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마저 빼앗긴 대한민국 주권자

[사설] 영혼마저 빼앗긴 대한민국 주권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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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일 경찰은 최상재 언론노조 위원장과 박석운 민언련 공동대표를 집시법 위반 혐의로 강제연행했다. 이들은 국회의 불법과 탈법적 미디어법 처리와 헌법재판소의 기회주의적 판결의 부당성을 항의하기 위해 프레스센터 앞에서 단식농성을 벌이고 있었다. 지난 5일에는 최상재위원장 혼자 단식농성을 하던 중에 경찰이 불법집회라며 판넬 등의 물품을 전부 압수해가더니 단식농성 참여자가 늘어나자 급기야 사람까지 연행해 간 것이다.

 

작년에 정권이 교체되면서 시작된 한나라당과 정권의 언론자유 말살 음모는 최소한 표현의 자유와 양심마저도 짓밟고 있다. 미디어법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판결은 명백한 위법행위가 있었고, 국회의원의 심의의결권이 침해되었다는 것이다. 어떠한 행위도 위법한 절차나 행위에 의한 결과는 합법성을 가지지 못한다. 따라서 미디어법 자체는 법으로서 효력과 가치가 전혀 없는 것이다. 하지만 헌법재판소는 법적효력에 대해 분명한 판결을 내리지 않음으로써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 법을 제정하고 집행을 감시하는 국회라면 헌법재판소가 기회주의적 판단과 국회의 입법권을 존중하는 의미에서 미디어법의 효력에 대해 입장을 회피했다고 해도 위법성이 명백히 드러난 미디어법을 당연히 폐기해야함에도 한나라당과 정부는 지금까지 여러 사안을 강압적으로 처리해왔던 것처럼 법의 유효성을 주장하고 있다. 명백하게 하자가 드러난 절차와 그 결과물에 항거하는 작은 목소리마저 철저히 봉쇄하고 있는 것이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민주주의는 모든 권리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국민주권의 논리가 핵심이다. 주권자인 국민 개개인이 자율적 의사로 지도자를 선정하는 것이고, 선거를 통해 지도자를 선택하는 것으로부터 주권재민의 정신은 구현된다. 결국 선거를 통해 다수 국민들의 지지를 얻는 자가 지도자가 것이다. 즉 민주주의의 핵심은 선거이다. 하지만 국민의 선택 행위는 복수에서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된다는 것이 민주주의의 가장 큰 문제점이라고 할 수 있다. 군사독재 정권을 지나면서 온갖 역경을 딛고 선택을 통해 소중히 가꾸어 온 우리의 민주주의가 정권교체와 함께 무너져 내리는 모습을 보면서, 억장이 무너져도 말도 제대로 할 수 없는 현실을 보면서, 우리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치고, 기성세대를 보면서 무엇을 배우라고 얘기할 수 있을까. 한 번의 선택으로 그동안 지켜온 모든 가치들이 뒤집히고 쓰러져 가고 있는 세상을 보면 영혼 없는 주권자로 전락되고 있다는 것을 보게 된다. 지금까지 지켜본 고위공직자 인사청문회를 보면 한번 시작한 거짓말이 또 다른 거짓말을 낳고, 결국엔 자기부정까지 하는 일들도 왕왕 있었다. 하지만 끝까지 꿋꿋하게 버텼고, 드러난 도덕성은 한낱 해프닝으로 치부되어 공직에 임명되는 것을 지루하게도 볼 수밖에 없었다. 주권자의 선택에 의한 지도자, 그 지도자에 의해 임명되는 공직자들이 대한민국 주권자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들은 단 한가지뿐인 것 같다. 주권자들에게 선택을 강요하면서 약속했던 공약들도 허무한 개그로 끝내고, 새로운 개그 세상으로 갈 것을 강압하는 것뿐이다.

 

잘못된 결정이라면 더 늦기 전에 바로잡아야 한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이 정치이고, 결과물이 절차적 민주주의의 산물이라고 할지라도 잘못된 것은 잘못된 것일 뿐이다. 잘못된 결과물인 미디어법도 당장 바로 잡아야 하고, 불법적으로 강행했던 한나라당도 잘못한 것이고, 잘못된 결과를 보고 잘못했다고 말하지 않은 헌법재판소도 잘못한 것이다. 모든 것이 잘못된 것으로 채워지고 있는 사회이기에 단식을 하면서까지 잘못됨을 꾸짖고 말하는 사람을 강제로 연행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