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파 방송에서 망을 떼어내면

[조준상칼럼]지상파 방송에서 망을 떼어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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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파 방송에서 망을 떼어내면

조준상/ 공공미디어연구소 부소장

한 달여 전쯤이었다. 한나라당의 한 유력 정치인이 송신공사 설립 얘기를 꺼냈다는 얘기가 귀에 들려왔다. 지난 11월 11일에는 정보통신정책연구원 주최로 열린 ‘공영방송규제기구 위상 및 역할’ 토론회에서 여권 성향의 한 학자가 공영방송위원회를 설립하고 그 산하에 송신공사를 두어 송출을 대행하도록 하고, 다른 지상파 방송도 원하는 경우 송출 업무를 대행할 수 있도록 하자는 제안이 있었다.

이런 움직임을 종합해 보면, 2007년 이재웅 당시 한나라당 의원이 한국방송기술공사(가칭)를 설립해 디지털 전환비용을 조달하고 별도의 수신료 인상 없이 디지털 전환을 추진하자는 의견을 제시한 이후, 송신공사 설립 논의가 현 정권에서 본격적으로 다시 제기되고 있는 모양이다. 쉽게 말해, 제작(송출 포함)과 송신 업무를 통합하고 있는 지상파 방송사에서 송신을 떼어내 송신공사란 별도의 조직이 맡게 한다는 논의가 정부여당 안에서 진행되고 있다는 얘기다.

송신공사 설립의 명분이야 효율성이겠지만, 이를 그대로 믿기는 어려워 보인다. 모든 정책에는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선의에서든지 악의에서든지 정치적 동기가 작동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송신공사 설립이 효율성을 보장한다는 주장은 경험적으로 설득력이 없기 때문이다. 경험적으로는, 주요 방송 3사들의 송·중계소가 대부분 무인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사정을 꼽을 수 있다. 또한, 2002년부터 디지털 전환 기존시설을 공동으로 사용해 비용을 최소화한다는 협정까지 맺고 있기도 하다.

물론, 송신공사가 지상파의 모든 송신 업무를 아우를 경우, 여기에 필요한 인력이 지금 전체 지상파 방송사의 송신 업무에 종사하는 인력보다 적을 수는 있겠지만, 이를 통해 절감할 수 있는 비용보다 그 과정에서 빚어지는 갈등 비용이 몇 배는 훨씬 더 클 게 불을 보듯 뻔하다. 송신 업무에 따르는 비용의 투명성을 높이겠다는 취지를 갖는다면, 조직 분리보다는 차라리 회계 분리를 하는 게 효율성 측면에서 훨씬 더 높다고 단언할 수 있다.
그렇다면 도대체 어떤 정치적 동기가 있는 것일까? 이재웅 전 의원의 제안에는 그나마 ‘수신료 인상 없는 디지털 전환’을 위해 송신 부문을 매각한다는 건전한(?) 발상이라도 있었던 듯하다. 하지만 지금 정부여당이 논의하는 송신공사 설립은 맥락이 전혀 다른 듯하다.

아마도 이 전 의원은 영국 BBC의 사례를 참조했을 것이다. BBC는 디지털 전환 비용 조달 차원에서 1997년 2월 국내 서비스 망과 해외서비스 망을 미국 기업 캐슬 타워에 매각했다. 매각 대금은 2억5천만파운드였다. 이 중 국내 서비스 망 매각대금은 디지털 전환 투자에 쓰였고, 나머지는 국고로 귀속됐다. 그리고 캐슬 타워는 2004년 6월 BBC로부터 매입한 망을 4배 이상 튀겨서 11억 3천만 파운드에 다른 기업에 팔아넘겼다.

그래서 뭐 어쨌냐고 할 수 있다. BBC는 디지털 전환에 매각 대금을 투자했고, 송신 업무를 위탁해 아무런 문제없이 방송사를 운영하고 있지 않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하지만 모르는 말씀이다. 1998년 한 해 동안 BBC가 송신 대행 수수료로 캐슬 타워에 준 액수가 무려 5천만 파운드에 이른다. 10년의 대행 계약기간을 따지면 5억 파운드에 이르는 셈이다. 매각 수입의 두 배가 넘는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BBC는 송신 자산 매각을 선택했다. 말 못할 사정도 작용했을 테지만, 주요한 이유의 하나는 BBC의 무료 다채널을 보장하는 주파수 정책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와 달리, 현재 정부여당의 송신공사 설립 논의는 주파수 허가를 받는 주체를 아예 지상파 방송에서 송신공사로 바꾸는 것을 겨냥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방송통신위원회가 추진하는 주파수 회수·재배치 계획과 긴밀히 맞물려 있음을 지울 수 없다. 방송통신위가 입법예고한 ‘방송통신발전에 관한 기본법’에서 방송이 아예 실종된 것도 이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현행 전파법에 따르면, 방송과 방송국은 ‘무선국’과 ‘송신’을 기준으로 각각 ‘공중에게 신호를 송신하는 행위’와 ‘공중에게 신호를 송신하는 무선국’으로 정의된다. 지상파 방송과 위성방송이 그것이다. 송신 업무의 분리는 이런 방송국의 해체를 의미한다.

하지만 필자가 송신 업무의 분리에 찬성하지 않는 것은 단지 이런 이유들 때문만은 아니다. 지상파 방송의 송신 업무에 종사하는 방송기술 노동자들이 예뻐서는 더더욱 아니다. 방송기술 노동자를 포함해 지상파 방송 종사자들이 자신이 수행하는 제작과 송출과 송신 업무를 무료 보편적 서비스라고 부르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지상파 방송의 망 역시 보편적 망이 돼야 한다. 그 성향에 관계없이 시민들과 시민단체들이 직접 기획하고 참여해서 만든 콘텐츠가 보편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망의 성격을 지녀야 한다는 얘기다. 거기에 지상파와 시민사회의 ‘윈윈’이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