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청자는 없고 사업자만 있다

시청자는 없고 사업자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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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우 유감스럽게도 새 정부 들어 내놓은 <방송산업발전 종합계획>을 통해서 무료 플랫폼으로서의 지상파 방송을 유지하고자 하는 정부의 의지를 읽어낼 수 없었다. 이미 다수의 시청자들이 비용을 지불하고 유료방송을 통해 방송 콘텐츠를 접근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고민은 발견되지 않았다.”

얼마 전 발표된 <방송산업발전 종합계획(이하 종합계획)>에는 ‘시청자’는 없고, ‘가입자’와 ‘사업자’만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차세대 방송으로 자리 잡은 UHD 관련 정책에서 지상파 방송을 배제함으로써 국민들이 시청자로서 당연히 누려야 하는 무료 보편적 서비스의 범위를 축소했기 때문이다.

   
 

지난 13일 오후 2시 서울 중구 무교동 한국정보화진흥원 세미나실에서 열린 ‘차세대 디지털 방송과 지상파 방송의 미래’ 특별 세미나에 참석한 정미정 공공미디어연구소 연구팀장은 “현 정부의 종합계획은 철저히 방송의 ‘산업적’ 측면만 고려했을 뿐 어디에서도 시청자의 복지나 방송의 공공성이 고려된 흔적이 없다”며 “정부는 시청자 복지, 방송의 공공성 회복을 위해 무료 플랫폼을 활성화시켜야 하고, 그 수단이 700MHz 주파수 활용이라면 주파수를 할당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재 종합계획에서 가장 논란이 되는 부분은 UHD 관련 정책이다. 종합계획에서는 매체별로 UHD 로드맵을 발표했는데 케이블 방송은 2014년, 위성방송은 2015년에 UHD 상용화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초안 기준) 하지만 지상파 방송에 대한 언급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이날 세미나에 참석한 전문가들은 바로 이 부분이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전 세계적으로 UHD는 가장 각광받고 있는 차세대 방송이다. 이미 UHDTV가 차세대 블루오션이 될 것이라는 예측 속에서 UHDTV 시장을 둘러싼 업체 간, 국가 간 각축전은 오래 전부터 시작됐다. 특히 세계 TV 시장에서 우리나라에 패권을 빼앗긴 일본의 노력이 눈에 띄게 보이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부의 UHD 관련 정책에 지상파 방송이 포함되지 않은 것이다.

전문가들 중 상당수는 UHDTV가 3DTV의 전철을 밟을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정 연구팀장은 “글로벌 제조사들과 각국 방송사들이 UHDTV에 관심을 가지고 대응하고 있기 때문에 UHD 시대는 생각보다 빠르게 도래할 가능성이 높다”면서 “3DTV 사례에서도 봤듯이 아무리 뛰어난 기술력이 기반된 디바이스가 출시된다고 해도 콘텐츠가 부족하면 의미가 없다”고 지적했다. 지상파 방송사의 콘텐츠 제작 능력 없이는 UHD 콘텐츠의 원활한 수급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콘텐츠 수급보다 더 큰 문제는 무료 보편적 서비스의 축소다. 종합계획에서는 UHD 방송을 프리미엄 서비스로 규정함으로써 노골적으로 유료방송의 프리미엄 서비스를 조장하고 있다. UHD는 흑백TV-칼라TV-SD-HD를 잇는 자연스러운 방송의 흐름이다. 그런데 현 정부는 이러한 흐름에 역행에 UHD를 프리미엄 서비스로 조장함으로서 보편적 서비스의 범위를 축소시키려 하고 있다.

관련 전문가들은 “HD와 UHD의 차이는 지금 우리가 흔히 느끼는 SD와 HD의 차이보다 훨씬 클 것”이라며 “방송 자체가 보편적 서비스인 만큼 시청자들이 디지털 정보 격차를 느끼게 해서는 안 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방성철 방송협회 차세대 방송전략 단장은 “유료 방송 중심의 UHD 로드맵을 도입할 경우 시청자들은 돈을 내고서면 UHD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게 된다”며 이렇게 될 경우 디지털 정보 격차는 더욱 심화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남서울대학교 이상운 멀티미디어학과 교수 역시 이에 공감하며 “지상파 방송의 기본 플랫폼인 방송 주파수가 확보되지 못할 경우 저소득층의 방송 접근은 더욱 어렵게 될 것”이라며 이로 인해 빈부격차심화와 국민의 행복 추구권이 침해받을 우려도 있다고 지적했다.

정 연구팀장 역시 종합계획 비판에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이미 현재 대다수의 시청자들에게 방송은 비용을 지불하고 시청하는 서비스로 전락했다. 이미 비용을 지불하고 있으니 ‘무료’가 아니고, 보편적 접근권이 제공되지 않으니 ‘보편’도 아니라면 무료 보편적 서비스가 어디 있느냐”며 “‘보편’이 이뤄지고 있지 않은 상황에서 ‘프리미엄’ 정책을 중심으로 삼는 것은 올바르지 않다”고 비판했다. 무료 보편적 플랫폼을 제대로 구축해 시청자들의 매체 선택권 먼저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이어 “매체 선택권 보장을 위해서는 직접수신율을 개선해야 하는데 지상파 방송사들은 700MHz 할당을 통해 SFN 방식으로 난시청을 해소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며 무료 플랫폼 활성화를 통해 공공성을 회복할 수 있다면 무엇보다 우선적으로 주파수를 할당해야 한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정 연구팀장은 “통신 영역에서 가장 시급하고 중요한 문제는 추가 주파수의 할당이 아니라 요금인하다. 방송 영역에서는 무료 플랫폼의 약화로 인한 공공성 훼손을 하루빨리 복구하는 것”이라며 “유료 서비스의 홍수 속에 공익성을 담보하는 무료 플랫폼으로서 지상파 방송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점을 정부가 하루빨리 인지하길 바란다”고 다시 한 번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