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기술저널 백선하 기자] 우리나라가 세계 최초로 지상파 초고화질(UHD) 방송을 시작한 지 4년의 시간이 흘렀다. 지상파 UHD 방송은 화질뿐 아니라 IP를 통향 양방향 서비스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차세대 방송으로 주목받았다. 또한 모바일 단말기로 고화질(HD) 방송을 수신하는 등 방송과 통신 융합 서비스 부분에서도 다양한 시도가 가능해 방송통신 시장에 새로운 바람을 몰고 올 것이라는 기대가 컸다. 하지만 4년이 지난 지금 지상파 UHD 방송의 장밋빛 미래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지상파 전성기 시절과 비교하면 오히려 초라한 상황이다. 이에 본지에서는 UHD KOREA가 KBS공영미디어연구소에 의뢰해 진행한 ‘2021 UHD 방송 시청자 조사’ 결과를 분석해 현 시점에서 시청자들이 인지하고 있는 지상파 UHD 방송이 무엇인지, 지상파 UHD 방송이 제대로 안착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 자세히 살펴보고자 한다.
2021 UHD 방송 시청자 조사는 KBS 공영미디어연구소가 지난 3월 8일부터 15일까지 8일 동안 전국 만 19세 이상 남녀 중 지상파 방송 시청기기를 보유하고 있는 가구의 구성원을 대상으로 ‘KBS 국민패널’을 활용해 진행한 인터넷 설문 조사다. 주민등록통계 기준 성별, 연령대별, 지역별 비례할당에 따라 무작위 추출했으며, 95% 신뢰수준에서 ±3.0%p다.
“2명 중 1명은 UHD TV 보유”
4년 동안 가장 큰 변화는 2명 중 1명은 UHD TV를 보유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번 설문조사 응답자 중 절반은 UHD TV를 가지고 있었다. 향후 UHD TV를 구입하겠다는 응답자도 78.6%에 달했다. 10명 중 8명은 UHD TV 구입 계획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 글로벌 TV 시장은 4K를 넘어 8K로 접어들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스트래티지 애널리틱스(SA)는 4월 8일 발간한 ‘UHD 해상도 TV 디스플레이 시장 보고서’에 올해 8K TV가 전 세계에 약 100만 대 팔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는 지난해 35만 대와 비교해 3배가량 증가한 수치다. 미국소비자협회(CTA) 조사도 마찬가지다. 코로나19로 인한 가정 내 체류시간 증가로 기존 TV 업그레이드 교체 수요가 늘었고, 가정 내 원격 수업과 같은 가족 구성원들의 추가 TV 구매 수요까지 있는 상황이다. 지난해 미국 연간 TV판매량은 평균치(4천만 대)를 600만 대 상회하는 호실적을 달성했고, 앞으로도 최소 2년간은 이러한 기조가 유지될 거라는 전망이다. CTA는 “70인치 이상 대형 TV 수요 역시 꾸준히 증가해 오는 2024년에는 400만 대에 이를 것으로 조사됐다. 이는 8K-UHD와 같은 고화질 시청 수요로 이어진다”고 분석했다. 즉 UHD 방송 수신기기가 국내는 물론이고 전 세계적으로 성장세에 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전 세계 방송 업계에서는 UHD 화질로의 전환을 서두르고 있다. 그렇다면 UHD 방송 수신기기의 보급에는 별다른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10명 중 6명 지상파 UHD 방송 인지”
응답자 중 61.7%는 지상파 UHD 방송을 알고 있었다. 물론 10명 중 4명 정도는 지상파 UHD 방송에 대해 잘 모르고 있었지만 절반 이상은 지상파 UHD 방송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고 그 중 16.4%는 구체적인 내용까지 파악하고 있었다. 지상파 UHD 방송에 대한 인식도 큰 문제는 아니라는 것이다.
“UHD 방송 경험은 14%에 불과” “만족감은 높아”
문제는 시청 경험이었다. UHD 제작 프로그램을 UHD 화질로 시청한 경험이 14.1%에 불과했다. 지상파 UHD 방송을 시작한 지 4년이 지났고, 평창 동계올림픽도 UHD로 중계하는 등 여러 가지 시도가 있었지만 여전히 UHD 방송을 접한 시청자들이 적다는 것이다. 지상파 UHD 방송 시청 의향은 83.6%로 높았다. UHD 콘텐츠가 있다면 지상파 방송을 보겠다는 것이다.
콘텐츠 부족 문제는 이미 수차례 지적됐다. 방송통신위원회는 지난해 말 ‘지상파 UHD 방송 활성화를 위한 정책방안’을 의결했다. 지상파 UHD 전국망 구축 계획을 당초 계획인 2021년에서 2년 유예하고, UHD 편성 비율을 당초 2021년 25%, 2023년 50%, 2027년 100%에서 2020~2022년 20%, 2023년 25%, 2024년 35%, 2025~2026년 50%로 조정하는 것이 골자다.
지상파 UHD 방송 도입 당시 지상파 방송사들은 2016년부터 2027년까지 총 6조 7,902억 원을 투자해 전국망을 갖추고 UHD 콘텐츠를 도입하겠다고 했으나 급격한 수입 감소 등 경영상 이유로 전국망 구축과 UHD 콘텐츠 편성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방통위 역시 “UHD TV의 보급은 점진적으로 확대되고 있지만 콘텐츠 부족과 낮은 직접수신율 등으로 시청자가 느끼는 효용이 작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며 정책 변경 이유를 설명했다.
낮은 직수율도 시청 경험을 방해하는 요소 중 하나다. 대다수가 유료방송을 보고 있으나 지상파 UHD 방송은 케이블이나 인터넷TV(IPTV) 등을 통해서는 서비스되지 않는다. 이에 양한열 방통위 방송정책국장은 지난해 말 정책 변경을 설명하면서 “유료방송을 통해서도 지상파 UHD 콘텐츠를 시청할 수 있도록 지상파와 유료방송이 협력할 수 있는 방안을 적극 지원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나마 긍정적인 것은 UHD 방송을 본 시청자들의 만족도가 높다는 점이다. 지상파 UHD 방송을 본 시청자들은 프로그램 내용과 구성에서는 65.4%, 화질에서는 74.9%라는 만족도를 보였다.
“UHD 방송 수신 설비 보유자는 27%”
이번 조사에서 한 가지 눈여겨 볼 점은 UHD 방송 수신 설비 보유자 중 83.8%는 UHD 방송 시청 경험이 있다는 것이다. 수신 설비를 갖춘 만큼 UHD 방송에 대한 관심이 높았다. 전체 응답자 중 UHD 방송 수신 설비 보유자는 27%였다. 이중 10.6%가 UHF 안테나를 보유하고 있었고, UHF 안테나와 공시청 설비를 모두 보유한 응답자는 4.8%였다.
UHD 방송 수신 설비를 설치하겠다는 응답자도 절반에 달했다. UHD 방송 수신 설비 미보유자 중 46.7%는 설치 의향이 있다고 답했다. 이들 중 절반에 해당하는 44.9%는 2~3만 원 정도인 UHF 안테나를 구매할 의향이 있다 했으며, 공시청 설비 설치 의향자는 5.4%에 불과했다.
설문 조사 내용을 한 단어로 줄이면 결국 ‘경험’이다. UHD TV도 있고, 지상파 UHD 방송도 알고 있지만 ‘제대로 된 콘텐츠가 없어서’, ‘접근 방법이 없어서’ 아직까지 지상파 UHD 방송을 경험해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지상파 UHD 방송의 가장 큰 장점은 다양한 복합 서비스가 가능하다는 점이다. 최근 정부와 지상파 방송사, 통신사 등 이해관계자들이 모여 진행한 시연회 자리에선 ATSC 3.0으로 가능한 다채널방송(Multi Mode Service, 이하 MMS), 재난경보, 지상파 VoD, 타깃광고, 고화질 업스케일링, 끊김 없는 이동방송, 고정밀 위치 정보 서비스(Real-Time Kinematic, 이하 RTK) 등이 공개됐다. 하지만 시청자 대다수는 지상파 UHD 방송을 ‘화질’로만 체험하고 있으며, 지상파 UHD 방송을 경험해본 시청자도 소수에 불과하다. 시청자들 역시 다양한 서비스를 원한다. 설문조사에 따르면 시청자들은 MMS(90.7%), 모바일 시청(82.7%), 재난방송 등 부가 서비스(82.2%), 24시간 UHD 전용채널(79.6%), 보이는 라디오 전용 채널(74.9%) 등 다양한 UHD 서비스를 이용할 의향이 있다.
일각에선 아무도 안 보는 방송이니 지원도 필요 없다는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다. 하지만 지상파 UHD 방송은 차세대 방송이다. 다수가 컬러가 아닌 흑백TV를 본다고 해서 흑백TV에만 머물러 있으면 기술 발전은커녕 시장에서 도태되고 만다. 아직 소수가 컬러TV를 보더라도 정부 정책은 기술 발전을 지원하는 방향으로 나가야 하고, 그 지원을 바탕으로 국내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
또한 최소한의 보편적 시청권을 확보해야 한다. 기술 발전을 일부 경제적 여유가 있는 계층에서만 접하다보면 경제력에 따른 시청 격차만 더 벌어질 것이다. 한국방송기술인연합회 관계자는 “최소한의 보편적 접근권을 보장한 상태에서 유료방송에 대한 선택권을 제공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보편적 접근권 없이 유료방송으로만 내모는 것은 시청자에게도 결코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말했다.
UHD KOREA 관계자는 “지상파 UHD 방송이 제대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시청자들이 지상파 UHD 방송을 경험할 수 있도록 그 정도를 높이고 ‘화질’ 외에 다른 서비스도 체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 뒤 “방송사의 적극적인 노력뿐 아니라 △UHD 방송 수신 원-스톱 서비스 시스템 구축 △UHD 모바일, 다채널 방송, UHD 전용 채널 등 부가 서비스 본격화 기반 조성 △UHF 안테나 설치 및 공동수신설비 지원 사업 등 정부의 정책적 뒷받침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