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의 방송

[사설] 모두의 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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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기술저널=김동신 EBS기술인협회 회장] 얼마 전 한 마트에서 두세 살 되어 보이는 아이가 열심히 태블릿PC를 시청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아이들이 태블릿PC, 휴대폰을 통해 영상 매체에 과몰입하는 문제는 차치하고, 이제는 훌쩍 커버린 우리 아이들의 어린 모습이 떠오르며 그저 예쁘고 사랑스럽게만 보였다. 하지만 태블릿PC의 음량이 꽤 컸던지라 아이가 시청하고 있던 동요, ‘우리 모두 다 같이’ 영상을 근처의 어른들까지 ‘모두 다 같이’ 시청하는 모습이 아주 유머러스했다.

모두. ‘모두’라는 단어는 참 긍정적인 느낌을 주는 단어다. 개인화와 각자의 개성이 존중받는 이 시대에서도 ‘모두의’라는 단어가 붙어있는 앱, 웹 서비스 등을 찾는 것이 어렵지 않다. 이 ‘모두’라는 단어에서 전체주의적 느낌이 아니라 ‘공유’할 수 있는 ‘가치’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성숙한 시민의식이 있기 때문이지 않을까 하고 생각해 본다.

요즘 우리 모두의 방송인 공영방송이 많이 흔들리고 있다. 이제는 국민 모두가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게 된 수신료 분리 납부 문제에서부터, 정권이 바뀔 때마다 비슷하게 겪어온 공영방송 거버넌스의 불안정성 문제까지 최근의 불안정은 다른 때와 달리 몹시 빠르게 피부에 와닿는 느낌이다.

공영방송은 정부에서 좌지우지할 수 있는 것이 아닌 대한민국 구성원, 우리 모두의 소중한 자산이자 가치다. 공영방송은 그 역할이 방송법에 명시되어 있는 국가기간방송인 KBS, 방송문화진흥회법에 의해 운영하는 MBC, 그리고 한국교육방송공사법에 의해서 운영하는 특수목적의 공영방송인 EBS처럼 법적으로 그 지위와 독립된 운영을 보장받아야 하는 방송사이다. 과거 한 신문사는 EBS, KBS, MBC와 더불어 KTV, 연합뉴스TV, YTN, 국회방송, 아리랑TV를 공영방송으로 칭하는 사설을 낸 적도 있지만, 이는 공영방송과 국영방송, 공공기관의 형태로 운영하는 방송사를 구분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렇게 공영이라는 개념이 쉬우면서도 어려워 신문사조차도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급기야 최근 한 공영미디어 구조개혁을 주제로 한 시민단체 토론회에서는 EBS·KBS1·아리랑TV를 통합해서 하나의 지주회사로 개편하자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다. 그야말로 공영방송에 대한 역할과 가치를 무시하고 공영방송을 국영방송으로 여기는 것 같다.

과거부터 각 공영방송의 구성원과 국회, 정부는 공영방송의 거버넌스 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많이 노력해 왔다. 그리고 그 결과가 가시적으로 나타난 것이 2023년 4월 27일 제405회 임시국회를 통해 본회의 의결을 통과한 공영방송 3법 개정안일 것이다. 각 공영방송사는 이 개정안으로 거버넌스의 안정성을 법적으로 보장받을 수 있는 밑바탕이 열린다. 하지만 지금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는 공영방송 통합, KBS 분리 민영화 등 공영방송의 근간을 뒤흔들 법한 소문은 이런 공영방송이 사회에서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구축해온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들 수 있다는 우려가 들게 한다.

EBS는 시작부터 지금까지 공적 재원이 공사 운영 재원의 절반도 되지 못하는 기형적인 형태로 공영가치를 구축하고 실현해 왔다. 이를 위해서 내부적으로는 공익적 이익, 무형의 공적 가치보다는 유형의 상업적 이익을 항상 계산해야 했다. 앞으로 수신료 분리징수로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는 추가 비용과 국민이 수신료 납부 의무의 이해가 부족한 경우에 발생할 수 있는 분쟁에 대한 사회적 비용 등 앞으로 발생할 불필요한 매몰 비용으로 인해 가장 안정적인 공적 재원은 더욱 줄어들게 된다. 이런 재원의 압박을 통해서 공영방송의 가치가 훼손되고 상업화는 더욱 가속화할 것이 너무나 우려스럽다.

우리 공영방송 스스로도 긴 역사를 이어온 공적 가치를 잘 이어 나갈 수 있도록 자성해야 함은 마땅하다. 그리고 그 시작이 거버넌스 3법이 될 것이고, 공영방송은 안정된 거버넌스하에서 엄중하게 경영평가를 수행하고, 국민에게는 공영방송의 운영 결과를 가감 없이 보고해야 한다. 안정적 공적 재원을 기반으로 공적 가치를 수행하고, 그 재원이 발휘한 가치를 있는 그대로 보고하며, 그 가치를 민주사회 발전으로 이어야 한다.

다만 정부와 국회는 공영방송이 정치적 영향력 아래서 좌고우면하지 않도록 공영방송 거버넌스 3법의 의미를 다시 한번 되돌아보고, 공적 재원과 운영 독립성 확보를 통해 공영방송이 공영방송으로서 그 가치를 구현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 수 있도록 적극적 지원을 하는 것이 마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