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에서 분리된 라디오만의 규제 필요해”

“TV에서 분리된 라디오만의 규제 필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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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기술저널 백선하 전숙희 기자] 한물간 매체로 여겨졌던 라디오의 공익적 가치가 재조명을 받고 있는 가운데 라디오 매체 특성에 맞는 규제 개선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수년째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제자리만 맴돌던 라디오 규제 개선 논의가 이번 기회를 발판삼아 진전될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10월 7일 한국방송학회 주최로 열린 ‘라디오의 미래, 라디오 특별법 제정과 수신 확대의 필요성’ 세미나에 발제자로 나선 주재원 한동대 언론정보문화학부 교수는 “라디오가 지니는 청취형 미디어의 사회문화적 역할과 재난방송 역할 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며 “라디오의 공익적 기능 유지와 성장을 위해선 규제 완화와 동시에 라디오 진흥 기구의 설립, 라디오방송발전지원 특별법 제정 등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TV 나아가 스마트폰, 태블릿 PC 등 다양한 매체가 등장하면서 라디오는 잊혀진 매체로 여겨졌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디오는 아직까지 건재하며 오히려 실시간 라디오 방송 청취율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이에 대해 주 교수는 무료 보편적 서비스인 라디오의 미디어 가치에 초점을 맞춰 설명했다. 그는 “시각장애인과 노인 그리고 운전자나 영세 상공인 등 제한된 공간에서 서비스업이나 제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 라디오는 친구이자 교육자의 역할을 한다”며 “청취 문화를 형성하면서 다양한 장르의 프로그램을 무료로 제공하는 라디오의 가치와 역할은 결코 무시할 수 없다”고 말했다.

또한 라디오는 고정된 전기 장치 없이 최소한의 전력만으로도 전파의 직접 송수신이 가능하기 때문에 재난 대비 미디어로서 적합하다. 배터리 소모량이 최소화된 매체로 언제 어디서나 들을 수 있다는 점에서 재난 미디어로서의 부족함이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일본의 경우 지진 및 여진 관련 당시 재난 라디오 방송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 같은 미디어적 가치에도 불구하고 라디오의 재원 위기는 현재 심각한 상황이다.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코바코) 자료에 따르면 라디오 전체의 방송 사업 매출액은 2012년 3,386억 원에서 2013년 3,274억 원으로 전년 대비 112억 원 감소했다. 또한 광고 매출은 2012년 2,358억 원에서 2014년 2,039억 원으로 총 319억 원 줄어들었다.

주 교수는 “라디오는 TV에 비해 규모가 작고, 영향력이 미미함에도 불구하고 소유와 겸영 등의 문제에 있어 지상파방송이라는 범주에 묶여 TV와 동일한 수준의 엄격한 규제를 적용받고 있다”며 “라디오 시장을 포괄적인 지상파방송 영역에서 분리해 라디오만을 위한 새로운 시장 획정으로 평가 및 재허가를 실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TV와 다른 별도의 라디오 방송 규제가 필요하다는 주장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현재 라디오는 미디어 특성이 TV와 다름에도 불구하고 지상파 TV로 묶여 재허가, 편성, 광고 등에서 TV와 동일한 규제를 받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를 제외한 영국과 미국, 일본 등에서는 미디어 시장을 지상파 TV와 지상파 라디오, 일간 신문으로 구분하고 있다. 미디어 규제 틀에서 TV와 라디오가 분리되어 있는 것이다. 이에 최근 2~3년 전부터 학계를 중심으로 라디오만의 특성을 고려한 규제가 마련돼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주 교수의 주장도 이 같은 공감대의 연장선에 있다. 그는 규제 개선 이외에도 “라디오 진흥 기구 설립 및 라디오방송발전지원 특별법 제정이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RAB(Radio Advertising Bureau) 설립을 통해 라디오 산업을 제2의 전성기로 이끈 영국과 동일한 수준으로 진행하긴 힘들더라도 라디오 관련 정보를 총괄하는 기구 운영과 특별법을 통해 라디오 발전 계획을 장기적으로 수립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편 이날 세미나에서는 스마트폰의 라디오 FM 수신칩을 활성화시켜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현재 대다수의 스마트폰에는 FM 수신칩(FM 신호를 수신해 지상파 라디오를 들을 수 있게 해주는 칩)이 내장돼 있지만 비활성화돼 있어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

임재윤 MBC 미래방송연구소 차장은 “스마트폰에서 FM 라디오 수신이 가능한 경우 LTE 등 이동통신망이 끊어진 상황에서도 비행기 모드로 전환해 라디오를 들을 수 있고, 배터리 소모가 매우 작기 때문에 고립 상황에서도 오랜 시간 동안 재난 상황이나 생존 정보 등을 전달받을 수 있다”며 FM 수신칩을 무용지물로 만들지 말고 활성화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