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인(Operator)’을 넘어 ‘기술 크리에이터(Technical Creator)’의 시대로

[사설] ‘기술인(Operator)’을 넘어 ‘기술 크리에이터(Technical Creator)’의 시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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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기술저널=장익선 한국방송기술인연합회 회장] 방송 역사상 전례 없는 거대한 변혁의 파고가 우리 앞에 당도해 있습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미래의 기술’이라 불리던 생성형 AI(Generative AI)와 클라우드 기반의 제작 워크플로는 이제 ‘오늘의 현실’이 되어 우리 곁에 깊숙이 자리 잡았습니다. 편집, 음향 믹싱, 심지어 가상 스튜디오의 조명 제어까지 AI 알고리즘이 보조하는 시대입니다.

이러한 기술적 진보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은 복잡합니다. 업무 효율이 높아질 것이라는 기대감 한편에는, 우리의 설 자리가 좁아질지 모른다는 막연한 불안감이 공존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기술이 기술인을 대체할 것인가?”라는 질문은 이제 생존을 위한 엄중한 화두가 되었습니다.

오늘 저는 연합회 회장으로서, 그리고 평생을 방송기술의 현장에서 살아온 동료로서 감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AI 시대는 방송기술인의 위기가 아니라, 우리 업(業)의 본질을 재정의하고 확장할 수 있는 기회입니다.

기술은 도구일 뿐, 그 안에 영혼을 불어넣는 것은 결국 사람입니다.
과거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테이프에서 파일로 전환되던 시기를 기억해 보십시오. 그때마다 기술인의 역할이 사라질 것이라는 우려가 있었지만, 우리는 도태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더 정교하고 창의적인 영역으로 업무를 확장해 왔습니다. AI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AI는 데이터를 분석하고 패턴을 학습하여 최적의 결과값을 내놓는 데 탁월합니다. 하지만 방송은 단순한 ‘신호의 송출’이나 ‘데이터의 조합’이 아닙니다. 방송은 시청자의 마음을 움직이는 예술이자, 공공의 가치를 전달하는 매체입니다.

차가운 기술 위에 따뜻한 감성을 입히는 일, 텍스트 뒤에 숨겨진 맥락을 읽어내어 조명의 색 온도를 결정하고 오디오의 뉘앙스를 조절하는 일, 돌발 상황이 난무하는 현장에서 최선의 기술적 판단을 내리는 일. 이것은 오직 인간, 바로 우리 ‘방송기술인’만이 할 수 있는 영역입니다. AI가 훌륭한 악기라면, 우리는 그 악기를 지휘하여 감동이라는 교향곡을 만들어내는 ‘마에스트로’가 되어야 합니다.

‘기술인(Operator)’에서 ‘기술 크리에이터(Technical Creator)’로의 전환
이제 우리는 스스로를 단순히 장비를 조작하는 ‘오퍼레이터’로 규정하는 낡은 프레임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단순 반복적인 조작과 물리적인 숙련도는 이미 AI 알고리즘의 영역으로 넘어가고 있습니다. 이제 기술인의 전문성은 ‘조작의 완숙도’가 아니라 ‘기술적 상상력의 깊이’로 평가받아야 합니다.

2026년의 방송기술인에게 요구되는 역량은 ‘어떻게(How) 조작하느냐’가 아니라, ‘무엇을(What) 왜(Why) 구현할 것인가’를 기획하는 기술적 상상력입니다. 우리는 이제 콘텐츠 기획 단계부터 참여하여 기술로 구현 가능한 최상의 크리에이티브를 제안하는 ‘기술 크리에이터’ 가 되어야 합니다. PD, 작가와 동등한 위치에서 기술적 솔루션을 제시하고, AI라는 강력한 도구를 활용해 기존의 인력과 예산으로는 불가능했던 영상을 만들어내는 주체가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제가 생각하는 미래의 방송 기술인이 나아가야 할 길입니다.

한국방송기술인연합회가 여러분의 든든한 베이스캠프가 되겠습니다. 변화는 두렵습니다. 익숙한 관성에서 벗어나는 것은 고통을 수반합니다. 하지만 혼자가 아니라면 할 수 있습니다. 방송기술인연합회는 올 한 해, 회원 여러분이 이러한 변화의 파도를 타고 넘을 수 있도록 돕는 가장 든든한 서핑보드가 되겠습니다.

첫째, 재교육과 역량 강화에 집중하겠습니다. 빠르게 변하는 기술 트렌드를 습득할 수 있도록 AI 활용 실무 교육, IP 기반 제작 시스템 워크숍 등 실질적인 교육 프로그램을 대폭 확대하겠습니다. 단순히 이론을 배우는 자리가 아니라, 현장의 고민을 나누고 해법을 찾는 토론의 장을 만들겠습니다.

둘째, 다가오는 ‘KOBA 2026’을 혁신의 장으로 만들겠습니다. 올해 개최될 KOBA 쇼는 단순한 장비 전시회를 넘어, AI와 방송기술이 어떻게 융합하여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지를 보여주는 이정표가 될 것입니다. 우리 기술인들이 주인공이 되어 미래의 청사진을 제시하는 자리가 될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다하겠습니다.

셋째, 기술인의 권익 보호와 정당한 대우를 위해 목소리를 높이겠습니다. 기술 환경이 변한다고 해서 기술인의 가치가 폄하되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고도화된 기술을 운용하는 전문성은 더 높게 평가받아야 합니다. 불이익과 소외가 있는 방송기술인이 있다면 우리 연합회가 동반자로 여러분의 목소리가 되어 드리겠습니다.