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후규제 = 내용검열 = 언론자유 침해

[조준상 칼럼] 사후규제 = 내용검열 = 언론자유 침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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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후규제’=’내용검열’=언론자유 침해


민주주의가 거대 기업의 불법 정치자금이 상징하는 이른바 ‘금권’에 의해 유린되는 것을 막기 위해 한국사회가 찾아낸 해법은 ‘돈은 묶고 말은 풀라’는 것이었다. 이런 합의에 따라 지난 2004년 4․13 총선 이전에 통합선거법이 마련돼 시행됐다. 이 과정에서 기업의 불법 정치자금 제공 행위를 규제하기 위해 사회적 약자인 노동조합의 정치자금 기부 행위까지 도매금으로 금지시키는 우를 저지르기도 했다. 그만큼 무리를 해서라도 ‘돈은 묶고 말은 풀라’는 원칙을 지키려 했던 셈이다.
 


이에 비춰보면, 한나라당의 방송법과 신문법 개정안은 완전히 거꾸로다. ‘돈은 풀고 말은 묶는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돈, 그리고 여기에 딸린 말은 확 푼다’. 한나라당 방송법 개정안은 방송뉴스/보도를 소유할 수 있는 대기업 기준을 3조원에서 10조원으로 늘린 것도 모자라, 아예 이 기준 자체를 철폐하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말은 화끈하게 묶는다’. 어떻게?


말을 묶으려는, 아니 현 정권에 유리하거나 우호적인 말만을 키우려는 시도는 다각적이다. <피디수첩>을 상대로 광구병 쇠고기 취재원본 제출을 요구하고 있는 것처럼, 현 정권과 한나라당은 방송콘텐츠진흥법을 제정해 취재 원본 제공을 의무화시키려 하고 있다. 취재 원본 제공을 의무화시킴으로써, 방송사 내부에서 자율적으로 수행하는 편집 및 편성 행위를 옭아매려 하는 것이다. 하지만 말을 묶으려는 현 정권 시도의 핵심은 방송법 개정안에 있다. ‘사후규제’ 강화가 바로 그것이다. 이에 대해 좀 길게 설명하면 이렇다.


현 방송법 제18조 제1항은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심의를 통해 가한 제재를 방송사가 이행하지 않을 경우, 허가나 승인, 등록을 취소하거나 최대 6개월 동안 방송사 업무의 일부 또는 전부의 정지를 명령할 수 있도록 돼 있다. 구체적으론, △시청자 사과 △해당 방송프로그램의 정정/수정/중지 △해당 방송프로그램 관계자 징계 △주의/경고 등의 제재를 방송사가 이행하지 않을 경우, 업무를 중지시킨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현 방송법의 이런 규정이 현실화한 적은 없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방송 심의 결과를 방송사의 영업 업무 중지로 연결하는 것은 언론자유 침해와 탄압의 위험성이 컸기 때문이다. 그런데 현 정권은 이를 노골적으로 현실화시키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앞서 언급한 네 가지 제재를 받았음에도 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최대 6개월 동안 방송광고를 중단하거나 주요 업무(송신행위, 의무재송신 행위, 유료방송에 대한 콘텐츠 제공행위 등)을 정지시키겠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재허가 기간 단축과 같은 사후규제 강화 방안도 있기는 하지만, 핵심은 방송광고와 업무 중단에 있다.


쉽게 말해 방송통신심의위가 공정하지 못한 보도였다고 판정해 가한 제재를 방송사가 받아들이지 않으면, 광고영업이나 주요 업무를 수행하지 못하게 된다는 얘기다.


어디선가 본 듯한 광경이다. 이동통신사들이 불공정거래 행위를 저지르면, 일정기간 동안 영업중지 명령을 내리는 게 바로 그것이다. 결국, 한나라당 방송법 개정안에 담긴 사후규제 강화는 통신에 적용하던 모델을 그대로 방송에 적용하겠다는 것 이외에 다른 뜻이 아니다. 여기에서 통신에 완벽히 ‘흡수통일’ 되는 방송의 현 주소를 한 번 더 목도할 수 있다. 방송통신위가 발의한 방송통신발전기본법안이 방송의 개념을 해채해 통신에 흡수시키고 있음은 널리 알려져 있다.


통신에 적용하는 사후규제 모델을 방송에 적용할 경우,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뻔하다. 말이 묶인다. 특히 현 정권에 유리하지 않은 말은 들을 수 없다. 뉴스보도 업무를 수행하는 기자와 피디 등 언론인들이 스스로를 검열하는 것은 물론, 방송사 차원에서 민감한 뉴스에 대해서는 ‘게이트 키핑’ 강화를 명분으로 순치시키거나 내보내지 않을 것이다. 현 정권이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는 ‘정치적 공정성’ 시비에 휘둘리면, 바로 광고영업 중단 위협에 시달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네 공명심 때문에 방송사가 작살나면 네가 책임질래?’는 상관의 말을 거스르고 올곧은 저널리즘을 실천할 수 있는 언론인은 몇 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에서도 그렇게 해야 참된 언론인이라고 주장이 있을 수 있는데, 맞는 말이다. 하지만 문제는 언론인이 스스로를 검열하고 방송사가 항상적인 방송 중단 위협을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이지 않게 하는 것이 순서다. 이런 상황을 낳는 방송법 개정안을 가만히 내버려둔 채 ‘지사’가 되지 못한다며 언론인들을 탓한다면, 이는 웃지 못할 ‘블랙 코미디’에 해당한다.


한나라당 개정안의 사후규제 강화, 행정기관에 의한 내용 규제, 구체적으로 방송통신심의위에 의한 심의 강화가 핵심이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이미 또렷하다. 바로 ‘위축 효과’를 통한 보도내용에 대한 사실상의 ‘검열’이다. 사후규제 강화, 그것은 언론자유를 침해하는 8차선 고속도로다. 결국, 한나라당 방송법 개정안이 현실화하면 한국사회 시민들은 앞으로 ‘풍요 속의 빈곤’에 빠져들 가능성이 높다. 이미 ‘비즈니스 프렌들리’한 보도가 차고 넘치는 상황에서 돈과 이 돈에 딸린 말은 더욱 많아지고, 정작 필요한 말은 빈곤에 허덕이는 악순환이 그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