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방송, 제도적 시스템 구현해야

[칼럼] 국제방송, 제도적 시스템 구현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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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랑 국제방송의 방석호 사장이 초호화 출장을 다니며 국민 혈세를 낭비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 과정에서 해외 출장에 가족을 동반해 세금을 사적으로 유용했다는 의혹이 제기됐고, 지출문서를 위조한 정황도 드러났다고 한다. 이번 사태는 현재 아리랑 국제방송의 제도적 시스템상 이미 예견된 것이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현 아리랑 국제방송의 사장 선임과 검증 등 제도적 장치가 매우 부실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아리랑 국제방송의 설립과 운영의 법적 근거는 방송법이나 방송 관련법이 아닌 민법 제32조와 문화산업진흥기본법 제20조에 두고 있다. 즉, 현행 방송법 혹은 방송 관련법은 아리랑 국제방송에 대해 어떤 법·제도적인 근거를 제공하고 있지 않다. 대신 민법과 함께 문화산업진흥기본법 제20조에서 아리랑 국제방송이 국가홍보방송을 수행하는 사업 및 재정적 지원에 관한 법률적 근거를 찾을 수 있다. 즉, 아리랑 국제방송은 문화산업의 국제교류 및 해외시장진출의 지원 사업을 정부로부터 위탁받아서 추진하는 민법상의 재단으로 규정돼 있다. 또한 문화산업진흥기본법에 따르면 정부는 문화상품의 수출경쟁력을 촉진하고 해외시장진출을 활성화하기 위한 사업에 지원할 수 있으며, 문화산업의 진흥을 위해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경우에 대통령령이 정하는 기관이나 단체에 대해 국제교류 및 해외시장진출 사업에 지원할 수 있다. 이것이 현 아리랑 국제방송에 대한 법·제도적 근거의 전부다.

이는 아리랑 국제방송의 제도적·정책적 기반이 취약함을 나타내는 것이며, 특히 법적 측면에서 근거가 충분치 않은 상황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즉, 아리랑 국제방송은 정부의 지원으로 이뤄지는 공공적 방송임에도 불구하고 방송법이나 별도의 법 없이 민법과 문화진흥기본법에만 그 근거와 지원규정이 있는 것이다.

아리랑 국제방송의 거버넌스를 살펴보면, 국제방송교류재단의 정관 제5조에 따르면 이사회는 의장을 포함해 11인 이내로 구성한다. 이사는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 사장, 문화체육관광부 미디어정책국장, 외교통상부 문화외교국 국장, 해외문화홍보원 해외홍보기획관, 한국관광공사 사장, 방송통신위원회 방송정책국장, 국제방송교류재단 사장, 기타 비상임 이사는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임명하도록 돼 있다. 대부분의 이사가 정부기관 혹은 정부산하 기관에서 임명하도록 한 구조다. 그리고 이러한 이사회는 임원추천위원회 구성에 관한 사항을 결정하며, 사장은 이사회가 구성한 임원추천위원회의 추천으로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임명한다. 이러다 보니, 아리랑 국제방송의 사장 선임은 거의 매번 낙하산 인사 논란이 제기되고는 했다. 아리랑 국제방송 사장으로서의 위상과 가치관, 역할 등에 대한 전문적·독립적인 식견보다는 정권에 좌우된다는 인식이 강하게 작용했기 때문이다.

독일의 국제방송인 DW(Deutsche-Welle)의 경우, 방송감독위원회에서 사장을 선임하는데, DW의 방송감독위원회는 정부 및 정당 대표 7인과 사회단체 대표 10인으로 구성돼 있다. 즉, 사장 선임권한이 있는 방송감독위원회에 정부나 정치권이 아닌 일반 단체 대표의 비율이 59%에 이르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규정은 DW에 관한 법률(Deutsche-Welle-Gesetz)에 의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BBC World는 BBC 칙허장과 협정서, 미국의 VOA는 국제방송법, 프랑스의 France 24는 시청각커뮤니케이션법, 일본의 NHK World는 방송법, 그리고 러시아의 RT는 대중매체법 등 주요 국가의 경우, 국제방송이 방송 관련 법이나 별도의 법률에 근거하고 있다. 해외의 경우 국가정책 차원에서 글로벌 홍보방송을 집중 육성하고 있으며, 국제방송에 대한 명확한 법적 근거를 두고 있는 것이다.

이에 반해 국내 국제방송의 필요성에 대한 인식은 낮은 상황이며, 제도적 기반도 여전히 미비하기만 하다. 이번 사건도 결국은 아리랑 국제방송의 법·제도적 시스템의 부재와 관련이 있다. 따라서 아리랑 국제방송의 바람직한 미래를 위해 가장 시급한 과제는 법적 근거를 마련하는 것이다. 수년째 아리랑 국제방송에 관한 법률이 국회에서만 계류되고 통과되지는 못하고 있다. 그러나 이제는 국제사회에서 국제방송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고려해 법·제도적인 틀을 확립해야 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그 위상을 정립할 필요가 있으며, 거버넌스 시스템을 보다 투명하고 공정하게 확립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