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고 치는 고스톱’이 판친다

[시론] ‘짜고 치는 고스톱’이 판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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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면 1] 최근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던 검찰이 시끄럽다. 총장과 중수부장의 끝장 싸움에 이어 차기 정부 개혁 대상 0순위인 검찰이 ‘가짜 검찰 개혁론’을 주장하던 검사의 볼썽사나운 사퇴로 점입가경에 빠져들고 있다. 특히 내부 통신망에 ‘검찰이 개혁되어야 한다’는 자성의 글을 올려 주목을 받았던 한 검사가 “언론이 촉각을 세울 수 있게 일선 검사들이 개혁을 요구하고 총장님이 큰 결단을 내리는 모양새를 갖춰야 한다.”는 문자 메시지를 실수로 방송사 기자에게 보내 결국 사퇴한 것은 ‘짜고 치는 고스톱’의 결정판이라 불려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장면 2] 여기에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의 단독 TV 토론회도 ‘짜고치는 고스톱’ 논란에서 벗어날 수 없다. 단독으로 토론회를 개최한다는 발상부터 상당히 괴이한 전례를 남긴 이 행사는 본격적인 토론회가 시작되기도 전에 질문지 유출 및 패널 선정 과정에서의 의혹, 그리고 사회자의 편향적인 진행으로 구설수에 올랐다. 그러자 민주통합당은 논평을 내고 박근혜 후보가 국민 면접을 본다는 콘셉트로 꾸며진 이번 단독 TV 토론회를 ‘짜고 치는 고스톱’이라고 맹비난하고 나섰다. 물론 새누리당 관계자는 “말도 안 되는 비판이다”고 반발하고 있다.

 

 

 

‘짜고 치는 고스톱’이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흔히 막후에서 일을 진행하고는 나중에 ‘이리이리 일이 진행되었으니, 그렇게 알라’는 말로 교묘한 의견합일을 이끌어 냈다는 생색을 내는 것을 뜻한다. 그리고 지금, 이 시끄러운 세상에 ‘짜고 치는 고스톱’은 소위 자기 세상을 만났다. 위에서 소개한 두 개의 장면은 현재의 미묘한 정치 지형을 반영한 바로미터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위 두 개의 장면 모두 진짜 ‘짜고 치는 고스톱’의 확실한 사례라고 보기에는 어렵다. 검찰의 경우는 그럴 확률이 농후하다고 해도 박 후보의 TV 토론회 자체를 짜고 치는 고스톱이라고 폄훼하기에는 지나친 정치적 편향성에 빠져들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의 상황에서 이 짜고 치는 고스톱이 실질적인 현실의 위협으로 다가오고 있기에 섬뜩함을 금할 수 없다. 특히 많은 사람들이 쉽게 간과하는 부분에서 짜고 치는 고스톱은 더욱 기승을 부린다. 감시하는 사람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바로 미디어 플랫폼 분야다.

지금은 디지털 전환 정국이다. 1980년대 흑백 TV에서 컬러 TV로의 미디어 진화가 이루어 진 것을 ‘패러다임의 대격변’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면, 지금의 2012년도 아날로그 방송에서 디지털 방송으로의 발전이라는 점에서 1980년의 대격변과 맞먹는 엄청난 변화의 전환점인 것이다. 하지만 파열음이 지나치다. 아니, 지나치다 못해 절망적이다.

 

   
 

최근 방송통신위원회는 전국의 디지털 커버리지를 99.2%라고 발표하며 다가오는 디지털 전환 정국을 무난하게 넘길 수 있다는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그러나 이것이 과연 자랑할만한 일일까? 현재 대한민국의 직접수신율은 현저히 떨어진 상황이다. 그리고 이 상황에 대한 책임은 분명히 지상파 방송사에도 있다. 그런 이유로 지상파 방송사는 이번 디지털 전환 정국을 맞아 지상파 다채널 서비스 및 기타 방송용 필수 주파수 확보를 통한 난시청 해소 및 올바른 디지털 수신 환경을 구축하겠다는 로드맵을 구축했다. 여기에 공시청 설비를 통한 디지털 환경 구축도 포함된다. 문제가 없다. 직접수신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그러한 환경을 마련하겠다는 뜻 아닌가. 물론 사람의 취향은 다양하기에 자신이 원해서 유료 방송을 돈 내고 시청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하지만 무료보편의 직접수신을 원하는 사람에게는 그러한 인프라를 구축해 주는 것이 이치에 맞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방통위는 난색을 표하고 있다. 동시에 직접수신율을 끌어올리는 방안에는 철저히 지상파 방송사의 책임을 강조하는 한편, 전방위적인 유료 방송 지원을 준비하고 있어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클리어쾀 TV 업계 자율화 승인이 그 대표적인 사례다. 이렇게 방통위는 지상파 직접수신 환경을 위한 최소한의 인프라 구축보다는 유료 방송에 대한 지원을 강화해 ‘돈을 내더라도 TV만 볼 수 있게 하는’방법만 구상하고 있다.

 

   
 

바로 여기서 ‘짜고 치는 고스톱’의 냄새가 진하게 난다. 납득할 수 없는 상태가 지속되면 음지에서 벌어지는 뒷말들을 의심해야 하는 것 아닌가. 여기서 방통위-유료 방송-가전업체의 삼각 연합이 집중적인 의심을 받고 있다. 방통위의 정책 추진은 누가 보더라도 유료 방송의 수혜적 모델과 닮아있다. 그리고 당연히 디지털 TV를 판매하는 가전업체의 이익이 늘어난다는 것도 불 보듯 뻔하다.

물론 비약일 수도 있다. 하지만 한국방송기술인연합회가 28일 서울 세종로 방통위 앞에서 주관했던 기자회견에서도 명백히 드러났듯이, 현재의 방통위는 유료 방송의 우월적 지위를 인정하고 더 나아가 가전업체의 무조건적인 이득만 보장하는 정책 추진을 천명한 상태다. 물론 여기에 대해 방통위도 할 말은 있다. “실질적인 미디어 플랫폼 비율에 있어 유료 방송이 90%를 차지하는 현재의 상황을 고려했을 때, 블랙아웃은 막아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물론 일리는 있다. 하지만 여기에는 무료보편을 추구하는 정부부처의 진정한 자세가 결여되어 있다. 정부가 포기하지 말아야 하는 가치가 있는 법이다. 그런데 현재의 방통위는 그러한 공공의 가치를 너무 쉽게 무시하고 가장 편한 길로만 가려고 한다.

 

   
 

짜고 치는 고스톱이라고 의심받을 이유가 명백하다. ‘편리하게 욕 안 먹을 정도로 저급의 TV 시청권만 보장하려는 방통위’와 ‘디지털 전환을 기회로 한 몫 챙기려는 유료 방송’. 여기에 ‘산업의 선순환 구조를 무시하고 오로지 디지털 TV 판매 수익만 몰두하는’ 가전업체의 삼각 연합은 그 자체로도 비난의 여지가 다분하다. 하지만 의외로 이를 향한 비난의 목소리가 크지는 않다. 왜일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아마 관계자를 제외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잘 몰라서 그러는 것이 아닐까? 그것도 아니면 방송용 필수 주파수의 할당을 밀실 처리한 방통위와 통신사의 밀월 경험 등 비슷한 경험이 너무 많아서?

여기서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 삼각 연합의 교묘한 논리 개진 능력을 반드시 통찰해야 한다는 것에 있겠다. 이들은 자신들의 주장을 위해 역설적으로 국민의 이익을 주장하고 나선다. 하지만 그 이론은 조금만 들여다봐도 취약하다. 유료 방송 중 케이블 업체의 목소리를 들어보자. 이들은 지상파의 의무재송신 확대를 주장할 때는 ‘지상파가 무료 보편의 가치를 추구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다가도 지상파 방송사가 ‘무료 보편의 가치를 추구하겠다. 지상파 다채널 서비스를 하겠다’라고 하면 지상파 방송의 영향력 확대를 우려한다고 나서는 판국이다. 더 재미있는 것은 ‘의무재송신 확대’에 대해 케이블 업체는 2000년대 초반 지상파의 영향력 확대를 이유로 반대한 전적이 있다는 것이다. 가전업체는 어떤가. 이들은 3D 산업이 한창 부흥할 때, 3DTV를 판매해 수익을 올리는 것에만 급급했지 해당 산업의 발전에 대해서는 침묵했던 경험이 있다. 가까운 일본의 방송사-제조사 컨소시엄 사례를 복기해보면, 상당히 씁쓸한 대목이다.

 

디지털 전환 정국, 더 이상의 ‘짜고 치는 고스톱’은 있어서 않된다. 최소한, 그런 의심은 받지 말아야 하는 것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