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파수 회수·재배치보다 현장의 수요파악이 우선이다

[사설] 주파수 회수·재배치보다 현장의 수요파악이 우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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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해 6월 전파법이 개정되면서 방송통신위원회는 올해 중에 주파수 경매제를 시행할 전망이다. 또, 방통위는 아날로그 TV방송에 사용되던 주파수(698~752MHz) 및 DTV 전환용 임시주파수(752~806MHz)를 회수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방통위가 아날로그TV 주파수 회수의 근거로 삼고 있는 것은 지난 2008년에 전파연구소 및 ETRI 등과 함께 작성한 ‘디지털 TV 채널배치안’이다. 이 내용에 따라 방통위는 보조국을 포함한 전국 DTV 방송국의 채널배치가 14~51채널(470~698MHz, 총 228MHz)만으로 가능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이 연구결과는 도상검토 및 시뮬레이션을 통해서 이끌어낸 결과로, 지형지물 및 현장상황 등은 고려되지 않은 것이다. ‘디지털 TV 채널배치안’이 발표됐을 당시, 지상파 방송사들은 자체적인 연구결과 등을 공개하며 “현장 조사를 실시해서 지상파 방송에 필요한 주파수 수요를 더욱 정확하게 파악해야 한다”고 요구해왔으나 방통위는 몇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현장조사는 물론 추가적인 수요파악에도 나설 기미를 보이지 않는 상황이다.

 

주파수 수요를 확인하기 위해 현장 조사를 꼭 실시해야하는 가장 큰 이유는 DTV 송신망을 구축함으로써 실제 방송 주파수 사용량이 줄어드는지 검증할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방통위는 이미 주파수 회수를 실시하고 있는 미국의 경우를 참고해서 국내 주파수 정책에 적용하려고 하지만, 우리나라는 미국과는 지형·인구·밀집도 등에서 큰 차이가 있다. 비록 미국과 동일한 MFN(Multiple Frequency Network) 방식을 사용하지만, 우리나라는 방송구역이 권역별로 많고 구역간 이격거리가 짧아 채널간 혼신을 피하기 위해서는 주파수 소요가 많아질 수밖에 없다.

또, 현재 난시청을 겪고 있는 수신가구의 불편을 해소하는 것도 주파수 재배치에 앞서 고려되어야 할 사항이다. 우리나라는 산악지형이 많은데다가 주거환경도 아파트와 단독주택 등이 혼재돼있어 아날로그 TV 환경에서는 난시청을 호소하는 가구가 많다. 디지털 TV로 전환하면서 과거의 난시청을 완전히 해소하기 위해서는 소출력 중계기 등을 활용해야 하기에 방송용 주파수를 충분히 보유하고 있어야만 한다.

 

미국의 사례에서도 알 수 있듯이 회수된 아날로그 TV 주파수는 주로 통신사들이 낙찰 받아서 유료 통신서비스 시장에 사용된다. 이동 및 전달 특성이 좋은 700MHz 주파수 대역이 경제적으로 활용할 가치가 크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이전에 주파수는 기본적으로 한정적인 공공의 자산이라는 것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디지털 전환을 통해 주파수를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목적이라면, 지상파 방송이라는 무료 보편적 서비스를 전달하는 도구로서의 역할을 보완하는데 우선적으로 사용해야 할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해 말 지상파 방송4사가 공동으로 수신환경개선사업을 벌이기로 한 것은 무척 고무적이다. 아파트 등 공동주택의 공시청 설비를 보수·확충하는 것이 이 사업의 주요활동이지만, 1천 가구에 달하는 수신처의 수신 상태를 현장에서 직접 확인하면서 DTV 주파수 수요를 함께 점검해볼 수 있는 다시없는 기회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아랫돌 빼서 윗돌로 괼 수 없듯이, 모든 일에는 합리적인 순서가 있는 법이다. 주파수 회수·재배치 정책 역시 장기적인 계획으로 현실적인 주파수 수요를 산정하고, 그 후에 주파수 회수 재배치를 시행하더라도 늦지 않다. 오히려 그것이 합리적인 정책집행 방법이다. 지금처럼 성급하게 주파수를 회수해 버리면, 디지털 전환을 통해 수신환경을 획기적으로 개선하려는 기본적인 목적을 달성하는 것조차 큰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결과는 고스란히 시청자들의 불편으로 이어질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