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이 세상을 절망시키는 법

[칼럼] 방송이 세상을 절망시키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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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 유럽인들은, 특히 독일인들은 자신들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깨닫고는 경악하고 말았다. 무시무시한 전쟁과 파괴, 그리고 광기어린 살육에 이은 인종청소까지. 동시에 이들은 깨달았다. 고대 그리스 시절부터 이성과 합리성을 중심으로 하는 인본주의 가치관을 성립한 다음 로마제국을 거쳐 신성한 중세와 르네상스, 프랑스 혁명을 관통하며 쌓아올린 인간에 대한 기본적인 자부심을 모조리 자신들의 손으로 부정해 버렸다는 것을 말이다. 이에 유럽인들은 자신들이 한 행위에 대한 책임을 대신 뒤집어쓸 희생양이 필요해졌다. 광기어린 나치의 깃발아래 그 끝모를 탐욕에 동조했던 유럽인(독일인이 중심이 되어)들은 2차 세계대전이 종료된 직후 자신들의 실책을 대신 책임져야 할 대상을 찾아야했던 것이다. 이에 그들은 그 대상을 자신들의 적이었던 히틀러와 제3제국에 모조리 전가하고 말았다. 물론 그들은 그 자체만으로도 광기어린 전범은 맞다. 그러나 그 이상으로 유럽인들은 ‘히틀러=절대 악’이라는 공식을 편집증처럼 공유하며 자신들의 실수를 애써 지우려고 노력했다.

   
 

현재 대한민국은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당시 유럽과 꽤 비슷하다. 광기어린 ‘힘 있는 집단’과 그에 동조하는 ‘신봉자들’. 그리고 그 집단에 맞서 싸우는 ‘미약한 힘’. 물론 세상을 이분법적으로 나누는 것은 위험하지만 최소한 미디어 환경에 있어서 이러한 구분은 더욱 명확해지는 분위기다. 공정방송을 위한 염원의 불꽃이 타오르면 타오를수록 말이다.

최근 MBC의 농심 라면의 발암물질 최초 보도가 이슈다. MBC는 뉴스데스크를 통해 ‘농심 라면에 함유된 벤조피렌이 암을 유발할 수 있다’고 리포트하며 커다란 반향을 이끌었던 것이다. 동시에 보도를 접한 시민들도 난리가 났다. 당장 대대적인 라면 환불사태가 벌어지며 커다란 혼란속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이에 식품의약품안정청도 농심의 라면 일부를 폐기처분한다고 나섰으며 농심도 결국 회수조치를 내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다시 반전이 일어났다. 2008년 설립 이래 이형주 서울대 교수를 원장으로 하는 식품 비영리 단체인 한국식품안전연구원이 29일 의견서를 내고 "제품 회수에 나선것은 성급한 것"이라고 지적한 것이다. 이에 연구원은 해당 라면에서 검출된 벤조피렌이 비록 발암물질이긴 하지만 하루 평균 삼겹살로부터 섭취하는 양 (0.08㎍)의 1만6000분의 1에 불과하다고 전했다. 동시에 이들은 "이번 라면 스프에 소량 함유된 벤조피렌은 과학적 위해성평가 결과, 건강에 유해한 수준은 아니다”라며 “국가 식품안전 전문기관으로서 식약청의 위상을 확고히 하기 위해 과학적 위해 평가에 근거한 일관성 있고 전문적인 식품위해관리행정을 기대한다"고 전했다. MBC의 보도내용과 상이한 결과가 나온것이다. 게다가 외국에서도 시사하는 바가 큰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대만 정부 공인 검사기관인 ‘화요(華友) 기술연구소’가 현재 대만에서 유통 중인 농심 제품 3종(얼큰한 너구리, 순한 너구리, 신라면)에 대해 벤조피렌 검출 여부를 분석한 결과 “3종 모두 불검출 결과가 나왔다”고 발표했기 때문이다.
 

물론 이를 가지고 MBC가 가지는 언론의 공정성 전체를 비판할 수 없다. 어쩌면 이는 지극히 작은 사안으로 전체의 현안을 확대해석할 여지가 큰 ‘안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MBC의 보도 행태, 즉 안철수 대선 후보에 대한 검증되지 않은 악의적 보도와 정수장학회 및 PD 수첩 사태의 연장선상에서 볼 때 이번 농심 보도가 심각한 파국의 가능성을 내재한것은 확실하다.

2차 세계대전의 광풍 속에서 온 유럽이 그 열풍에 휩싸여 쓰러져 갈때에도,독일의 한스-조피 숄 남매와 같은 최소한의 양심은 분명히 그 생명을 이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 양심의 생명력이 광기의 열풍을 가로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런 이유로 결국 2차 세계대전이라는 비극이 찾아왔고, 유럽인들은 자신들의 손으로 쌓아올린 모든 신념이 무너지는 것을 목도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지금 대한민국의 미디어 환경은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의 폴란드 침공 즈음이라고 생각하면 되겠다. 전쟁 초기, 아직 사회에 대한 기본적인 믿음이 존재하는 바로 현재에 무언가 혁신적인 변화를 일으켜야 한다. 그것이 방송의 공정성을 위한 최소한의 길이다. 비록 거대한 힘을 신봉하는 광신도의 증오가 펄펄 끓고있다고 해도. 이분법적인 흑백논리의 함정에 기꺼이 자신을 내던지더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