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기술저널 백선하 기자] ‘밀실 논의’ 논란이 끊이지 않았던 KBS 조직개편안이 결국 통과됐다.
KBS 이사회는 5월 4일 오후 4시 서울 여의도 KBS 본관에서 임시 이사회를 열고 ‘직제 규정 개정(안)’, ‘인사 규정 개정(안)’, ‘개방형 직위 운영 규정 제정(안)’ 등을 수정 의결했다. 이날 야당 추천 이사들은 이번 조직개편안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내부 구성원들의 의견 수렴을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자 4인 전원 퇴장했다. 야당 추천 이사들이 퇴장했지만 조직개편안에 대한 표결은 그대로 진행됐고 결국 여당 추천 이사 7인 중 6인의 찬성으로 의결됐다. 이인호 이사장은 기권표를 던졌다.
이날 이사회를 통과한 조직개편안은 1실(전략기획실), 6본부(방송본부‧미래사업본부‧보도본부‧제작본부‧제작기술본부‧시청자본부), 2센터(네트워크센터‧라디오센터), 1사업부(드라마사업부)로 4월 18일 혁신추진단이 내놓은 안에서 일부 수정됐다. 방송사업본부에서 송출 업무가 빠지면서 방송본부로 이름이 변경됐고, 미래사업본부의 미래기술연구소는 기존 1부 2팀제에서 2부 5팀제로 확대됐다. 제작기술센터는 송출 업무가 추가되면서 제작기술본부로 바뀌었고, 송신망 구축 및 운영 업무만 남아 있던 네트워크본부는 네트워크센터로 변경됐다. 마지막으로 운영본부는 시청자본부로 바뀌면서 시설 관리부분이 추가됐지만 기존 조직 개편 방향성 자체가 달라지지는 않았다.
KBS 관계자는 “방통융합시대에 맞춰 KBS도 조직개편으로 변화를 추구해야 한다는 뜻에 공감하고 미래 미디어 산업에 대한 고민이 있었다는 점도 충분히 알고 있지만 내부 구성원들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지 못한 것은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밀실 개편 논란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전영일‧권태선‧김서중‧장주영 등 야당 추천 이사 4인은 5월 4일 성명서를 통해 “공영방송 KBS의 미래를 좌우할 조직개편안이 공영성에 대한 고려는 전혀 없고 오직 효율성이나 수익성만 강조했기 때문에 사내 구성원들의 의견을 좀 더 수렴하길 요구했으나 경영진은 구성원들의 합리적 요구 또는 비판을 진지하게 수렴하지 않았다”며 “심지어 이사회에서조차 우리들의 건설적인 제안에 귀를 기울이기보다는 무성의한 답변으로 일관했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이어 “공사 창립 이후 최대 조직 개편인데 민주적이고 공개적인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는 사실에 우려를 금할 수 없다”면서 “조직 개편으로 인해 우려되는 공영성의 훼손, 시청자의 신뢰 상실, 수익성 감소 등 모든 부작용에 대해 고대영 사장을 비롯한 경영진과 다수 이사들은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또한 공영성 훼손 문제도 꾸준히 지적될 것으로 보인다. 이번 개편안의 가장 큰 문제는 직종 중심에서 사업 프로세스 중심으로 조직을 개편하면서 수익 극대화를 강조했다는 점이다. 프로덕션 경쟁 체제 도입도 그중 하나다. KBS는 제작본부 산하에 TV 프로덕션 담당 그룹을 설치했다. 프로덕션 그룹은 내부 경쟁을 통해 방송본부의 제작투자담당그룹으로부터 투자를 유치해야 한다. 제작비 예산을 배정이 아닌 투자 개념으로 전환한 것이다. 혁신추진단은 “제작 투자 담당에 의한 투자 개념 도입으로 내부 관료주의를 타파하고 역량 분출의 기획을 확대하고자 한다”고 설명했지만 당장 돈이 되는 콘텐츠만을 생산하려고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는 “광고가 많이 붙고 시청률이 많이 나오는 프로그램 아니면 ‘투자’ 받을 꿈도 꾸지 말아야 할 판”이라며 “<추적60분> <시사기획 창> 등 시사 다큐 교양 프로그램들이 당장 직격탄을 맞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들은 또한 예능국의 경쟁력 저하를 우려했다. KBS 새노조는 “프로그램별 프로덕션들끼리 예산과 편성을 놓고 경쟁시키는 개편안은 기존 예능국의 협업을 붕괴시킬 것”이라며 “치열한 연예 기획사 상대 경쟁에서 KBS 전체 예능 프로그램을 대표해 협상할 컨트롤 타워가 없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들의 문제제기는 KBS가 공영방송이기 때문에 더 귀 기울여 들어야 한다. 공영방송은 수신료 중심의 재원 구조를 통해 경쟁에서 자유로운 공정하고 공익적인 콘텐츠를 제작해야 하는 방송사이기 때문이다.
야당 추천 이사들 역시 이 부분을 지적했다. 야당 추천 이사들은 “다수의 PD들이 제작 투자 담당의 선택을 받아 제작하는 하청 프로덕션에 소속되면 이들의 편성‧제작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보장할 수 없게 된다”며 “이는 방송법 제4조 ‘방송 편성의 자유와 독립’ 정신을 구현한 편성제작회의를 제작 투자 담당자들로 대체하는 것으로 자율성을 심히 침해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