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이 사라졌다! – ‘방송통신’ 개념에 대한 단상

[조준상칼럼]‘방송’이 사라졌다! – ‘방송통신’ 개념에 대한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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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이 사라졌다! – ‘방송통신’ 개념에 대한 단상
 


/조준상 공공미디어연구소 부소장

방송통신위원회가 올해 안에 ‘방송통신발전에관한기본법’(방통기본법)을 제정하겠다고 지난달 28일 발표했다. 방통위의 보도자료에는 방통기본법의 핵심인 ‘방송통신’ 개념을 소개하고 있다. “방송통신이라 함은 유선 무선 광선 및 기타의 전자적 방식에 의하여 방송통신 콘텐츠를 송신하거나 수신하기 위한 일련의 활동과 수단”이라고 한다. 이 방송통신 개념에는 현행 방송법에 따른 방송, IPTV사업법에 따른 방송, 전기통신기본법에 따른 전기통신이 포함된다고 한다.

별다른 문제가 없어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방송통신 개념은 방통위 말처럼 “기존 방송과 통신의 개념을 통합”해 확대한 개념으로 방통기본법의 다른 개념들을 재정의하는 주춧돌에 해당하기 때문에 면밀히 따져볼 필요가 있다. 현행 방송법의 정의부터 살펴보자. “방송 프로그램을 기획․편성 또는 제작하여 이를 공중(개별계약에 의한 수신자를 포함)에게 전기통신설비에 의하여 송신하는 것”이다. 전파법은 (지상파) 방송국을 “공중(公衆)이 방송신호를 직접 수신할 수 있도록 할 목적으로 개설한 무선국”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러면 전기통신기본법에서 (전기)통신 개념은 어떻게 돼 있을까? “유선ㆍ무선ㆍ광선 및 기타의 전자적 방식에 의하여 부호ㆍ문언ㆍ음성 또는 영상을 송신하거나 수신하는 것”이다.

이제 방통위가 방송과 통신의 개념을 어떻게 통합해 확대했는지 눈치챘을 것이다. 전기통신기본법에 있는 통신의 정의에다 ‘방송통신 콘텐츠’라는 낱말만을 추가한 게 방통위가 통합했다는 방송통신 개념이다. ‘통신에 의한 (지상파) 방송의 흡수통일’, ‘(지상파) 방송 개념의 소멸’이 바로 방통위의 방송통신 개념이라는 얘기다. 기존 방송 개념에 있는 ‘공중’(the public)이라는 개념은 아예 사라졌다. 편성이라는 개념 역시 실종됐고, ‘송신’에 국한된 방송이 ‘수신’까지로 확대됐다.

가장 큰 문제는 ‘공중’이라는 말이 사라졌다는 점이다. 기존 지상파 방송에서 공익성과 공공성이 강조됐던 주요한 이유의 하나는, 그것이 지상파라는 전파의 특성상 공중에게 무차별하게 송신된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방송에서 공중이 사라진다는 것은 기존 방송에 요구돼온 공익성과 공공성이 크게 약화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공영방송이야 방통위와 한나라당이 관영방송으로 만들려고 하고 있는 만큼, 공익성․공공성보다는 관영성이 더욱 강화할 걸로 우려된다고 치자. 공중 개념의 실종은, 민영 지상파방송의 공익성과 공공성을 크게 약화시키는 효과를 낳을 것으로 추정된다.

공중의 실종은, 방송통신 개념에서 ‘시민(citizen)으로서의 시청자’의 실종과 떼려야 뗄 수 없이 연결돼 있다고 봐야 한다. 기껏해야 방송통신에 남는 것은 ‘이용자’(user) 정도가 되기 쉽다. 시민으로서 미디어에 대한 접근권을 요구할 수 있는 기반이 크게 약화하는 것이다.

방통위는 방송통신에 기존 방송법상의 방송 개념이 포함되도록 한 만큼, 문제될 게 없다고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방통위는 내년 하반기에는 방송통신사업법을 제정하고, 그 이후 방송법 등 개별법들을 통합할지를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방송통신 개념이 앞으로 방송을 재정의하는 준거가 된다는 얘기다. 그런 만큼, ‘공중에게 송신한다’는 방송의 핵심 개념이 부당하게 몽땅 사라진 방송통신 개념은 반드시 는 방송의 수정될 필요가 있다. “상대적으로 공익성을 중시하는 방송과 산업성이 중시되는 통신을 단기간에 동일 규제체계로 융합하기는 곤란”하다는 방통위의 주장이 빈말이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그렇다.

좀 더 본격적인 의문을 던져보자. 왜 방통위는 방송을 통신 개념에 흡수시킨 것일까? 우연한 실수라고는 보기 어렵다. 통신에 흡수통일 된 방송이라는 개념에 지금의 현실을 부합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곧 현실의 방송국을 해체하면, 이를테면 송출 기능과 네트워크를 떼어내면 통신에 흡수통일 된 방송 개념에 가깝게 된다. 이때 방송은 방통위가 도입하려는 콘텐츠 층위에서만 사업자로 정의하면 되고, 동일한 콘텐츠 사업자별로 규제 수준을 같게 하면 된다.

그래서일까. 방통위의 방통기본법에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콘텐츠 층위와 관련된 편성이나 편집에 대한 개념이 없다. 다만 방송통신 콘텐츠는 “유선․무선․광선 및 기타 전자적 방식에 의하여 송신하거나 수신되는 부호․문자․음성․음향 및 영상”을 가리킨다는 다분히 동어반복적 정의만이 있을 따름이다. 방송통신 사업자나 방송통신 서비스 개념에서도 이와 마찬가지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방송을 사라지게 해 방송을 장악한다? 개념에서도 ‘방송 장악’ 시도가 벌어지고 있는 게 아닐까 깊은 회의를 품게 된다. 필자만의 기우이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