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판 유감

[칼럼] 심판 유감

1848

[방송기술저널=오건식 SBS 인사팀부 국장] 스포츠 경기, 특히 구기 종목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사람은 누구일까? 선수나 감독도 중요하지만 필자 생각으로는 당연히 심판이다. 이전부터 자주 들어온 문구의 하나로 ‘경기에 이기고 승부에 졌다’라는 표현이 있다. 경기는 잘했으나 운이 나빠서 졌다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불공정한 심판 판정으로 인해 졌다는 의미로 쓰인다.

HD 및 UHD로 생중계된 러시아 월드컵은 그 어느 대회보다도 판정에 대한 논란이 많았다. 아쉽게도 우리나라도 피해를 본 국가 중의 하나다.

러시아 월드컵에서는 심판의 판단 미스를 보완하고자 VAR을 전격 도입했다. VAR은 8대의 Super Slo-mo와 4대의 Ultra Super Slo-mo 카메라를 포함한 37대의 카메라의 영상을 이용해 판정을 한다. 별도로 Off Side 판정을 위한 카메라 2대도 사용한다. 경기장 영상은 모스크바에 설치된 VAR 센터로 지연 없이 전송돼 판독의 기초 자료가 됐다. 물론 VAR의 도움을 받을 것인가 말 것인가 하는 결정은 절대적으로 주심의 판단이다. 이번 월드컵에서 축구 변방이라고 간주되는 국가들이 대체적으로 판정에서 불이익을 받았다고 여겨지는 데에는 이렇게 심판들의 잠재의식이 작용했을 것이라는 막연한 추측이 있다. 아마도 학창 시절에 공부 좀 하는 친구와 같이 일을 저질렀지만 혼자만 처벌받은 경우가 있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VAR은 논란의 여지가 많았지만 경기 매너란 측면에서는 긍정적 효과가 더 큰 것 같다고들 한다. 그라운드를 누비는 선수 입장에서는 처음에는 무심했지만 점점 더 VAR이 바로 몰카라고 생각하게 된다. 쓰레기 무단 투기 지역에 가짜 CCTV 한 대만 달아놓아도 무단 투기가 현저하게 준다고 하는데, VAR을 몇 번 경험해 본 이후에는 국제적 망신을 당하기 싫어서라도 선수들의 행동이 조금은 조신해지는 것 같다.

이번 월드컵에서는 VAR 도입 이외에도 공인구에 NFC 기능을 넣었고, 선수들의 유니폼에는 가속계•GPS•자이로스코프•심박계 등의 항목 측정이 가능한 시스템인 EPTS 기능을 넣었으며, 공의 골라인 판독 기능•경기 진행 상황 체크•VAR 센터와의 교신 등의 기능을 가진 심판용 스마트워치 등이 사용됐다.

하지만 여러 종류의 방송 및 정보통신기술의 도움을 받았으므로 좀 더 공평한 판정이 이뤄져야 함에도 심판의 자의적 해석에 의해 페널티킥이 주어지거나 무시되는 상황만큼은 아직도 ‘복불복’인 것 같다. 페널티 에어리어 안에서 핸들링의 고의성 여부를 정확하게 판단하려면 핸들링 반칙을 범한 선수의 성장 과정, 교우 관계, 사회성, 세계관, 음식 취향이나 문화적 소양 등등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머지않아 AI가 심판을 대체할 것 같다.

아직은 사회 모든 분야에서 심판 역할을 하는 사람들의 소양을 기대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사법부는 우리 사회의 심판이라고 자타가 공인하고 있다. 요즘 지난 시절 특히 지난 정부 때 사법부의 처신에 대해 의혹이 집중되고 있다. ‘재판 거래’라는 이름의 의혹에 대해 사법부 수뇌부는 아니라고 아니라고 적극 부정하지만, 이 또한 결론적으로는 사법부의 판단을 받을 수밖에 없을 것 같은 아이러니한 상황이 벌어질 것이다. 아~ 이러니? 지금 재판 거래 의혹을 받고 있는 사람들이 최종적으로 유죄를 선고받게 된다면 과연 그들도 ‘사법부의 판단을 존중한다’고 할 것인가?

역사적으로 보면 ‘사법부의 판단을 존중한다’는 표현은 종종 ‘판결 결과는 억울하지만 걍 참는다’란 뜻으로 읽힌다. 그만큼 우리에게 심판의 역할을 일임받은 사법부가 신뢰를 잃고 있었다는 뜻이다.

돌이켜보면 방송, 특히 생방송에 새로운 기기나 서비스를 도입하고 나서 징계를 받은 일들이 있었다. 나름 새로운 시스템 구축을 완료하고 사용법까지 전수했지만, 다른 직군 사용자의 이해 부족 및 조작 실수로 새로운 기기나 서비스 기술이 폄하되는 일들이 종종 있었다. 이와 같이 기술은 앞서가지만 그 기술을 수용하는 이들의 자세에 의해서 기술의 효용성이 결정되는 것이 안타깝다. 물론 사용 방법을 쉽게 개발해야 하겠지만, 간혹 사용 의지가 전혀 없는 평안 감사를 만나면 난감할 수밖에 없다. 이 또한 방송기술인들의 숙명이라 생각하지만, VAR을 제대로 활용하지 않은 심판을 보는 것처럼 착잡할 따름이다.

각설하고, 여러 악조건에서도 러시아 월드컵 중계방송을 위해 노력한 방송기술 스태프 분들께 수고하셨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원고료 나오면 한 잔 살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