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영방송 보도 테크닉으로서의 ‘기계적 균형’

[조준상 칼럼] 관영방송 보도 테크닉으로서의 ‘기계적 균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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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정권은 보도의 공정성을 앞세워 KBS와 MBC 등 방송뉴스채널의 시사 프로그램을 대폭 축소 내지 폐지하려 해 왔다. 그리고 현재 KBS의 ‘사장’을 맡고 있는 이병순씨, 서울MBC의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 김우룡씨를 비롯한 한나라당 추천 이사들, 이들의 압력을 받으며 굴복하는 태도를 취해온 엄기영 MBC 사장 등은 정도의 차이가 있으나 시사 프로그램을 폐지 또는 축소해 왔다.
 


보도의 공정성을 앞세워 방송 매체의 시사 프로그램을 폐지 내지 축소하려는 이런 현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특히 현 정권이 말하는 공정성이 이른바 ‘기계적 균형’을 뜻하는 상황에서 시사 프로그램에 기계적 공정성을 적용하려는 기도, 내부 제작자들의 저항에 부닥치자, 아예 폐지 또는 축소하려는 기도를 어떤 논리적, 역사적 맥락에 자리매김하는 게 좋을지 분명하게 정리하는 게 필요할 정도로 시간은 충분히 흘렀다.


내 생각은 이렇다. 논리적인 측면에서 언론, 정확히는 언론인은 현실을 어떻게 이해하는가 하는 문제이다. 언론인의 현실 인식 문제는 정확히 사람이 사물을 어떻게 인식하는가 하는 인식론에 해당한다. 언론이 언론인 한 이 인식론 문제는 결코 버릴 수 있다. 언론이 ‘진실보도’를 자신의 본령이자 임무로 삼기를 포기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진실 보도는 언론의 인식론에서 나오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른바 언론사 내부의 ‘게이트 키핑’이라는 기능도, 현실에 대한 정확하고 진실한 인식을 보완하는 한에서만 그 긍정성을 갖는다. 그렇지 않고 ‘게이트 키핑’이 현실에 대한 인식 내용을 ‘물타기’ 한다거나, 없던 것으로 만드는 기능을 할 때, 그것은 ‘언론사 내부의 사전 검열 장치’로 전락하고 만다.


불행하게도, 이 인식론과 관련해 현 정권이 내세우는 기계적 균형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다. 당연하기까지 하다. 기계적 균형은 인식론의 영역이 아니라 보도 테크닉의 영역에 있기 때문이다. 언론사나 언론인의 현실 인식 결과, 도저히 어느 것이 진실한지에 대해 판단할 수 없을 때 적용하는 보도 테크닉, 그것이 기계적 균형이다. 이를테면, MB와 사돈관계인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의 장남 조현준 그룹 사장이 2002년 미국에서 450만달러에 이르는 호화 빌라를 사들여 외환거래법을 위반했다는 해외 교포 언론인의 추적보도에 대해 국내 언론 대다수가 보도하지 않은 현실에 대해 현 정권의 ‘기계적 공정성’은 무기력하다.


역사적인 측면에서, 현 정권이 말하는 기계적 균형이 어떤 맥락에서 제기되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현 정권이 내세우는 기계적 균형은 2004년 6월10일 한국언론학회 일부 학자들이 발표한 탄핵방송 보고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한나라당이 이 보고서를 애지중지 했음은 널리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현 정권이 이 기계적 균형을 적용하고 있는 역사적 맥락은 언론학 교과서에서 도구주의적 언론관이라고 부르는 것과 정확히 맞닿아 있다. 지난해 7월 박정완 국정기획수석이 KBS를 예로 들며 “방송의 중립성 측면도 고려해야 겠지만, (KBS 사장은) 새 정부의 국정철학과 기조를 적극적으로 구현하려는 의지가 있는 인물이어야 한다”고 밝힌 것을 비롯해, 현 정권의 고위층 인사들은 틈난 나면 이런 식의 얘기를 공공연하게 또는 자기들끼리 해 왔다. 정권이나 국가의 국정철학의 구현하는 도구로서 방송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일부 학자들은, 이 도구주의적 방송관과 기계적 균형이 그리 잘 어울리지 않는다고 꼬집는다. 도구주의적 방송관을 적용하기 위해서는, 언론/언론인의 현실 인식은 정권이나 국가의 국정철학에 기울어야 하고, 이렇게 기운 현실 인식을 보도하려면 기계적 균형이 아닌 어떻게든 치우친 보도가 될 수밖에 없다는 이유에서다. 충분히 타당한 비판일 수 있다. 그러나 이런 비판과 취지를 공감하면서도, 도구주의적 방송관과 기계적 균형은 전혀 모순이 안 될 수도 있다. 기계적 균형을 인식이 아닌 보도 테크닉이라는 점을 잊지 않는다면, 도구주의적 방송관은 보도 테크닉으로서의 기계적 균형과 결코 불협화음을 내지 않는다.


내가 갖고 있는 잠정적인 결론은 이렇다. 도구주의적 방송관과 기계적 균형의 논리적이고 역사적인 맥락을 교차시키면, ‘기계적 균형은 관영방송의 보도 테크닉’이라는 일반화가 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현실에 대해 적극적으로 정확하게 인식하든 날탕으로 인식하든 기계적 균형이라는 보도 테크닉을 적용하면, 그 결과는 자신에게 유리하냐 불리하냐가 유일한 잣대인 집권세력에 결코 불리하지 않기 마련이다. 공교롭게도 그리고 흥미롭게도, KBS와 MBC의 시사 프로그램들과 동일하게 탐사 추적을 해왔지만, 상대적으로 ‘정치’와 거리가 먼 것처럼 느낄 수 있는 소프트한 시사 문제를 다뤄온 SBS의 시사 프로그램들에 대해서는 한나라당이 축소하라거나 폐지하라 말들을 거의 하지 않는 것과 비슷한 효과라고나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