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기 속 거꾸로 가는 대한민국

금융위기 속 거꾸로 가는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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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위기 속 거꾸로 가는 대한민국

김수철 민주노동당 정책연구원

사실 작년 서브프라임 사태가 터졌을 때, 찬바람이 불거라는 말은 많았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허리케인이 될 거라 생각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모든 경제학자들이 이번 위기를 ‘대공황’ 이후 최대 위기라는 점을 부정하지 않는다.
미국정부는 물론 세계 정상들이 각종 구제책을 내놓고 있지만, 허리케인이 잦아들기보다 더 큰 불안감이 엄습한다. 이미 반 토막 난 주식, 폭등하는 환율로 가계와 기업은 초토화된 상태다. 그러나 ‘리만브라더스와 같은 투자은행의 파산이 전 세계 상업은행으로 확산될 것이다’, ‘부동산값 폭락으로 한국판 서브프라임이 도래할 것’이라는 우려가 연이어 터져 나오는 것이다.
국제결제은행(BIS)가 추산한 바에 따르면, 전 세계에 유통되는 금융파생상품의 가치가 600조 달러에 이른다고 한다. 전 세계 모는 나라의 GDP가 54조 달러니까, 퀴즈 프로그램에나 나올 법한 ‘조’ 다음의 단위, ‘경’을 사용하지 않으면 측정할 수조차 없는 거품이 만들어졌던 것이다.
이 어마어마한 거품은 언제부터 만들어진 것일까. 30년대 대공황 이후 금본위제를 페기하고 달러가 기축통화가 된 때부터라는 주장도 있고, 70년대 석유 파동 후 이른바 ‘신자유주의’ 경제가 부상한 이후라는 주장도 있다. 엄밀한 분석은 경제학자 또는 전문가들의 몫일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기존의 방식대로 미국이 달러를 세계 곳곳으로 공급하고, 그 달러를 받아 파생금융 상품으로 수익을 내는 방식의 경제 시스템은 종말을 고했다는 점이다. 영국의 브라운 총리가 신브레튼우즈 체제를 제안하며, 달러 본위제에 변화를 요구했다. 미국은 파생금융 상품에 대한 엄격한 통제 기구를 설립할 계획이다. 바야흐로 기존의 경제 모델과 다른 새로운 경제 모델의 탄생이 예고되는 시점인 것이다.
그렇다면 다가올 새로운 경제 모델은 어떤 모습일까. 바로 내일의 주가지수도 예측할 수 없는 금융위기의 시기에 지난 수십 년 지속된 모델의 변화를 예측한다는 것은 무모한 행동일는지 모른다. 그러나 신중하기 위해 침묵하는 것이 옳은 것도 아니다.
리만브라더스가 무너지기 전 8월 18일, 파이낸셜타임즈에는 흥미로운 칼럼이 실렸다. 컨설팅 업체 인디펜던트 스트래티지의 데이비드 로치 사장은 ‘금융위기 이후 전망’이라는 글을 기고한 것이다. 로치 사장은 다음과 같은 다섯 가지를 예측하였다.

첫째, 기존 투자은행과 같이 차입 비중을 높여 순익을 얻는 방식이 아닌, 실제 경제적 기여를 통한 순익이 늘어날 것.

둘째, 막대한 달러 유동성이 줄고, 수출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중국과 같은 신흥시장 발전 모델이 유효하지 못할 것.

셋째, 물가 상승 압력에 자유롭지 못할 것.

넷째, 유럽의 사회적 시장 모델이 부활해, 기업과 부자의 세금과 시장규제가 늘어날 것.

다섯째, 미국의 지위가 약화되고, 다극 체제가 출현할 것.

단정적인 표현들을 사용하고 있지만, 충분히 설득력 있는 인식이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우리나라는 어떠한가. 투자은행 모델을 쫓아 자본시장통합법과 금산분리가 추진되고 있다. 대기업 수출 중심의 높은 경제 체질은 개선되지 못한 채, 도리어 법인세 인하와 같은 대기업 특혜가 추진되고 있다. 물가 상승 요인을 억제하긴 커녕, 공공요금 인상을 불러올 공기업 민영화가 추진되고 있다. 종부세를 인하해 부자들의 세금은 줄었다.
금융위기 후 세계는 분명히 달라져 있을 것이다. 변화된 세계에 얼마나 빠르게 적응할 것인가가 한국경제의 갈림길로 놓일 것이다. 지금의 금융위기에 더욱 근본적으로 천착해야하는 이유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