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파 UHD 표준안 부결, 2014 ITU 전권회의를 겨누나

[분석] 지상파 UHD 표준안 부결, 2014 ITU 전권회의를 겨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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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기술저널=최진홍) 지상파 UHD가 존폐의 기로에 섰다. 케이블 및 IPTV, 위성방송 등 유료방송 UHD 표준안이 100% 완료된 가운데 무료 보편적 뉴미디어 플랫폼의 ‘표준’은 논의조차 되지 못하고 좌초됐다.

7월 2일 한국정보통신기술협회(TTA)는 총회에 상정된 34개의 표준 후보안 중 지상파 UHD 표준안만 ‘주파수 수급 불안정성’을 이유로 부결시켰기 때문이다.

   
 

다양한 해석이 나오고 있다. 그 중에서 가장 설득력을 얻는 논리는 이번 TTA 총회의 결정이 ‘통신사의 700MHz 대역 주파수 할당 필요성을 위한 사전 포석’이라는 해석이다. 신빙성이 있다. TTA는 방송통신발전기본법 제34조에 따라 국내외 정보통신분야의 최신 기술 및 표준에 관한 각종 정보를 수집 및 연구하여 이를 보급하게 하며, 정보통신관련 표준화에 관한 업무를 효율적으로 추진하는 것을 ‘본업’으로 삼는다. 즉, 통신을 중심으로 놓고 전반적인 ICT 표준을 제정하는 미래창조과학부 산하 민간단체인 셈인데, 말 그대로 통신에 특화된 조직으로 이해된다.

실제로 TTA는 협회비에 따라 의결권을 부여하는데 KT가 100표, SKT가 77표, LG유플러스가 30표를 가지고 있다. 지상파 방송사는 4사 모두 합해서 5표다.

그렇기 때문에 TTA가 지상파 UHD 표준안을 ‘콕 집어’ 부결시킨 사례는 정치적이고 정무적인 판단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 통신사는 IPTV라는 미디어 플랫폼을 보유하고 있으며, 심지어 KT는 위성방송까지 가지고 있다. 이런 통신사들이 모여 구성된 TTA가 미디어 플랫폼 경쟁자인 지상파 방송의 UHD를 석연치 않은 이유로 가로막는 것은 어쩌면 당연할 수 있다. 게다가 현재 지상파는 실험방송 단계에 머물고 있는 UHD 상용화를 위해 브라질 월드컵 중계를 통한 기술력 제고와 더불어 700MHz 대역 주파수를 원하고 있는데, 통신사도 모바일 트래픽 해소를 이유로 해당 주파수를 간절히 원하고 있다.

여기서 그림이 그려진다. 통신사가 절대다수인 TTA 총회는 지상파 UHD 표준안을 부결시켜(심지어 표결까지 가지도 못했지만) 궁극적으로 지상파의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한편, 지상파 UHD의 전제조건인 700MHz 대역 주파수를 통신의 손아귀에 넣고자 하는 것이다. 물론 해당 주파수의 경매를 통해 세수 확보를 노리는 정부의 이해관계도 절묘하게 일치한다.

하지만 이번 TTA의 지상파 UHD 표준안 부결은 거대한 퍼즐의 한 조각일 뿐이다. 이미 정부와 통신사는 해당 주파수의 ‘완전할당’을 위해 차근차근 준비하고 있다.

   
 

현재 통신사들은 700MHz 대역 주파수 문제에 있어 유리한 상황이지만, 역설적으로 대의명분에 있어서는 수세로 몰려있다. 정부와 자본, 그리고 언론이라는 든든한 아군이 있지만 공익을 앞세운 방송과 시민사회단체의 맹공에 잔뜩 긴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통신은 700MHz 대역 주파수에 국가 재난망을 구축하는 방안을 기점으로 해당 주파수의 ‘국가 재난망+통신’을 주장했으나, 이마저도 700MHz 대역 주파수 상하위 40MHz 폭 통신 할당을 전제로 하는 모바일 광개토 플랜 2.0이 방통위원장 고시가 아니라고 반박하며 해당 주파수를 ‘국가 재난망+방송’으로 묶이는 공공대역으로 삼자는 방송의 논리에 당하고 있다.

이러한 통신의 수세는 최근 열린 통신학회 세미나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통신학회는 700MHz 대역 주파수의 통신 할당을 주장하며 이미 오래전 논리적 허구성이 드러난 해당 주파수 전세계 통신 활용설에만 매달리고 있다. 물론 모바일 트래픽 해소라는 당위성도 최근 통신사들의 무제한 데이터 요금제 출시 및 IPTV 사업 확충으로 타당성을 상실했다.

하지만 이런 순간이 오면 통신과 뜻을 함께하는 정부는 눈을 밖으로 돌리는 경향이 있다. 통신 주파수 할당의 당위성이 내부에서 격파당하면 ‘외부는 아니다!’고 주장하는 셈이다.

이런 무리수가 2012년 WRC(세계전파통신회의)-12 당시 구 방통위의 ‘헛발질 보도자료’ 파문을 일으켰다. 당시 구 방통위는 WRC-12에서 정식의제도 아닌, 심지어 방송 선진국인 유럽이 반대해 논의를 미루기로 한 ‘700MHz 대역 활용방안’을 자의적으로 해석해 마치 모든 나라가 해당 주파수를 통신에 할당하기로 했다는 보도자료를 언론사에 뿌렸다. 당연히 기본적인 사실관계 확인에 대한 의지가 없었던 국내 언론사들은 구 방통위의 잘못된 보도자료를 토씨 하나 틀리지 않게 받아썼고, 이는 지금까지도 ‘외교부의 CnK 주가조작 사건’과 더불어 두고두고 회자되는 정부의 ‘패착’으로 기억되고 있다.

하지만 ‘외부’에서 길을 찾는 것은 무리수라 할지라도 ‘여론전’에는 매력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TTA의 지상파 UHD 표준안 부결에 따른 700MHz 대역 주파수 활용 미설정, 혹은 통신 유력설이 추후 2014 ITU(국제전기통신연합) 전권회의와 연결될 가능성에 주목해야 한다. UN 산하 193개 ITU 회원국의 장차관급 대표단이 참석하는 2014 ITU 전권회의가 ‘미래창조과학부’ 주최로 올해 10월 부산에서 열리는데, TTA의 주요 사업 중 하나는 ITU, WRC를 위시한 국제표준화기구 및 회의의 지원 및 대응이다. TTA의 지상파 UHD 표준안이 부결되고 해당 주파수의 활용이 통신쪽으로 기운다면, 대한민국 미래부가 주최하는 2014 ITU 전권회의에서 이러한 부분이 더욱 탄력을 개연성이 충분하다.

이는 주파수 공동 연구반의 결과와 별도로 상당한 의미를 가질것이 분명하다.

게다가 WRC-12에서 700MHz 대역 주파수 활용에 대한 논의를 결정하지 못한 관계로, 다가오는 2015년 WRC-15에서 해당 주파수의 활용을 결정하기로 된 상태다. 만약 2014 ITU 전권회의에서 700MHz 대역 주파수 할당이 통신쪽으로 흐른다면, 유럽이 굳건하게 대응한다고 해도 WRC-15의 결과는 어떻게 될지 모른다.

그런 이유로 7월 2일 TTA의 지상파 UHD 표준안 부결은 700MHz 대역 주파수의 통신 활용을 위한 정지작업의 일환으로, 그리고 TTA와 2014 ITU 전권회의, WRC-15와 연계해 전선을 확장할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 대한민국은 정보통신부와(방송위원회) 방송통신위원회, 그리고 미래창조과학부와 방송통신위원회의 이원화 과정을 거치며 노골적인 통신 육성정책을 추진해 왔다. 이런 과정에서 통신재벌, 이른바 통신 마피아(통피아)가 등장하며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물론 통신기술은 일상생활에 있어 필수불가결한 도구지만, 통피아들은 사업 추진 중 발생한 이윤을 국민에게 환원하기보다는 자신들의 영향력 확대에 소모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그리고 이런 탐욕의 역사는 결국 공공의 재원인 700MHz 대역 주파수까지 미쳤고,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 정해진 시나리오를 완성하고 있다.

당장 ICT 표준을 정하는 TTA의 구성에 대한 논의를 벌이는 한편, 700MHz 대역 주파수를 둘러싼 냉정한 판단이 수반되어야 하는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