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파TV 볼 권리부터 되찾아 줘야

[방송기술인의 눈] 지상파TV 볼 권리부터 되찾아 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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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삼 수(EBS 정책팀 차장)

대뜸 “EBS만 볼 수는 없나요?”라고 묻는다. 알고 보면 아파트와 같은 공동주택에 사는 어린이를 둔 부모들이다. 아파트에 살면서 어쩔 수 없이 유선방송을 보게된 이후, 자극적이면서 현란한 화면을 과시하는 만화채널로부터 자녀들을 멀리하고 싶은데 뚜렷한 방법이 없다는 호소인 셈이다. 예전에는 EBS만 볼 수 있어서 안심이었는데 요즘은 왜 돈은 돈대로 내면서 이런 스트레스에 시달려야하느냐는 볼멘소리다.

그런 사람들에게 나는 “어린 자녀들을 ‘기피채널’로부터 그토록 멀리하고 싶다면 부모님이 얼마정도는 불편함을 감수할 수 있나요?”라고 되묻는다. 그럴 수 있다는 분들에게 나만의 요령을 알려준다.

“TV리모콘을 없애시면 됩니다.”라고. 텔레비전을 원하는 채널만 볼 수 있도록 수동으로 채널을 설정한 다음 과감히 TV리모콘을 없애버리는 방법이다. 채널을 전환하고 싶을 때마다 리모콘 대신 몸이 움직여야 하는 불편이 있지만, 자녀들에게 ‘안심채널’에서만 놀 수 있는 울타리를 만들어 줄 수 있다. 유료방송 탓에 TV리모콘은 무용지물이 되었지만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언제부터인가 유선방송이나 위성방송 등 유료형 방송서비스에 가입하지 않고서는 지상파방송을 보기 힘들어졌다. 우리나라 열집 가운데 여섯집이 상이 아파트와 같은 공동주택에 살고 있다. 지상파TV 시청권은 시청권대로 잃고, 내지 않아도 될 시청료를 부담하면서, 원하지 않는 채널을 보지 않기 위한 보이지 않는 전쟁을 치러야 하는 사람들이 그만큼 많다는 얘기다.

이제는 공동주택에 사는 분들에게 지상파TV를 무료로 볼 수 있는 권리, 유선방송을 안 볼 수 있는 권리를 되찾아주어야 할때이다. ‘유선방송이 활성화되지 못하면 어쩌나’하는 산업논리에 은근슬쩍 도둑질당한 지상파TV 시청 권리를 되돌려야할 책임은 공급자에게 있다. 정책당국과 지상파방송사가 공급자다. 정책당국은 ‘산업’을 앞세운 나머지 국민의‘권리’를 지키는데 소홀했고, 지상파방송사들은 ‘콘텐츠생산’에만 매달린 나머지 소비자이면서‘고객’인 시청자지원에 미흡했다. 저가공세를 무기로 유료방송들이 공동 주택의 지상파공시청선로를 봉쇄한 행위는 또 다른 뉴미디어인‘디지털TV’를 활성화하는 데에도 걸림돌이다. 공시청설비는 엄연한 지상파방송 수신을 위한 플랫폼이다. 다채널ㆍ고화질ㆍ고음질이라는 DTV의 매력을 시청자들이 무료로 누릴수 있는 본래 설치목적에 맞게 활용되어야 한다.

‘방송과 통신의 융합’기술 발달로 개념부터 다른 뉴미디어들이 출전을 준비 중이다. DTV와 지상파DMB를 제외한 거의 모든 뉴미디어는 유료방송을 전제로 한다. 불행히 뉴미디어에 진출하려는 상당수 기업들은 뉴미디어를 이용해서 시청자의‘문화복지’를 향상시키려는 생각보다는, 어떻게 하면 산업을 활성화하고 시청자들의 주머니를 열게 할 것인가에 몰두하고 있다. 막대한 자본이 투입되기에 그럴 수밖에 없다고 치자. 적어도정책당국이‘매체균형발전’‘, 뉴미디어 활성화’등의 그럴싸한 구호를 내세워‘지상파TV시청권’을 뒤로 밀쳐내는 것만은 막아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