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력이 기술력이다

[기술인이 사는 법] 체력이 기술력이다

1615

“네, 기술국의 김소라입니다.”

“수고하십니다. 엔지니어 좀 바꿔주세요.”

 

엔지니어라는 명함을 갖고 지내온 지도 벌써 2년. 햇수로 3년차라는 걸 생각하면 스스로도 시간 참 빠르다 느끼지만, 선배님들에겐 아직 여성 엔지니어가 낯선 모양이다. 그도 그럴 것이, 18년 간 남자들의 집단에 유례없는 불청객이 한 명 들어왔으니 적응하는데 시간이 걸리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아직도 콘솔 앞에 앉아 있으면 의아해 하는 방송 출연자들이 더러 있고, 프로듀서인 줄 알고 CD를 건네는 매니저들도 많지만, 지금은 오히려 이런 관심에 더욱 일할 맛이 난다고 하면 이해할까. 그만큼 여성 엔지니어는 보기 드문 존재이니까 말이다.

 

처음에 엔지니어는 고독한 남자의 삶이라고 생각했다. 여타의 직업과 근무 패턴이 다르다 보니 사람들과 함께하는 시간보다는 혼자 있는 시간이 더 많아지고, 주조정실의 시끄러운 기계 소리는 남자들에게 훨씬 어울린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 내가 기계 소음 가득한 방송엔지니어가 됐다. 그 탓에 MP3로 노래듣기를 좋아하던 나는 이어폰마저 멀리하며 조용한 곳을 찾아다니기도 하고, 흔한 말로 ‘멍 때리는’ 경우도 종종 있는데, 덕분에 서울이 참 시끄럽다는 것도 새삼 느끼게 됐다.

 

거기다 남자 선배님들은 모이면 축구며 족구며 당구, 야구 등 액티브한 공놀이를 즐기는데 공(球)과는 인연이 먼 나는 언제나 심판 아니면 깍두기 정도에 머물렀으니 뭔가 소외되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남자들의 삶(?)에 겁 없이 뛰어든 이상 멋지게 한바탕 놀아보려면 ‘이 정도쯤이야’ 하며 호기를 부리는 수밖에.

 

그래서 요즘에는 교대근무로 인해 피로해진 심신도 달랠 겸, 쉬는 날 아침이면 일찍 취미삼아 뒷산을 오르며 운동 신경을 기르고 있는 중이다. 예전엔 우스갯소리로 다시 내려올 것 왜 올라가느냐며 산에 오르길 꺼려했는데, 막상 부모님과 함께 몇 번 다니다 보니 조금이나마 등산 마니아들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처음엔 숨이 차서 산 중턱까지 밖에 다니지 못하고 내려올 땐 또 다리가 어찌나 후들거리던지… 하지만 역시 몸으로 하는 운동이 스트레스 해소에는 제격. 이제는 한결 몸도 가벼워지고 산행하는 요령도 생겼다.

 

이렇게 아침 일찍 운동을 하고 나면 왠지 모를 자신감도 생기고 마인드도 긍정적으로 변하고 하루도 길어지는 것 같다. 더구나 시끄러운 일상에서 벗어나 인공적인 소리가 아닌 자연의 소리를 들으니, ‘이래서 명상 음악이니 음악 치료니 하는 것들이 있는 거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도 날씨가 너무 덥거나 추울 때는 아마추어인 나로서 등산은 많이 버겁다. 그래서 여름엔 수영을, 겨울엔 요가를 하거나 집 앞 헬스장에 다니면서 노동에 지친 심신을 훈련(?)하고 있다.

 

뭐, 이쯤 되면 힘도 좀 붙었겠다 선배님들 사이에서 공놀이 하는 데에 큰 문제가 없지 않을까. 다음번 야유회 때는 ‘라디오 기술 팀 vs. TV 기술 팀’으로 나눠서 족구를 한 번 해 봐야겠다.

 

어쨌든 앞으로 들어올 여성 엔지니어 후배에게, 기술국에서 하나가 되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건 친화력일 수도 세심함과 성실함일 수도 있지만 짧은 경험상 무엇보다 필요한 건 바로 운동 신경과 체력이라고, 각자의 취향에 맞게 선호하는 운동을 하면서 심신을 다지라고 귀띔해주고 싶다. 그래야 언제 어떤 무리에서든 섞일 수 있고, 방송 엔지니어로서 특성화 된 업무를 잘 버텨낼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