은 그저 노래를 듣기만 하는 사람으로 만족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최근 아이돌 그룹에 밀려 방송에서 소외되었던 출연한 가수들은 이 프로그램을 통해 모처럼 새로운 기회를 얻었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것이 음악일까? 음악은 잘하는 사람이든 못하는 사람이든, 잘하면 잘하는 대로 못하면 못하는 대로 즐길 수 있어야 한다. 완벽한 음악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모든 음악이 그대로 좋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