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통위, ITU 전권회의 시동..문제 없나

[분석 칼럼] 방통위, ITU 전권회의 시동..문제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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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일 방송통신위원회는 14층 대회의실에서 ‘2014 국제전기통신연합(ITU) 전권회의 준비기획단’ 출범식을 갖고, 2014년 10월 20일부터 11월 7일까지 3주 간 부산에서 개최되는 ‘2014 ITU 전권회의’의 본격적인 준비체제에 들어갔다. 이 날 출범식에는 이계철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을 비롯해 허남식 부산광역시장, KT 이석채 회장 등 ICT와 2014년 전권회의 개최지인 부산을 대표하는 민·관 주요인사 100여명이 참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이번 전권회의가 사실상 방통위의 ‘700 MHz 대역 주파수 통신 할당 로드맵을 완성하기 위한 준비단계가 아니냐’는 의혹의 눈길을 거두지 않고 있어 논란이 증폭되고 있다. 여기에는 지금까지 노골적인 친통신 행보를 보여온 방통위가 2014년 국내에서 열리는 전권회의를 이용해 방송용 필수 주파수를 통신에 할당하는 것을 기정사실화 만들려는 것이 아니냐는 의심이 깔려있다. 방통위와 부산광역시가 의기투합해 구성한 ‘전권회의 준비기획단 출범식’이 마냥 기쁘지만은 않은 이유다.

 

   
 

현재 700 MHz 대역 주파수는 디지털 전환 이후 확보 가능한 방송용 필수 주파수로 규정되어 있다. 이에 지상파 방송사는 난시청 해소 및 뉴미디어 발전 등 공공의 이익을 위한 용도로 해당 주파수의 할당을 지속적으로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방통위는 이를 묵살하고 데이터 트래픽 현상에 시달리는 통신사에 주파수를 추가 할당하기 위한 ‘모바일 광개토 플랜’을 발표하며 “통신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주파수 소요가 많아짐에 따라 추가 주파수를 통신사에 더 밀어주겠다”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는 당장 역풍을 맞았다. 지상파 방송사를 비롯한 많은 시민단체에서는 “데이터 트래픽 사태는 무제한 데이터 서비스를 남발하며 가입자 유치에 열을 올리던 통신사들의 원죄”라며 “공공의 이익으로 활용되어야 하는 주파수를 사적인 목적으로 움직이는 통신사에 무조건 몰아주는 것은 잘못된 정책 판단이다”고 주장한 것이다.

그러나 방통위는 이 같은 주장을 일축하며 방법상의 많은 문제를 노출했던 주파수 경매제를 강행했고, 뒤이어 당시 위원장이던 최시중 씨는 자신의 사임 일주일 전 디지털 전환 이후 확보 가능한 700MHz 대역 주파수를 통신사에 분할 할당하는 ‘악수’를 두었다. 여기에는 방통위가 정권 차원에서 육성한 종합편성채널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 통신사에 ‘종편 투자’를 요구했고, 이것이 받아들여지자 ‘보은’ 차원에서 주파수가 할당되었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오기도 했다.

 

   
 

동시에 상황은 더욱 급박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해당 주파수를 공익에 활용하겠다는 지상파 방송사와, 자사의 이윤을 극대화 하여 트래픽 감소를 위해 700MHz 대역 주파수는 물론 군 대역과 위성 DMB 용 주파수까지 모조리 쓰겠다는 통신사의 힘겨루기가 2012년이 되어도 치열하게 벌어진 것이다. 동시에 올해 초 WRC-12(세계전파통신회의)가 열리며 해당 주파수 논쟁은 다시 한번 수면위로 급부상했다. WRC-12는 많은 국가들이 모여 주파수 할당을 논하는 자리인데, 방통위는 이 자리에서 전 세계 각 나라의 회의 결과 700MHz 대역 주파수를 전 세계적으로 ‘통신’에 할당하기로 했다는 보도자료를 각 언론사에 배포한 것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국내 언론사는 최소한의 사실관계 확인 없이 이를 바탕으로 기사를 작성했으며 관련 논쟁은 순식간에 종료되는 듯 했다. 방통위의 보도자료에 따르면 대부분의 나라들은 700MHz 대역 주파수를 통신에서 활용하기로 결정되었으며, 이에 해당 주파수를 뉴미디어 및 난시청 해소로 활용하자는 지상파 진영의 논리는 힘을 잃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서 반전이 있었다. 이는 방통위의 철저한 ‘왜곡’이었던 것이다. 한국방송기술인연합회 정책실이 WRC-12 결과보고 자료를 입수해 면밀히 분석한 결과, 방통위가 주장한 것처럼 700MHz 대역 주파수는 통신 부분에 할당하기로 결정된 것이 아니며 심지어 정식 안건도 아니었음이 밝혀졌다. 물론 일부 아프리카 및 중도 국가들이 700MHz 대역 주파수를 통신에 활용하자고 긴급 제안을 하기는 했지만 대부분의 국가가 700MHz 대역 주파수를 방송에 활용하는 유럽 국가들의 반대에 부딪쳐 좌절되었다는 충격적인 소식도 접할 수 있었다. 이에 관련 논의는 2015년에 열리는 WRC-15에서 논의하기로 결정되었던 것이다. 물론 2015년이 되어도 ‘일부 아프리카 및 중동 국가의 700MHz 대역 주파수 통신 할당 주장’이 유럽 국가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관철될지도 의문이다. 이는 카메룬 다이아몬드 광산 보도자료를 배포한 외교부의 CNK 보도자료 사태와 함께 대표적인 정부의 언론 플레이로 기록되고 있다. 즉, 우호적인 여론을 형성하고자 정부가 왜곡된 자료를 배포한 대표적인 사례인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7월 4일, 방통위는 스위스 제네바에 위치한 ITU 본부를 방문해 이사회에 참여하면서 하마둔 뚜레(Hamadoun TOURE) ITU 사무총장과 면담했고, 아울러 우리나라의 2014년 ITU전권회의 준비상황을 개막식에서 발표했다. 2014년 부산 ITU 전권회의가 열리기 때문에 그 경과를 보고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동시에 전문가들은 부산 ITU 전권회의가 열리는 것 자체에는 커다란 반감이 없지만, 방통위가 2012년 초 ‘700MHz 대역 주파수 WRC-12 거짓 보도자료 유포 사태’를 벌이면서까지 해당 주파수를 통신에 모두 할당하는 것을 노렸던 전례가 있었던 만큼, 2014년 국내에서 열리는 ITU 회의를 통해 어떤 ‘반칙’을 저지를 지 촉각을 곤두세우기 시작했다. 여기에는 방통위가 700MHz 대역 주파수에 대해 제대로 확인되지 않는 사안을 들고 2014년 회의 전체를 호도할 가능성이 크다는 위기감에서 기인한다.

게다가 ITU는 UN 산하기구로서 WRC의 상급단체다. 그리고 ITU는 2014년 대한민국 부산에서 열린 회의를 통해 이듬해인 2015년에 열리는 WRC-15에 상당부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당연히 ITU에서 거론된 안건이 WRC-15에서 비중있게 논의될 확률이 크기 때문이다.

여기서 자연스럽게 다음과 같은 로드맵이 추측 가능하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주파수를 통신 기술에 몰아주려는 방통위는 700MHz 대역 주파수까지 지상파 무료 보편의 공공 서비스를 희생시키며 통신에 몰아주려고 한다. 그런데 거센 반발에 직면하자 2012년 초에 열린 WRC-12의 회의 결과를 왜곡하면서 여론전을 실시한다. 동시에 친통신 언론사를 비롯한 다양한 언로 플랫폼을 활용해 주장을 굳혀가기 시작한다. 하지만 여기에 대한 진실 규명 노력이 이루어지자 잠시 문제를 수면 아래로 숨긴 다음 2014년 부산에서 열리는 ITU 전권회의에 박차를 가한다. 그리고 해당 회의에서 700MHz 대역 주파수를 통신에 할당한다는 제언을 공식화한 다음 이듬해 열리는 WRC-15를 활용해 완전히 해당 주파수를 통신에 할당시키는 공론을 구축한다”..너무 음모론인가?

다른 이야기이지만 최근 여러모로 상당히 수상쩍은 ICT 대연합이라는 단체가 대한민국의 ICT 부흥을 위한다며 벌떼처럼 일어나고 있다. 물론, ICT에 종사하던 인력들이 ‘죽겠다’며 힘들어할 때는 뭐하다가 갑자기 정권 말이 되니까 옛 정보통신부 관료를 주축으로 이러한 단체를 만든 이유를 묻지는 않겠다. ICT는 분명 대한민국의 차세대 성장 동력임이 확실하기 때문에 그 순수한 동기만을 보고 일단 사태 추이를 살피는 것이 맞으리라. 하지만 방통위는 최소한 700MHz 대역 주파수 부분에서 미디어 공공성을 저버리고 그 숭고한 뜻을 파괴한 것은 물론, 이제는 아예 세계의 대세까지 거스르며 추악한 선전전에 올인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런데 갑자기 이 대목에서 지난 국정감사에서 지적된 방통위의 예산 과다 지적이 떠오르는 이유가 무엇일까. 방통위는 2014년 부산 ITU 전권회의 개최를 앞두고 2013년 67억2300만 원 예산을 신규 편성했고 이 가운데 14억4600만 원을 홍보비로 썼다고 한다. 또 방통위는 ‘홍보인쇄물·홍보동영상 제작’에 1억9600만 원, ‘홍보기획물 제작과TV·신문 등 매체 광고’ 5억6000만 원, ‘국내외 설명회 개최·홍보부스 운영’ 3억1300만 원, ‘웹사이트 제작과 SNS·온라인 서포터즈 운영’ 3억4700만 원을 지출할 계획이라고 한다. 무슨 홍보비가 그렇게 많이 소요되는지. 도대체 2014년 부산에서 무엇을 할 생각이길래…하지만 역시나 ICT 부흥이라는 대의를 위해 한 번 참아보고 지켜보겠다. 부디 63개 국 223개 회원사들이 채택한 ABU 서울선언문의 진정한 뜻을 되새기길 바라며, 2014 ITU 부산 전권회의가 ICT 전반은 물론 올바른 주파수 할당 논의의 장이 되길 기대해본다. 매우 불안하지만.

 

추신, 여담이지만 요즘 700MHz 대역 주파수가 전 세계적으로 통신에 대부분 할당되었다는 기사를 쓰는 기자들이 많은 것 같다. 둘 중 하나다. 거짓말을 하고 있거나 잘 못 알고 있거나. 미국에서는 해당 주파수 108MHz 폭 중 48MHz 폭을, 일본은 60MHz 폭만 통신에 쓰고 있으며 이마저도 유럽의 경우 해당 주파수를 방송용으로 할당해 대부분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