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통신위, 면죄부 주는 교황

[조준상칼럼]방송통신위, 면죄부 주는 교황

1364

 

방송통신위, 면죄부 주는 교황
 

조준상/ 공공미디어연구소 부소장

‘채널이 줄었어요. 내가 즐겨보던 채널이 사라졌어요. 보고 싶으면 월 2만원 내고 디지털 케이블에 가입하래요. 이래도 되는 거예요.’

방송통신위원회가 입법예고한 방송법 시행령 개정안이 10월부터 발효할 경우, 수도권과 광역시에 거주하는 케이블 가입자들이 맞이하게 될 상황을 상상해 봤다. ‘허구’라고 하기가 어렵다. 입법예고된 시행령 개정안을 따져보면 합리적 추론(educated guess)이다.

현재 디지털 케이블 가입은 주로 수도권과 전국의 광역시를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 2007년 3월 42만7천명이던 디지털 케이블 가입자는 올해 5월 현재 131만9천명으로 증가했다. 이 가운데 수도권 가입자가 72%인 94만9천명이다. 14개월 동안 62만2천명이 늘었다. 반면 비수도권 가입자는 9만9600명에서 37만명으로 증가하는 데 그쳤다.

비수도권의 디지털 케이블 가입자를 살펴보면 흥미로운 결과가 나온다. 광역시 거주 가입자가 절반을 차지한다. 전체 광역시 가입자는 87만9천명(2008년 5월 기준)이다. 이 가운데 서울 62만4천명을 제외하면 25만5천명이 서울 이외의 광역시 가입자다. 여기서 인천 가입자 11만9천명을 빼면 13만6천명이 수도권 이외의 광역시 가입자에 해당된다. 비수도권 가입자가 37만명의 절반인 것이다. 디지털 케이블의 경우, 이미 알짜배기 방송권역에만 집중하는 ‘크림 스키밍’(cream-skimming)이 심각하게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디지털 케이블의 이런 현실에 방송법 시행령 개정안을 대입해 보자. 먼저 종합유선방송사업자(SO)의 시장점유율 기준을 방송권역에 관계없이 전체 케이블 가입가구의 3분의 1 이하로 완화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디지털 케이블에서 벌어지고 있는 크림 스키밍이 한층 더 심각해진다. 수도권과 광역시 위주로 디지털 케이블 가입자를 늘려도 전체 케이블 가입가구의 3분의 1만 넘지 않으면 문제될 게 없기 때문이다. 이와 동시에, MSO(Multi-SO)끼리는 인수합병을 통한 ‘돈 잔치’가 벌어진다. 이미 서울과 대구에 집중된 MSO인 큐릭스의 가입자당 인수가격이 100만원을 웃돈다는 얘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SO들은 돈 잔치를 하는 반면, 시청자들은 졸지에 3~4배의 시청료를 물게 된다. SO가 운영해야 할 채널 하한선을 70개에서 50개로 축소하는 방송법 시행령이 이를 가능하게 한다. 지금까지 시청자들은 케이블TV의 가장 비싼 아날로그 상품에 월 8천원 정도에 가입해 70개 채널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방송법 시행령이 발효하면 20개가 줄어들어 50개밖에 못 볼 수 있다.

문제는 이 줄어드는 채널들이 드라마나 스포츠, 영화 등 인기 채널일 가능성이 높다는 데 있다. SO들의 과거 행태에 비춰보면, 디지털 케이블 가입자를 늘리기 위해 인기 채널들을 아날로그 상품에 빼내 디지털 상품에 배치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들 채널은 영화채널 OCN이나 바둑, 골프 채널 등 MSP(Multi SO+PP)나 MPP의 계열 채널들뿐 아니라, 지상파 계열 채널을 포함한다. 이들 채널을 보려면, 월 2만원을 주고 디지털 케이블에 가입해야 한다.

지상파 계열 채널이 디지털 케이블 가입을 유도하는 상품으로 이용될 가능성은 충분하다. 방송법 시행형 제53조 제2항은 SO를 통해 송출되는 지상파 계열 채널의 수가 전체의 20%를 넘지 못하도록 돼 있다. 채널 하한선이 70개이면 최대 14개 채널까지 가능하지만, 50개로 줄면 10개로 줄어든다. 그런데 지상파 계열 채널은 재송신 채널을 제외하더라도 14개가 넘는다. 적어도 4~5개는 아날로그 상품에서 빠져나와 디지털 상품에 배치될 수밖에 없다. 모두가 인기 채널들이다.

많은 학자들이 SO의 평균 시청료가 너무 낮다고 지적한다. 유료방송시장 정상화를 위해 어느 정도 시청료를 올리는 것은 불가피하다고 설명한다. 동의할 수 있다. 하지만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전환하는 과도기에도 절제된 프로토콜은 있어야 한다. 한편에선 SO의 돈 잔치를 부추기고, 다른 한편에선 채널 축소를 통한 시청자 선택권의 박탈을 통해 시청료를 사실상 약탈하게끔 내버려두는 방식은 정말 곤란하다. 방통위는 거기에 면죄부를 주는 교황의 구실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