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리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

[사설] 때리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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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9일과 30일, MBC와 SBS는 각각 오는 13일과 25일을 기해 KT스카이라이프로 제공되던 HD방송 송출을 중단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두 방송사가 문제의 원인으로 지목한 것은 KT스카이라이프 측의 계약불이행, 2009년 이후 2년여에 걸쳐 양사 HD방송을 재송신하는 비용을 지불하지 않았고 있다는 이유를 들었다. KT스카이라이프는 ‘케이블SO가 지상파에 재송신 비용을 지불하고 있지 않은 상황에서 최혜대우조항(타사와의 거래조건과 비교해 동등조건을 유지할 것)을 침해당했다’는 입장이다.
MBC와 KT스카이라이프의 경우에는 지난 6일 열린 서울남부지법의 조정재판에서도 별다른 합의점을 찾지 못했고, SBS의 경우도 특별한 변수가 발생하지 않는 한 MBC의 전례를 그대로 따를 것이 분명해 보인다.

이번 사태를 두고 우리는 지난해 9월 케이블SO들이 지상파 재송신을 중단하고자 했던 상황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당시 케이블SO들은 지상파에 HD재송신 대가를 지불하라는 법원의 판결을 따르지 않고 시청자를 볼모 삼아 ‘지상파 무료 재송신’이라는 자신들의 입장을 관철하려는 억지를 부렸다. 거기다 방송통신위원회는 ‘지상파 재송신 제도개선전담반’이라는 허울 좋은 이름으로 오로지 케이블SO의 입맛에만 맞는 정책들을 개선안이라며 지상파가 수용할 것을 요구했다. 결국 케이블SO들은 기고만장하여 재송신 비용 소송에서도 베짱 놀음을 하는 상황까지 와 있다.
이런 상황에서 지금 KT스카이라이프가 MBC와 SBS에 HD송출 비용을 체불하는 상황은 케이블SO가 방통위를 등에 업고 오만방자한 태도를 보이는 모습을 흉내내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최혜대우’ 조항을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쌍방간에 체결한 계약을 이행하지 않는 KT스카이라이프의 대응이 과연 정당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주관적인 ‘해석’을 객관적인 ‘계약’에 앞선 판단 기준으로 삼는 것은 ‘억지’에 불과하다. 이는 법원의 ‘판결’을 무시하고 자신의 ‘입장’만을 실력으로 관철시키려 했던 케이블SO들과 똑같은 수준의 투정일 뿐이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그 투정을 받아주는 시누이가 있다는 사실이다.
방통위는 중립적인 위치에서 방송질서를 유지해야할 의무가 있는 국가기관이다. 그러나 지난 1기 방통위는 케이블SO들의 탈법적인 투정에 발벗고 나서서 ‘의무재송신 확대’라는 떡을 쥐어주려는 모습까지 보였다. ‘의무재송신은 일단 확대하고, 비용문제는 차후에 해결한다’는 조건은 ‘비용을 지불하던 말던 지상파는 유료방송에게 콘텐츠를 고스란히 제공해야 한다’는 불평등한 요구이다. 말로는 ‘시청자의 시청권을 지키기 위한 정책’이라지만 근본적으로 방송질서를 바로잡지 못하는 정책이기에 이는 미봉책일 뿐이다.
결국 이런 상황에서는 KT스카이라이프의 재송신 비용 체불과 같은 상황이 또 다시 벌어지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방통위가 KT스카이라이프와 지상파방송사 간의 사적계약에 끼어들어서는 안되지만, 적어도 케이블SO와의 재송신 분쟁에 있어서 객관적인 사실들(법원의 판결과 계약 사실)을 근거로 원칙적이고 공정한 판단을 해야 할 의무가 있다. 그것이 제3, 제4의 재송신 분쟁을 미연에 방지하는 하나의 방법이다.

지상파는 우리나라 방송산업의 뿌리를 이루는 매체로서 국민들에게 양질의 콘텐츠를 보편적으로 제공할 의무가 있다. 그러나 지상파가 이와 같은 의무를 차질없이 이행해 나가기 위해서는 우선 법적으로 보장된 권리를 수호받고, 불합리한 규정으로 인해 피해를 입지 않도록 보호돼야 한다. 이것은 무리한 요구도, 불필요한 혜택도 아닌 최소한의 권리행사다. 법과 계약을 통해 명백하게 누려야할 권리마저 지켜지지 못한다면 더 이상 지상파의 설 자리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