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모론이 독버섯처럼 번지고있다.

음모론이 독버섯처럼 번지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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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일부 매체에서 음모론이 독버섯처럼 번지고 있다. 그들이 표면으로 내세우고 있는 것은 ‘디지털 전환 지원률 공개 논의’ 및 ‘디지털 전환 연기 선언설’ 등을 분석하는 것이지만 그 이면에는 700MHz 대역 주파수의 할당전쟁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그 안에는 ‘팩트’가 존재하지만 동시에 ‘소문’과 ‘루머’가 난무하고 있다. 바로 이 부분이 문제다.

 

우선 [전자신문] 3월 11일자 기사 “디지털 방송 전환, 방통위-지상파 ‘신경전’”다. 이 기사의 논지는 이러하다. [2월 열린 디지털 전환 지원사업 점검단 회의에서 DTV 코리아와 방통위 관계자가 대립각을 세웠다. 이유는 지원 신청과 디지털 전환 현황을 볼 수 있었던 권한을 방통위와 관리 기관인 한국전파진흥협회(RAPA)로 제한했기 때문이다. 이에 지상파 측은 정보열람을 제한하는 방통위가 지지부진한 지원률을 숨기기 위해 정보 공개를 꺼리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으며 방통위는 개인정보 유출이라는 측면에서 정보 열람을 막은 것이라고 맞서고 있다. 여기에 홍보방안에 대해서도 양 측은 대립을 이어가고 있는데 지상파 측은 면대면 홍보를 강화하자는 주장이고 방통위는 화면고지 등 간접홍보를 통한 디지털 전환을 유도하자는 방침을 고수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에는 ‘이면’이 존재한다. 지상파가 이같은 주장을 펼치는 근본적인 이유는 700MHz 대역 주파수를 할당받기 위함이며 동시에 대규모 시설투자에 대한 부담 때문이다. 실제로 지상파는 총선 및 대선을 겨냥해 디지털 전환을 공식적으로 연기하는 방침을 세우고 있는데, 방통위와 각을 세우고 있는 지상파의 의도는 여기에서도 증명된다]

다음은 같은 신문 3월 13일 기사 “박승정의 어울통신-지상파 방송사들의 꼼수?”라는 기사다. 논지는 이러하다. [지상파 방송사들이 디지털 전환을 선거철을 활용해 공식적으로 연기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디지털 전환률이 낮다는 주장이지만 그 이면에는 700MHz 대역 주파수를 할당받기 위해 주파수 회수 자체를 늦추겠다는 뜻이다. 또 지상파 방송사 입장에서는 디지털 전환이 이루어지면 장비를 모두 교체해야 하는 부담도 있으며 방송기술인의 일자리 문제도 걸려있다. 여기에 다채널 서비스 문제도 있다. 즉 종합하자면 홍보 부족으로 디지털 전환을 공식적으로 연기하려는 지상파의 속내는, 사실 주파수 회수와 기기 변경에 따른 부담, 방송기술인의 일자리 문제 등을 최대한 늦추기 위한 것이다. 여기에 정치권이 부화뇌동할 여지는 충분하다. ‘꼼수’다]

 

위 두 기사에서 주장하는 논점의 출발은 약간 다르다. 전자는 디지털 전환률 공개 논란에서 논의가 시작되었고 후자는 디지털 전환 연기 가능성에서 기사를 시작했다. 그러나 두 기사의 마무리 논점은 같다. “700MHz 대역 주파수를 할당”받으려는 지상파의 ‘음모’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물론 팩트가 있다. 홍보방안에 대한 논의는 지금까지 꾸준하게 있어왔으며 장비교체는 물론 더 나아가 주파수 손실보장 문제도 정당하게 제기되어왔던 것이 사실이다. 또 디지털 전환 연기에 대해서도 -아무것도 확정된 것이 없고, 이러한 소문이 왜 기사가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전혀 다른 이유’의 논지로 가능성이 있는 이야기다. 그러나 친통신을 자처하는 일부 매체의 편향적인 논지는 공공의 이익을 무시하고 자본주의의 논리로 모든 사안을 재단하는 오류를 저지르면서도 마치 자신들이 ‘피해자’인척 한다는 것에 있다. 더 정확한 사안을 살펴야 한다.

우선 전자의 기사를 살펴보면, 그 사안 자체를 살펴야 하는데 쓸데없는 상상력이 너무 가미되어 있다. 이게 기사인지 블로그에 쓴 일기인지 헷갈릴 정도다. 그 논리적 허점은 너무 빤히 보인다. 그러면 이제 살펴보자. 우선 해당 기사의 핵심인 ‘디지털 전환 지원률’을 문자 그대로 이해해보자. 지상파측은 디지털 전환 지원이 원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방통위의 이야기를 곧이 곧대로 믿지 않는다. 그리고 전환률을 끌어올리는데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홍보’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야 하는데, 실제로 수많은 매체는 물론 대부분의 국민들도 방통위의 홍보방안에 큰 문제가 있음을 잘 알고있다. 현재 방통위는 DTV코리아와 함께 홍보를 실시하고 있는데 ‘면대면 홍보’를 통한 타깃층 설정을 주장하는 DTV코리아와 달리 방통위는 어의없는 행정주의적 발상에서 나온 홍보만 진행하는 상황이다. 그 극적인 예가 바로 ‘KTX 홍보’다. 현재 방통위는 홍보 예산을 아예 ‘신문홍보’와 ‘KTX 홍보’ 둘로 나누어 진행하고 있는데 송재우 DTV코리아 사무총장이 양창근 한국방송기술인연합회 회장과의 간담회에서 지적했듯이, 직접수신가구 대부분이 50대 이상의 저소득측이 많은데 과연 그들을 대상으로 KTX 홍보가 얼마만큼의 효과를 거둘지 장담할 수 없다. 즉 애먼 곳에 홍보를 하는 형국이다. 이런 상황에서 자연스럽게 디지털 전환 지원률까지 낮아지는 것이며 ‘면대면’ 홍보방식을 주장하는 지상파의 ‘지원률 정보 공개’에 방통위는 개인정보 운운하며 난색을 표하는 것으로 해석이 가능하다. 즉, 지상파의 ‘홍보 방안 원인 공개와 혁신’이라는 주장을 ‘주파수 할당의 꼼수’라 지적하는것은 불합리하다.

후자의 기사를 살펴보면, 정치권까지 끌어들여 그럴싸하게 기사를 써놓았지만 실제로 방통위 주도의 디지털 전환 홍보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고 전환률이 낮다는 사실은 망각한 체 ‘소설’만 써댄 기사라 볼 수 있다. 지상파 방송사가 왜 ‘면대면 홍보’를 주장하는지에 대한 주장은 위 단락에 써놓았으니 별도의 설명은 생략한다. 사실 이 기사에는 더 무서운 ‘현실 인식’이 있다. 이것을 다루어보자.

해당 기사는 이렇게 주장하고 있다. 홍보 부족을 이유로 지상파 방송사들이 디지털 전환 연기를 주장하는 속내는 바로 ‘700MHz 대역 주파수 할당과 기기교체에 따른 부담, 지상파 다채널 서비스의 안착 및 기술인들의 일자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치권을 압박하기 위한 술수’라고. 마치 ‘나쁜 이익’을 위해 속임수를 부리는 것 같다는 뉘앙스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한국말은 ‘아’다르고 ‘어’다르다는 말이 있듯이, 위에 나열한 대목들은 ‘나쁜 이익’이 아니라 ‘좋은 이익’이라는 것에 있다. 즉 난시청 지역 해소라는 공공의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700MHz 대역 주파수 지상파 할당을 이루어야 하고 직접수신률과 병행해 국민에게 별도의 부담 없이 많은 콘텐츠를 제공할 수 있는 다채널 서비스를 안착시켜야 함은 물론 방송사의 고가장비 교체에 대한 고려가 전혀 없는 공산주의적 발상 타파와 ‘국가기간인 방송을 지탱하는 최대 다수인 방송기술인’에 대한 기본적인 토양마련은 ‘좋은 이익’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해당 기사는 지상파의 최근 움직임이 ‘여러 이익’을 얻기 위한 ‘꼼수’라고 매도하고 있다. 그 논리의 출발부터 잘못되었다.

팩트는 하나다. 방통위의 홍보전략은 실패에 돌아갔다. 그리고 지상파 측은 면대면 홍보를 통한 직접적인 전환률 향상을 주장하며 방통위에게 정보공개 열람을 요구했다. 동시에 아직 모든 것이 정해지지 않았지만 이런 어려운 상황에서 만약 필요하다면 국민의 피해를 최소화하고 더 나은 디지털 패러다임을 제공하기 위해 ‘디지털 전환 연기’ 가능성도 있다. 물론 그런일이 없는 것이 최선이겠지만 말이다.

그런데 해당 매체는 이러한 사실, 즉 팩트 속에서 엉뚱한 논리를 끄집어 내어 ‘소설’을 쓰고있다. 여기에 더 나아가 모두의 이익을 위해 지상파가 추구하고 있는 ‘많은 가치’들을 은연중에 ‘사적인 이익’으로 변모시켜 성급한 정의를 내려버렸다. 난시청 해소를 위한 주파수 할당과 다채널 서비스의 안착 등을 모두 부정적으로 인식해버린 것이다. 이는 매우 교묘한 여론전이다.

마지막으로 한가지. 해당매체가 더 추악한 것은 바로 현재의 상황에서 알 수 있다. 모두가 알고 있듯이 현재 700MHz 대역 주파수는 정말 타이밍 좋게 방통위 위원장이었던 최시중 씨가 사퇴직전에 상하위 대역 통신사 분할할당을 해버렸다. 한 마디로 해당 주파수 할당에 한 발 더 나아간 것은 ‘통신’이라는 뜻이다. 즉, 유리한 고지를 점했다는 뜻이며 공공의 이익보다는 자본주의의 논리에 방통위가 굴복했다는 의미를 가진다. 이런 상황에서, 도리어 친통신 매체들은 자신들이 피해자인척, 약자인척 ‘홍보 부족으로 인한 마찰’에서 엉뚱하게 주파수 이야기를 꺼내고 스스로를 포장하고 있다. 들장미 소녀 캔디인가. 이는 매우 적절하지 않으며, 동시에 가식적인 언론의 전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