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떡:커도 너무 크다

[칼럼] 남의 떡:커도 너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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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기술저널] 미국 최대의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 업체인 Netflix가 우리나라에도 진출할 것 같다. 9월 1일부로 Netflix는 SoftBank를 통해 일본에서 서비스를 개시했다. Netflix 글로벌사업총괄책임자가 9월 9일 BCWW(국제방송영상견본시)에서 기조연설을 했다. 이를 통해 우리나라에서는 내년 초에 서비스를 시작한다고 밝혔다. 그래서인지 Netflix와 손을 잡고자 하는 국내 통신사들의 물밑 접촉이 가시화되고 있다고 한다. 통신 사업자와 손을 잡게 되면 기존 IPTV 플랫폼에 또 다른 서비스가 추가되는 형태로 서비스될 것 같다.

현재 Netflix는 7,000만 정도의 가입자를 가진 공룡이다. 가입자 수 7,000만은 개인이 아니라 가구 수일 것이므로 실제적인 가입자 수는 1억 명이 훨씬 넘을 것이다. 거대한 가입자 수에 기초한 Big Data 분석으로 Netflix는 점점 더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될 기세다. 게다가 콘텐츠 유통을 넘어 제작까지 직접 하는 팔방미인이 돼가고 있다.

Netflix의 한국 진출 가능성을 생각하다 보니 몇 년 전에 공개된 이른바 ‘실리콘밸리에서 가장 중요한 문서’라고 여겨지는 Netflix 사내 조직 운영 참고 가이드의 내용이 떠올랐다. 이 가이드를 보면 Netflix란 회사는 거의 ‘당나라 군대’ 수준이다. 가장 직장인들의 호감을 끄는 것이 휴가와 관련된 규정이 없다는 것이다. Netflix의 인재들은 알아서 업무를 잘 수행할 것이므로, 스스로 알아서 필요한 만큼 휴가를 사용할 것이란 믿음이 갑이다. 출장 규정도 ‘Netflix의 이해에 부합할 정도로 알아서…’란 문구가 전부다. 스스로 생각해서 가야 할 출장이라면 눈치 보지 말고 갔다 오란 것이다. 당연히 연봉도 업계 최고 수준으로 준다. Netflix를 퇴사해서 다른 직장으로 옮기는 직원의 경우는 대부분 연봉이 줄 수밖에 없다고 한다.

이런 ‘당나라 군대’의 실적은 놀랍기만 하다. 가끔 우리 주변의 기획 회의에서는 Netflix의 성과와 장밋빛 미래 성장 예측을 소개하면서 Netflix급 아이디어나 서비스 모델을 내라고 주문한다. 대부분의 경우 회의는 왜 Netflix는 이러이러한 획기적인 아이디어를 냈는데, 참석자들은 좋은 아이디어를 못 내느냐고 하면서 끝이 난다. 어찌 보면 Netflix의 CEO인 Hastings의 경영이나 인사 철학은 도입하지 않으면서 그들의 서비스 모델이나 성과는 구현돼야 하는 상황이다. 물론 Netflix가 처음부터 ‘당나라 군대’ Rule을 도입한 것은 아니다. 2002년 상장 후 2년 뒤인 2004년부터 도입했다고 하니, 어느 정도 사업이 궤도에 오르고 수익 기반이 탄탄해지니까 기존 경영 방식보다 진취적인 Rule이 만들어질 수 있었을 것이다.

필자도 전 직장에서 같이 일했던 선배 팀장이 창업을 해 합류한 적이 있다. 그런데 기존 기업의 일원으로 보던 팀장과 신생 기업의 CEO가 된 팀장은 달라도 너무 달라져 있었던 기억이 있다. 아무래도 종업원 신분이 아니라 ‘자본’을 투입한 Owner가 됐을 때는 초심을 유지하기 어려웠을 것임을 이해는 했지만, 왠지 뒷맛은 씁쓸했었다. 결국, 신생 기업에서 ‘타짜’가 되지 못한 필자는 반년 만에 방출됐다.

채산성이 점점 떨어지는 우리나라 방송 산업에서 우리도 Netflix처럼 대우해 달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Netflix처럼 대우를 안 해주니, Netflix급의 아이디어나 사업 모델을 못 낼 수도 있는 것 아닐까? ‘개천에서 용 나는’ 시절은 이미 끝이 난 것으로 사회적 합의가 이뤄진 것 같던데… 유사한 환경을 먼저 만들어 주고 나서, 왜 우리는 잘 나가는 기업처럼 Fancy한 사업 모델을 못 만드느냐고 묻는 것이 이치에는 맞을 것 같다. 왠지 내가 쉬고 싶을 때 언제든 쉴 수 있다면 Netflix 찜 쪄 먹는 아이디어가 솔솔 나올 것 같지 않은가? Netflix처럼 무려 1년이나 유급 출산휴가를 받으면 아기도 아이디어도 슴풍슴풍 잘 나올 것만 같다.

이제 Netflix 같은 기업에 입사하기란 ‘하늘의 별 따기’가 돼버렸다. Google에 입사하는 것이 Harvard대에 들어가는 것보다 25배나 힘들다는 통계도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도 한때는 ‘언론 고시’라고 해 방송사 입사하기가 엄청 힘들던 시절이 있었다. 경쟁률만 놓고 보면 나름 엄청난 경쟁을 뚫고 입사한 방송 종사자들이니 방송 산업의 미래를 위해 Netflix의 아류라도 되는 아이디어를 짜내야 할 것 같다. 용이 아닌 이무기라도.

그래도 기분상 남의 떡이 커도 너무 커 보이는 것만큼은 어쩔 수 없다. 한 번이라도 ‘당나라 군대’에서 일해보고 싶다. 아~ 당 떨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