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자료로 20년 전 논리를 펴는 이상한 세미나

[사설] 2년 전 자료로 20년 전 논리를 펴는 이상한 세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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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파 디지털방송 재송신과 관련한 지상파방송 3사(KBS, MBC, SBS)와 케이블TV 사이의 2년 여에 걸친 분쟁이 8월 25일이면 일단락될 것으로 보인다. 그 날은 케이블TV MSO(복수종합유선방송사업자) 5개사에 대해 지상파방송 3사가 제출한 민사본안소송 1심 판결이 선고되기 때문이다.

 

지상파방송 3사와 MSO 5개사 대표들은 2008년 9월부터 한달 동안 지상파 디지털방송 재송신에 대한 저작권료 지불 건을 협상했지만 MSO 대표들이 협의내용 비공개 원칙을 파기하고 상황을 여론전으로 변질시켜 협상이 결렬됐다. 이에 2009년 9월 7일 지상파 방송 3사는 지상파 채널 불법 재송신 행위에 대해 저작권법 위반 혐의로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 MSO 5개사를 형사고소하고, 민사 본안 소송을 제기한 바 있다.

그러나 지상파 방송사들이 소송을 제기한 이후에도 케이블TV 진영은 진지한 논의에 나서기보다 다양한 억지주장을 펼치며 사안의 본질을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다. 그 중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최근에 한국케이블TV방송협회의 후원으로 열린 ‘디지털 전환시대의 보편적 시청권, 어떻게 보장할 것인가?’라는 세미나이다.

 

세미나에서는 ‘지상파 디지털방송 수신환경 실태조사 보고서’라는 자료가 매우 비중 있게 다뤄졌고, 세미나 이후 여러 매체에서 위의 보고서를 기초로 기사를 작성해 보도했다. 더구나 최근 발행된 한국케이블TV방송협회보 194호(이하 ‘협회보’)에서는 이 날의 세미나와 발표된 자료를 인용해 현재의 지상파 디지털 수신환경이 매우 부실한 상태이고, 케이블TV가 없으면 앞으로 지상파 디지털TV를 수신이 무척 어려울 것처럼 묘사하고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위의 자료가 2006년과 2008년에 방송통신위원회가 작성한 보고서의 재분석 자료라는 사실이다. 우선 자료 자체가 적게는 2년, 많게는 4년이나 지났다는 것이 문제다. 2007년 이후에 새로 지어진 아파트의 경우, 지상파 직접 수신 설비는 의무적으로 구축된 상태이고, 주택관리법에 따라 2008년 11월부터 모든 공동주택은 5년 내에 공시청설비를 의무적으로 개보수해야 하도록 되어있기 때문이다. 이 세미나에서 제시된 자료는 현시점에서는 전혀 신뢰성이 없는 정보가 된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위의 내용이 실린 협회보가 지상파의 디지털 전환이 직접수신 환경을 얼마나 획기적으로 개선시키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고, 케이블TV가 난시청을 해소하는 절대적 역할을 맡고 있는 것으로 주장하면서 시청자들에게 잘못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헌법재판소는 지상파 방송의 의무재송신 규정에 대한 위헌성을 판단하면서 중계유선방송(Network Operator, NO)은 지상파방송의 난시청 지역 해소 기능을 하는 매체로, 종합유선방송(System Operator, SO) 즉, 현재의 케이블방송은 다채널 방송으로서 매체 존립의 근거를 도출한 바 있다. 따라서 케이블TV의 지상파 재송신이 수신보조 행위라는 케이블TV 진영의 주장은 난시청 해소를 주요 기능으로 했던 초기의 중계유선방송이나 공동주택 시청자들의 공동 안테나 시설에는 적용할 수 있어도, 현재 다채널방송을 제공하면서 영리적 목적으로 지상파방송과 경쟁하는 종합유선방송에게 적용하는 것은 억지이다.

 

또, 협회보에 따르면 “미국은 아예 보편적 시청권 규정(Anti-Siphoning)이 위헌으로 판결을 받아 존재하지 않는 개념”이라고 밝히고 있다. 시청권 규정이란 ‘스포츠 중계 등의 이벤트 등을 일부 유료방송이 독점하는 상황을 막고 지상파 방송사의 보편적 방송서비스를 인정하는 규정’이다. 따라서 미국에 보편적 시청권 규정이 없다는 사실은 유료방송이 특정 프로그램을 독점할 수 있다는 의미가 되므로, 보편적 시청권을 논하는 케이블TV 진영이 이를 거론하는 일은 차라리 자살골에 가깝다.

 

문제는 또 있다. 케이블TV는 세미나와 협회보를 통해 스스로 ‘보편적 시청권을 보장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지상파가 말하는 ‘무료 보편적 서비스’에서 ‘무료’라는 말만 빼고 ‘보편적 서비스’라는 개념을 급조한 것이다. 근본적으로 케이블TV는 선택적 유료방송이다. 세금을 제외하고, 유료이면서 보편적인 서비스라는 개념은 모순에 지나지 않는다.

 

미국은 올해 초 지상파 방송사인 FOX와 케이블채널인 Time-Wanner가 재송신비용을 가입자당 50~60센트 수준에서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지상파 방송이 킬러 콘텐츠로 인식되는 프랑스는 케이블TV가 지상파 방송에게 일정한 재송신 비용을 지불하고 있다. 이처럼 공영방송에 대해서는 재송신을 허용 혹은 강제하되 그 외의 경우는 적절한 재송신 대가를 지불하는 것이 세계적인 추세다. 더구나 최근 수년간 국내외의 저작권 보호 풍토는 더욱 공고해지고 있고, 앞으로 방송영상 산업전체가 콘텐츠 기반으로 더욱 발전하기를 목표로 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따라서 케이블TV가 지상파 디지털방송을 재송신하고 그에 적절한 대가를 지불하는 것은 공정한 방송영상산업 풍토를 조성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해결해야할 과제이다. 케이블TV협회는 스스로 지상파 방송과 공생하는 방법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고민하고, 보편적인 서비스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 시청자들에게 솔직하게 고백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