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유효기간

[칼럼] 인간의 유효기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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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기술저널] 얼마 전 한국방송공학회(공식적으로는 방송·미디어공학회로 개명) 회장단 이·취임식 및 송년회에 다녀왔다. 한국방송기술인연합회와 방송공학회가 MOU를 체결했으니 두 단체는 가깝다면 가까운 사이다. 내빈으로 전임 회장님들이 오셨고, 방송공학회의 영원한 고문이신 송재극 고문께서도 참석해 주셨다. 송 고문은 필자가 방송사 신입사원일 때도 이미 직급이 국장이셨던 사실로 현재의 연세를 가늠해 볼 수 있을 것이다. 필자도 송 고문님 정도 나이가 된다면 이러한 공식행사에 참석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물론 방송공학회에서 불러주셔야 하겠지만.

지난 칼럼에서는 방송기술 엔지니어란 직업의 유효기간을 살펴보았었다. 이번에는 보다 근본적으로 인간의 유효기간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2009년에 인간의 수명을 결정짓는 요소에 대한 연구를 한 3명의 과학자에게 노벨 생리의학상이 수여됐다. 정확하게는 ‘텔로미어(Telomere)와 텔로머레이스(Telomerase)에 의해 염색체가 파괴되지 않고 보호되는 연구 결과’의 공로로 수상했다. 여기서 ‘텔로미어’는 세포 속 염색체의 양쪽 꼬리 부분으로, 텔로미어의 길이가 아주 짧아져 버리면 세포는 더 이상 분화하지 못하고 사멸한다고 하며 이는 곧 노화를 의미한다. ‘텔로머레이스’는 텔로미어를 합성하는 효소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노화를 방지하기 위해 텔로머레이스를 인위적으로 쉽사리 사용 못 하는 이유는 암 발생의 원인이 될 수 있어서라고 한다.

지난 10월 M 본부에서 방송한 ‘다큐스페셜’에도 이러한 내용이 잘 나와 있다. 프로그램에서는 텔로미어의 꼬리가 쉽게 짧아지지 않게 하려면, 즉 오래 살려면 비타민 D를 챙겨 먹고 지구력 운동 등을 하라고 한다. 이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일란성 쌍둥이라도 후천적으로도 얼마나 텔로미어의 차이가 생기는지를 실증적으로 보여줬다. 왜 이렇게 유익한 프로그램은 오밤중에만 해야 하는지 의문을 가져본다. 혹시 프라임 타임에 방송하면 너무 많은 사람이 시청해 너무 오래 장수할까 봐, 주최 측(?)에서 사회 전체의 연령별 구성비를 배려하는 마음에서가 아닐까 추측해 본다. 관련 연구에 의하면 한 번 짧아진 텔로미어는 복구가 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리고 각종 질환, 무절제한 생활습관이나 스트레스 등에 의해 짧아진다고 한다. 그러니까 스트레스를 받을 때마다 세포의 노화가 촉진된다는 사실이 증명된 것이다. ‘꼬리가 길면 밟힌다’는 다분히 부정적인 의미였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텔로미어만큼은 긴 꼬리를 갖고 싶다.

약초학자이신 최진규 씨에 의하면 역사상 제일 오래 산 인물은 중국 청나라 시대부터 중화민국 초기까지 산 ‘이청운’이라는 약초의학자라고 한다. 이 분은 1677년에 태어나 1933년까지 무려 256년을 사셨다고 한다. 믿거나 말거나 이지만 1930년 NY Times에 ‘1827년 청나라 궁중에서 이청운 150세 생일 축하연을, 또 1877년에는 200세 생일 축하연을 열어주었다’는 기사가 있다고 한다. 사실이라면 이 분 텔로미어는 아마도 다이아몬드 재질로 만들어졌을 것 같다. 확실한 것은 살면서 전혀 스트레스를 받지 않으신 것 같다. 구기자차를 매우 즐겨 드셨다고도 한다. 여기서 구기자는 만병통치약 대우쯤으로 묘사돼 있다.

지금도 현업에서 방송 사고 예방으로 노심초사하는 방송기술 엔지니어들을 보면 그들의 텔로미어가 걱정이다. 그러니 피치 못하게 방송 사고를 냈어도 너무 비난하지 않았으면 한다. 텔로미어는 복구가 안 된다고 하니까. 뭐 그렇다고 전부 다 텔레토비같이 살 수는 없겠지만.

방송공학회 송년회에서 송 고문님을 내년에도, 후년에도 쭈욱 뵙기를 희망한다. 송 고문님 말씀을 절대 고문스럽지(?) 않게 들을 수 있을 것 같다. 다 몸에 좋은 약이 되는 말씀들이니까.

이렇게 쓰고 나니 약장수라도 된 것 같다. 약도 차도 먹기 싫은 이들은 구기자가 그렇게 좋다고 하니 구기자주를 마시는 것이 어떨까? 쭈욱 들이키면 텔레토비가 될 것 같다. ‘아이 좋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